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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Nov 24. 2020

여전히, 빛날 기회는 남아있다 '호프'

뮤지컬 '호프' 리뷰

뮤지컬 '호프'가 간절하게 붙잡고, 삶을 버텨낼 무언가가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호프' 재연이 현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은 절반이 비었지만, 노련한 배우들, 서정적인 음악, 뭉클한 메시지가 끊임없이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초연의 호평을 이끈 오리지널 캐스트 김선영, 조형균, 고훈정, 이예은, 김순택 등이 다시 힘을 모았다. 김지현, 김경수, 최은실, 김려원, 진태화 등 새로운 얼굴들도 대거 합류했다.


◆ 노인의 얼굴을 한 뮤지컬의 여왕…매 순간이 '귀호강' 파티

뮤지컬 '호프'는 '이 동네 미친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레한 차림에 곧 80을 바라보는 노인 에바 호프(김선영)가 주인공이다. 그는 천재 소설가 요제프의 미발표 원고의 소유권을 두고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소송을 벌인다. 생전에 이방인으로 차별받던 요제프의 문학을 알아본 친구 베르트(김순택)는 호프의 어머니 마리(김려원)의 연인 사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호프의 손에 남겨진 원고 K(조형균). 그는 마지막 법정에 나서는 호프에게 평생을 바쳐온, 원고를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김선영은 데뷔 20년이 넘도록 최고의 기량으로 '뮤지컬의 여왕'이란 찬사를 받아온 최고의 배우다. 그런 그가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돌아왔다. 추레하다 못해 꼬질 해 보이는 미치광이 노인 분장은 불혹을 넘긴 여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 극 내내 추한 얼굴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반짝이며 생동한다. 재판을 통해 호프의 과거를 되짚어나가기 시작하면, 김선영의 눈빛, 표정, 대사 하나, 넘버 한 소절이 가슴을 절절하게 울린다.

K역의 조형균은 '믿고 듣는 성대'를 유감없이 자랑한다. K는 호프가 지키는 '원고'를 사람으로 형상화한 관념 캐릭터다. 호프와 한 몸이 돼 호흡하면서도, 스스로를 태워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과거 호프 역의 이예은, 베르트 역의 김순택, 엄마 마리 역 김려원, 카델의 이승헌까지. 적지 않은 작품들에서 활약해온 베테랑 배우들은 이번에도 시원한 '귀호강'을 선물한다.


◆ 아픈 역사 속 처참한 개인…전쟁같은 삶을 살아낼 용기가 없다면


대부분이 예상하겠지만, 호프가 단순히 개인적인 상처로 '미치광이'가 된 것은 아니다. 이방인이었던 작가 요제프, 그리고 유태인이었던 베르트와 마리, 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희생양이 된 체코인들이었다. 검열이 심해지자, 베르트 마리에게 원고를 지켜달라 부탁하고 마리는 목숨보다 소중하게 연인과의 약속을 지킨다. 그 덕에 호프는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원고에게 빼앗긴다. 원고를 보는 베르트, 베르트를 향한 마리, 마리를 바라보는 호프는 사랑하는 상대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베르트의 사랑을 잃은 마리는 그저 원고 하나만을 붙들고 세상을 버티다 떠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호프조차 끔찍했던 어머니의 인생과 닮은 삶을 산다. 그토록 지독하게 원망했던 원고인데, 이게 없인 어쩐지 살아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간절히 원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그다음을 살아내기 위해 매달릴 어떤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그게 사랑, 돈, 자식, 혹은 부모님일 수도 있다. 모두가 하나쯤은 갖고 있는, 전쟁 같은 삶을 버티게 해주는 이유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이 뮤지컬엔 각자의 '원고'보다 더 중요한 건 너 자신이라는, 흔하지만 가치 있는 메시지가 담겼다. 관념 캐릭터 K를 비롯해, 모든 것이 새롭지는 않다. 그래도 교훈은 있다. 80년 가까이 살았어도, 에바 호프가 빛날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최종 판결과 호프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보며 스스로를 사랑할 작은 용기를 얻게 된다면, 이 뮤지컬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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