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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랑 정원예술가 Feb 17. 2017

사라진 22년

마치 어제처럼 오늘도 [소설 -Windsor의 아침정원 107. EvoL

며칠 동안  시간은 상식을 벗어난 희한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때론 너무 빠르게 훅 사라져 버리고, 때론 마치 정지된 듯 전혀 움직이질 

않는 듯이 보였다. 


하여 마치, 우리가 만나기로 한  그날 5시라는 시간이 환영처럼 나타나지 않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내가 지나간 시간의 문 뒤에서 펑펑 울어버리게만 

할 듯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만 결국 그 비정상의 불안한 나의 시간을 

끌어주며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5시의 바늘을 15분 남겨두고 근처에서 조심조심 차를 몰아가려고 차에 올랐다. 

아뿔싸 그런데 도대체 매무새를 가다듬던 그 장소에서 차까지 올라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시간이 15분이 걸릴 줄..... 

이미 시간의 문 뒤에서 나를 울게 할 것 같던 그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이미 5시 5분  


두려운 마음이 밀려왔다. 

오늘 아침 마치 수많은 날들의 밤이 사라지고 애타게 기다리던 아침만 있었던 것처럼 

길고 긴 아침의 시간을 참을 수 없어 괜스레 작은 업무 약속을 만들어 약속 장소 

근처로 일찍 출발하였다.


 22전의 그날, 해외에서 돌아온 그와 만나기로 한 그 가페 , 그가 해외로 파견을 나가기 전 

우리가 자주 만났던 작고 아늑한 그 카페로 오기로 한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우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의 소식을 묻지 않았었다. 그리고 5년 후 죽을 수도 있었던 

어떤 사고와 마주친 나는 죽기 전에 꼭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었다. 

그였다. 

내 삶에 기적처럼, 선물처럼 잠시 머물렀던 그에게 , 그러나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가 실재한 사람이었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왔는지를  확인하고 전해주고

싶었었다. 그래서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말도 하고 싶었었다. 아니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이었음을 전해 주고 싶었었다.


갑자기 오늘 늦어버린 15분이 영원히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아니, 마지막으로 한번만 딱 다시 보자던, 정말 마지막으로 라고 우리 서로 전화로 확인했던

오늘의 만남을 지연시키고 싶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그런 징조가 내내 오고 갔다. 

서둘러 나온 아침 시간 내가 잠시 머문 섬의 다리를 막 건너  빠져나오는 도로에서 느닷없이 

한 트럭이  불과 1m 직전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기습적으로 횡단하며 반대편 차선으로 빠져나갔다 

뒤를 바짝 붙어오던 RV 차량과 전면의 차량 두대로 부터의 충돌 위기, 다행히 뒤차가 그 위험 상황을

함께 보았던지 매끄럽게 차선을 바꿔 빠져주었고, 나는 도로 한가운데 급정거를 한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가 하얘지며,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다른 차 들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로 정신을 차리고 갓길로 차를 빼낸 다음 잠시 멈춰서 한참 숨을 고른 후에야 다시 

차를 출발시킬 수 있었다


문득, 지금 그가 그곳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가서 그런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다. 퍼뜩, 딱 23년 전의 방식이 떠올라  레스토랑에 전화를 했다.  

"저 키 큰 남자 한분이 홀에 홀로 앉아 계신 분이 보이나요? "

"아, 네 계십니다" 

'아, 안도의 숨을 쉬며  "그분께  강 박사님인지 여쭙고 맞으시면 오기로 한 사람이 

10분에서 15분 늦게 도착한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네 잘 알겠습니다'

 한 치의 주저함이나, 의아함 없이 익숙하게 지배인이 대답을 했다. 

'스마트 폰과 SNS 가 난무한 이 시대에 , 레스토랑 홀 지배인을 통해서 지각을 알리다니'


이 시작부터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20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시간 여행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발레파킹에 차를 맡기고 계단을 날아오르듯 올랐다. 

그리고 문 앞에 다가가 발걸음을 멈추고 비스듬히 올려진 커튼 사이로 홀을 훔쳐보았다.

갑자기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그가 보이질 않는다.

철렁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춰 서 있는데 지배인이 어찌 알고 안내를 해 주었다. 희한하게 유능한 

홀 지배인들은 그 촉이 있는 모양이다. 누가 누구를 기다리고, 누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후들 후들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를 따라갔다.

22년 전의 언제나처럼 그는 거기 있었다. 

나보다 늘 먼저 와서 사뿐한 준비를 마치고 단정하고 아름다운 태도와 설레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보냈던 그 모습 그대로 ,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로

마치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그렇게 거기에서 날 기다려 주고 또 기다려 줄 것처럼...


그가 말했다 

" 어떻게 시간이 그대로인 듯해요?"

" 당신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조금 마르기만 했고요"


그랬다, 

그는 22년 전 그대로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슴 떨리는 설렘으로 그는 휘황이 빛나고 있었다 

나 또한 22년 전의 그 설렘과  애틋함으로 온몸의 혈관이 팽팽하게 살아 뛰며 그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 앞의 22년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고 지금도 그때의 그 만남으로 다시 서로의 앞에 

살아 부활한 듯이 보였다. 


201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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