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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Jun 13. 2024

나침반

흔들림 없는 시대의 길잡이

Jay Park - Yacht(K) (feat. Sik-K)

인류의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우리는 나아가 한국은 과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나의 완결된 지식백화점 속에서 무수한 토막 지식과 정보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유혹하고 있는 오늘날이다. 그리고 백화점 속 상품들의 의미심장한 구애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더 교활해지고 미묘해지는 것만 같다.

돌이켜보면 스마트폰에 활용되는 부품들과 첨단기술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결정체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18세기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에(달리 말하면 특화의 이득에) 입각해 각 지역별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부품생산을 분담하고,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즉, 인공위성 애플리케이션 구축과 같은 국가 간 연결을 담당하는 정보망 제공의 역할)을 기술선진국이 주도해 왔으니 말이다.

실로 이동성 자산의 확장과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세기말과 21세기 초다. 물론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주의 세계질서에도 외부적 변수로 인해 기능고장은 발생한다. 가령, 코로나 초창기에 발생한 소모품 재고 부족으로 대란도 일어났다. 한편,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물리적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을 이어주는 화상기계였다.

AC(After COVID-19)와 BC(Before COVID-19)로 세계는 달라질 것이라 추측한 모 뉴욕타임즈 기자의 레퍼런스처럼, 코로나가 만연했던 기간이 곧 그 직전시대와의 절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멈췄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무언가가 달라졌다.

이전보다 언택트(untact)한 상황에 나태해졌고(sloth) 비트를 쪼개듯 시간을 토막 내 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주제(lust)를 탐식(gluttony)하고 있다. 멈춰있는 경제를 돌리기 위해 무분별했던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의 버블은 다수의 시민들을 주식과 코인의 기세에 올라타게 만들었고(envy, greed), 주식과 국가부채로 이득 본 자의 교만(pride)과 그러하지 아니한 자 사이의 분노(wrath)는 커져만 갔다. 이는 오늘날을 대표하는 능력주의라는 좋은 말로 포장돼, 승자와 패자를 정당화한다. 가히 7 대죄의 재림이다.

작용 반작용(?)

역설적이게도 배달업을 비롯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로 나태함은 곧 근면함으로 전환됐고, 말초적인 주제에 대한 반감과 사람들과의 단절에서 오는 우울감을 해소하고자 “특정 나이에 읽는 철학가”같은 인문학 서적들이 흥행했으며, 인플레이션을 잡고 버블을 걷어내고자 금리를 올린 채 유지하고 있다고 변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반동으로 다가오는 불쾌감과, 긴 호흡에서 성찰하는 자세는 별개의 것이다.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스마트폰이 21세기 자유질서의 표본이자 산물이지, 이것이 죄악의 결정체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과 국가부채에 대한 담론을 비롯한 인간의 정념에 대한 이야기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존재했다.

죄악의 결정체?

(사담이지만 계몽주의 시대에는 신대륙에서 유입되던 설탕과 카카오, 동방에서 흘러 들어온 차도 죄악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졌다. 아프리카에서 종교사회 유럽으로 커피도 유입될 때 시민들의 세속의 향락과 연계될 우려에 죄악시됐다)

한편, 스마트폰을 쥐는 것과 뗀석기를 쥐는 것은 큰 틀에서 대동소이하다. 어쩌면 우리(즉 현대인)는 문장을 읽고 소화하고 정리하는 능력보다 그림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혹은 명멸하는 화면 속에 나타나는 강렬한 시각정보들) 추세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고대인들이 벽화에 열광했듯 말이다.

위대한 지성가나 철학가 혹은 끊임없이 귀의할 존재에게 돌아가고 의존하면서 지성의 지평을 넓히는 시대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멋진 신세계>는 모두가 행복하다. 살의 젊음은 기술로 획득할 수 있으며, 영사관의 감각의자에 앉아, "진짜 같은 가짜"에서 오는 말초적인 즐거움만 느끼면 될 뿐이다.

Henry Fuseli - Christ Disappearing at Emmaus

요컨대, 우리에게 숨쉬듯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이면에는 계몽주의의 명예혁명 이후 집권한 18세기의 휘그당(이자 궁정파)이 주도했던 후원, 그리고 국가부채로 인한 예절(politeness)의 퇴보에 대한 재야파의 충격과 고뇌가 가득하다. 미국주도의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인지의 시작은 영국의 질서에서부터 시작돼야만 할 것이다.

좌: 엘리자베스 1세, 우: 1689년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3세와 메리2세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영국의 그것과 별개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시원(始原)은 잉글랜드 내 토지 기득권을 약화시켜 왕권의 균형을 이룬 국내정치와 대외적 팽창을 준비한 이상적인 상황을 창출한 엘리자베스 1세부터 시작해(본격적인 북미대륙에 식민지 개척도 그녀 사후에 이뤄진다), 명예혁명 직후 상비군과 상업사회라는 (당대기준) 전대미문의 상황과 조우하면서 (동시에 1707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으로 영국[United Kingdom]으로 거듭나 제국으로서의 주권 범위에 대한 담론과 함께) 질서에 대한 패러다임을 인지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

무엇보다 대(大) 피트 영국 총리의 과도한 국가부채와 후원제도 남용을 통한 식민지 팽창과 부패에 따라, 의회 기득권 궁정파에 대한 안티테제로 존재한 재야파 인물들이 미국으로 넘어가 1776년 미국독립혁명의 주축에 영향을 준다.

다수(리카도 포함)의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비이동적이고 환금성이 낮은 토지라는 매개를 통해 시민들이 공화주의적 덕성을 함양하고 공화국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포콕도 <마키아벨리언 모먼트> 말미에 이를 "가짜 같은 진짜"를 고대하며 끝맺는다. 하지만, 이동성 자산의 팽창에 따라 덕성은 곧 상업적 예절(politeness)로 치환됐다. 이는 공화주의적 의미의 덕성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개념이었다. (무엇보다 오늘날 토지는 영국 계몽시대와 달리 정주(定住)의 개념에 방점을 두되, 환금성 자산처럼 당연히 여기고 있다).

오늘날의 전지구적 공화주의 체제와 자유주의 질서의 병치를 통해 공존을 모색하고자 시도한 키신저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깊은 탄식을 그의 유고작 <리더십>에서 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딜레마의 타개의 일환에서 페트로달러체제와 중국 개방도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미시적으로 쪼개어 작게 보면 다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그리고 돌이켜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물이 더운 날씨에 차갑고, 추운 날씨에 미적지근한 이유는 항상성(恒常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유혹 속에서 긴 호흡으로 볼 수 있는 나침반이 필요한 순간이다.

진부하지만 나침반은 고전과 역사, 그리고 시간의 변화에 대한 탐구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해쳐나가고자 사고한 고전적 인물에 대한 탐구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 안물이 되버린 키신저는 그 자체로 고전적 인물로, 시대를 읽어내기 위한 나침반의 질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읽은 문헌>

- 김상배. 2024. [INSS 전략보고]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추구 경로 검토 및 고려사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전재성. 2023. “신냉전 담론과 한국의 국가전략.” 이관세 외. 신냉전시대는 도래하는가. 서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전재성. 2023.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의 전략적 함의와 향후 과제,” 『통일정책연구』 제32권 2호. pp. 1-32.

- 하영선. 김양규. 2024. [EAI 이슈브리핑]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 바로 읽기: 대한민국의 궤멸 vs. 김정은 정권의 종말. 동아시아연구원.

- 황일도. 2023. 북러 군사협력 논의와 평양의 지향점: 미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도전. 통일정책연구 제32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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