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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May 23. 2024

비긴 어게인

We'll meet again

Vera Lynn - We'll meet again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으로 벌어진 참사를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전후(戰後) 처리 과정에서 핵에 대한 국제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는 핵개발 과정을 전 세계가 공유하고,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절대로 규칙대로 흐르지 않는 우리네 인생처럼, 시간은 오펜하이머의 주장(이자 예측)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흐른다.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전지구적 기술공유는 배타적으로 다뤄졌다. 소련의 경우, “맨해튼 프로젝트”에 스파이를 심어 유럽국가들 중 최초로 1949년에 핵개발을 성공한다. 영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미국에서 개발된 핵이지만, 다수의 기술자들이 영국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에 핵개발 기술공유를 요구할 정당성이 있었다.

 뒤늦게 참여한 프랑스는 샤를 드골과 서독 아데나워 총리의 협업으로 독자적인 핵개발에 성공한다. (이후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핵개발 기술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핵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하고 있지 않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준으로 취약한 신생국가였던 중국이지만, 마오쩌둥의 굳은 핵개발 의지로 (동시에 1950년대 공산권 확장이라는 대외정책을 목표로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희구한 소련을 뿌리치고) 2번째 고난의 행군이 진행 중이던 1967년에 독자적인 핵개발에 성공한다.

1960년대 국제사회에 만연했던 핵만능론과, 등소평 주도 중국 개혁개방과 함께 중소관계가 악화되는 타이밍과 맞물려, 인도는 (소련의 중국 견제를 위한 목적과, 핵무기 개발에 겸용될 수 있는 기술을 제외한 원자력 개발을 잠정 승인한 미국의 후원을 받아) 핵개발에 성공한다. 인도의 핵개발에 자극받은 파키스탄은 1990년대에 핵개발에 연이어 성공하고, 북한은 철저히 생존본능에 입각해 어느새 6차 핵실험까지 성공했다.

American Prometheus, J. Robert Oppenheimer

과연 오펜하이머의 염원대로 전지구적인 핵폐기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까? 동시에 공식 같은 비공식 핵보유국가의 지위는 기존 핵보유국과 어떻게 될 것인가?

레이카비크 정상회담 中

실제로 이러한 시대가 1980년대에 도래할 뻔했다. 참모부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을지라도, 레이건 美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핵 없는 세계를 추구했고, 고르바초프 蘇 서기장도 마찬가지였다. 198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양정상이 만났을 때도, 밀실에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폭넓게” “극적으로” 핵무기를 감축하는 데 동의가 되어 있었지만, 레이건이 돌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이는 무산됐다.

한편, 당시 “대서양 동맹”의 대처 英 총리는 심하게 불안해했다. 잠룡일 적부터 고르바초프와 관계를 터온 대처가 직접 레이건에게 그와 논의해 보라고 촉구할 때까지만 해도 이 교류가 미국과 영국의 기존 방위 정책(나아가 핵무기의 기능에 관해 NATO와 오랫동안 지킨 합의를)을 아예 뒤엎는 방향으로 나아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분명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는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TPNW)이 오랜 전통 끝에 유엔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2021년 1월에 발효된 점은 고무적이다. 이를 주도한 이들이야말로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고, 합리성과 지성으로 무장한 문명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처칠은 귀족주의 정치가와 외교관들이 승전국과 패전국을 가리지 않고 만나, 민주주의의 소란과 다툼 없이 예의와 품격을 갖추고 논쟁을 벌이면서 모두가 합의한 근본에 따라 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던 위트레흐트 조약과 빈조약의 시대는 갔다고 했지만, 그 시대의 관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하원(UN GA)에서 의안이 통과했다고 할지라도, 상원(UN Security Council)에서의 유효성은 지극히 미비하다.

Henry Kissenger pick his nose at a trade conference in Brazil(1992)

키신저가 소회 하듯, 일국의 비전과 가치가 없는 “국가”일수록 문서화(Codification)된 명시적 규범과 공정에 연연하게 된다고 밝힌 것처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성문화된 잉크를 넘어 행간(行間)을 뛰어다니고 있다. (참여 수준을 낮추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 법률학(jurisprudence)의 특징적인 경향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보유는 과연 어떠한 시나리오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핵무장 이후의 한국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 행간을 거닐 준비가 과연 우리에게 됐는가? 예리한 '척' 행간을 읽어내려 해서는 안된다.

물론 상기 언급된 비공식 핵보유국들을 왕왕 부러워하면서 애국충정의 마음으로 핵무장 실현을 부러워할 수 있다. 다만, 핵보유가 ‘평화’라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를 ‘대서양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을 제외한 지역(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축자적으로 영위하도록 만들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잠정 핵보유국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전쟁을 치러 중동&아랍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인도-파키스탄과 핵보유국 지위의 중국 사이에는 비정기적으로 국경분쟁이 일어났다. 한반도도 이 주제에서 여기서 피할 수 없다.

근대와의 철저한 단절이라는 명목 하에 진행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핵무기의 개발과 함께 그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혁명의 폭력성과 역동성은 10년이라는 시간과 경제적 부를 창출해 준 1978년 시장기반 경제개혁과 함께 길들여졌고 순화됐다.

한국은 "이 나라가 재건하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6.25 전쟁 이후 맥아더 장군이 술회와 함께, 정치적인 이유로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전술핵이 배치됐다. 핵이 가지는 국제관계 속의 그 위엄과 위험은 한국의 고도성장으로 무마돼, ‘5공화국의 종언’과 함께 1991년에 한국에서 철수했다.

민중 자유주의의 역사는 권력자를 죽여온 역사다. 자유 앞에서 갈라져서 싸우면 목줄을 다 같이 찰뿐이다. 한편, 2024년의 한국은 고물가, 고금리, 고부채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뤄 경기둔화가 가속화되는 동시에 저출산과 수입통제까지 엮여 있다.

엘브리지 콜비

이 시점에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부차관보가 쏘아올린 ‘우호적인 핵확산’은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과연 국제관계를 무 자르듯 양분해서 보는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나아가 군중심리에 어떤 여파를 끼칠 것인가?

좌: 토마스 홉스, 우: 존 로크

비역사적은 곧 역사적 여건을 넘어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게 자기주장을 입맛대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요컨대, 잉크를 넘어선 행간은 더욱이 읽어낼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비역사성이라는 특징으로 계량적 분석이 맞다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전반부와 로크의 <통치론>이 언제나 강령되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역사라는 맥락에서 벗어난 이성(reason) 사회를 상정한 국가를 가정하거나, 그가 살던 시대와는 동떨어진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무-지성 거인과 싸우는 토마스 홉스(?), 출처: <진격의 거인>

한편, 홉스는 <리바이어던> 후반부에서 당대의 맥락을 고려한 사회에 대한 소회와 함께, 자기주장이 무지성적으로 옳다고 호도하는 종교인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가했고, 로크는 공화주의적 덕성과 자본주의 사이에서의 고뇌를 담은 논고들(<관용에 대한 편지>, <인간지성론>)을 배태했다.

Liberal Arts Education

의학이 사람의 목숨을 구하듯, 정치학은 사회의 분배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위기와 아이러니(그리고 비극)를 탐구하는 Liberal Arts가 함께 있었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국제"정치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필요의 영역이 아니라, 자유의 영역(realm of freedom)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비극적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궁리와 더불어 비르투를 활동적 삶(vita activa)에 영향을 준다. “여행자여 길이란 없다.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스페인 속담처럼, 어쩌면 작은 촛불에 의지한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더듬어 나간다는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은 아닐지.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읽은 문헌>

- Do Young Lee (2021) Strategies of Extended Deterrence: How States Provide the Security Umbrella, Security Studies, 30:5, 761-796

- Joelien Pretorius & Tom Sauer (2022) When is it legitimate to abandon the NPT? Withdrawal as a political tool to move nuclear disarmament forward,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43:1, 161-185

- Rebecca Davis Gibbons & Stephen Herzog (2022) Durable institution under fire? The NPT confronts emerging multipolarity,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43:1, 50-79

- 이병철. 2021. 핵무기금지조약(TPNW)과 세계 핵비확산체제에 대한 소고(小考). IFFS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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