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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Mar 01. 2021

나를 지키는 야한 여자, '레드북'

2018년 공연된 뮤지컬 '레드북' 리뷰

뮤지컬 '레드북'이 여자라는 이유로, 솔직하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받았던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투(#ME TOO)' 운동 물결로 여성 인권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꺼내 든 메시지가 의미심장하다.


뮤지컬 '레드북'이 세종문화회관 세종 M시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가장 보수적이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솔직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 '나쁜 여자', '야한 여자'로 손가락질받는 안나의 이야기가 그리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귀 기울이게 한다. 세심한 연출과 귀에 박히는 대사와 넘버, 배우들의 열연을 만나는 동안 묵직한 깨달음이 머릿속을 강타한다.

[사진=바이브매니지먼트]

◆ 쉴 새 없이 객석을 웃게 하는 현실적 이야기와 솔직함의 힘


여자가 글을 쓰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빅토리아 시대. 그래서인지 안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구직에 전전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성추행까지 당하는 안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안나가 겪는 모든 사건과, '여자가 감히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인 시선들을 경험해본 여성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안나의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게 된다.   


바이올렛 부인의 하녀로 살던 시절, 그를 즐겁게 한 대가로 유산을 받게 된 안나. 그 덕에 그의 손자 브라운과 인연이 닿는다. 당시에 단지 평범한 남자로 살던 브라운은 안나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행동을 할 때,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결국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브라운에게서 관객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감동에 젖는다.


'레드북'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안나가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이 대사로, 넘버로 흘러나올 때다. '낡은 침대를 타고' '나쁜 여자' '나를 말하는 사람' 등의 곡들은 매 순간 놀랍도록 모두의 마음에 와 닿는다. 특별히 작가인 안나의 직업과도 잘 어울리는, 묘사 위주의 가사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극장을 빼곡히 채운 명넘버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해낸다.

[사진=바이브매니지먼트]

◆ 아이비·박은석·지현준…완벽한 앙상블의 시너지           


아이비는 안나 역으로 솔직한 매력을 숨김없이 내뿜는다. 스스로가 하는 일에 당당하고 밝고 순수한 여자를 마치 한 몸이 된 듯 연기하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빚어냈다. 박은석도 다소 우유부단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브라운 역으로 호연을 펼친다. 로렐라이 언덕의 리더 로렐라이 역의 지현준은 매 순간 놀라울 정도다. 능청스러우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감정과 느낌으로 꽉 찬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해냈다.


'레드북'은 지난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착산실 선정작으로, 당시 뜨거운 호응 끝에 본 공연까지 올리게 된 명작이다. 단지 여성만이 아닌, 차별받는 모두를 위한 선명한 메시지와 빠른 호흡, 통통 튀는 세련된 넘버까지. 이 뮤지컬이 뜨겁게 사랑받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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