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eatriz Oct 11. 2024

No man is an Island.

키케로 <국가론>, <법률론>, <의무론> Response Paper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그 누구도 외딴섬이지 아니하다. 모든 이는 대륙의 일부이자, 전체의 부분일 뿐이다)’ – John Donne.

암스트롱 이후에 위대한 인류의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입니다. - <김씨표류기> 中

오늘날 지구촌 사회에서 키케로(기원전 106년 - 기원전 43년) 의 시사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1]. 그는 <국가론> <법률론>에서 3가지를 강조하는데, 인간 보편 이성에 대한 믿음 - (1), 전제정, 참주정, 민주정이 혼합된 정치체제가 가장 안정적일 것이라는 확신[2][3] -(2), 그리고 영예(명예, 평판, 영광)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일국의 운영방식을 역설 - (3)한다.

상기 3가지는 분명 민족주의와 국가 시스템 중심의 현대사회에 국가 간 위신(pretiege), 정당성(legitimacy), 그리고 당국자의 사고에 대한 숙고와 통찰로 파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가론>, <법률론>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국가들이 구축한 사회(즉 국제사회)를 어떻게 슬기롭게 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테네를 운영할 방식과 방향을 탐구함에 따라 만개한 스토아 사상을, 로마 도시에 기점을 둔 도시 주권자들에 한정해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고뇌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권(sovereignty)”과 유사한 권리가 로마 “도시 밖”으로 배분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기원전 91년 이후이. 이때마저도 권리에 대한 논쟁은 이탈리아 반도 도처에 땅을 소유한 로마 도시 주권자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다시말해, 아티카 반도 중앙의 사로니코스 만(灣) 연안에 위치한 도시국가 아테네의 내용을,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한 탈(脫)-도시국가 로마에 확장 및 변용시킨 과정이라 생각한다.

'S'ENATVS•'P'OPVLVS'Q'VE•'R'OMANVS을 따서 만들어진 SPQR, 시민과 원로원의 로마를 뜻한다

물론 이들의 변용과정과 그 내용을 과거와 현재 사이의 유추를 통해,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통찰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키케로 본인도 이러한 논리를 전개해, (지역적 특성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국가가 발전하는 점을 단서로 붙이며), 야만성을 길들이되 왕정을 끝맺고 공화정을 열어 영토를 팽창시킨 로마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 주장한다 [4].

그라쿠스 형제 (자막有) 출처: Extra History, Youtube

나아가 키케로는 주권자들의 사유지 같던 라티푼디움에 토지개혁을 가하고자 한 그라쿠스 형제 (형제 모두 호민관이었고, 각각 기원전 133, 121년에 사망한다)들이 등장하기 전의 로마로 회귀하기를 고대했다. (즉, 키케로는 주권이 로마 도시 안 주권자에 한정돼 있던 때를 원했다.)

(사담이지만 그라쿠스 형제들이 태어날 즈음에 로마 영토범위는 아펜니노반도, 반절의 이베리아반도, 그리고 발칸반도 정도 밖에 없었. 이탈리아 반도를 제외한 두 지역은 포에니와의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확보됐.)

<법률론> 속 대화장면

이 시기가 키케로와 각별한 우정을 나눈 이들의 정치적 전성기라 이 시기를 고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라쿠스 형제들(특히 동생)을 키케로가 개인적으로 싫어해서 그런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만 그는 로마라는 실제적인 예시를 들어 그 성공에 찬미하고, 이를 만들어낸 공화정의 주권자들의 통찰과 견제와 균형 대해 찬사를 보낸다.


한편, 헨리 키신저가 오늘날의 UN과 UN안보리의 기능을 상원과 하원을 가진 공화국과 유사하다고 제시했을지라도, 전지구적인 체제에서 이러한 대표성을 지닌 인물들을 가려내는 데에도 (그리고 이들이 높은 발언권과 행정력을 가지게 되는 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을까?

설령 이들을 위한 선별절차(임명, 선별, 내선)가 마련되고, 확장된 권리를 가질지라도, 이들이 키케로가 원한 (무-정부주의자적 사고가 아닌) 세계시민주의적 사고를 함양하고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 [5]. (마찬가지로 키케로가 원한 인격으로 참여한 이들이 직위 이전의 본인을 되돌아볼 메타인지를 함양하고 있을지 또한 미지수.)

분명한건 BTS가 한국을 대표해 연설한 것만은 아니다.

하물며 키케로가 제시한 민주정이 혼합된 정치체제를 국제단위에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높은 대표성이 요구된다. 일국을 대표하는 인격으로 개인이 모인 공화정체 UN인 만큼, 로마의 호민관의 직위에 준하는 평판과 역량을 가진 이에 대한 권한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한편, 설사 호민관과 유사한 대표직(職)을 만든다 할지라도, 과연 그를 관리감독할 사람은 누가 되고 어떤 권한을 가질 것인가..?(마찬가지로 해당 대표자가 누구를 어떻게 대변하는지도 따져야봐할 것이다)

무엇보다 키케로의 <국가론>은 건국한지 근 400년이 넘은 로마 도시에 기거하고 있는 주권자들에 한해서 국정운영을 기술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들(즉 로마 주권자들)은 로마라는 도시의 자부심과, 야만지역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생각과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무정부(대내[국내정치]적 최고 대외[국제정치]적 독립)에 방점을 둔 국제사회이자, 오대양 육대주를 걸친 채 각자의 유구한 역사(와 만들어진 전통의 민족주의)를 보내온 이들에게 키케로의 진의가 진정으로 유의미해지는 순간은 오랜시간이 지나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지구촌이라 부르기에 아직 세상은 물리적으로 매우 가까워졌음에도,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혹은 더) 기도 하거니와, 이 간극을 메우고 해결하기 위한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은 채 흐르기 때문이다.


단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1] 국가는 인민의 것입니다. 인민은 어떤 식으로든 군집한 인간의 모임 전체가 아니라,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에 의해서 결속한 다수의 모임입니다. 한편 인간이 결합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인간들의 연약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떤 것, 마치 군집성(congregatio) 같은 것입니다. 사실상 인간은 홀로 떠도는 종류가 아니라, 모든 것의 풍부함을 부여받았어도 사회 속에 사는 것이 자연에 의해서 강제되도록 태어난 것입니다 (<국가론> 김창성 역. 134).


[2] 그 궤도를 인식하는 것은 현자에 속하는 반면, 국가를 통솔해 나가는 데 경로를 잡아주고 자신의 권력 속에 국가를 유지하는 자로서 닥치게 될 일을 예견하는 것은 국가의 위대한 시민과 거의 신적인 인물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제4의 종류의 국가가 가장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먼저 이야기한 세 가지 종류(전제정, 참주정, 민주정)의 국가에서 견제되고 뒤섞여져 생긴 것입니다(<국가론> 김창성 역. 139).


[3] 왕에게서는 전제자가 나오고, 최선량들에게서는 붕당이, 인민에게서는 소요와 혼란이 생기는 것처럼, 원초적인 정치체제는 쉽게 정반대의 결함 속으로 향하기 때문이며 또한 각 종류는 종종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데 비해, 연결되고 또 적당히 뒤섞인 이 국가체제에서는 앞선 정치체제들의 큰 결함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론> 김창성 역. 159)


[4] 이를테면 기록을 남기는 일에서 능가할 수 없는 제일시민인 그 사람(플라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나라를 세울 터를 잡아놓고 있었는데, 그곳은 아마도 사실 훌륭한 곳이기는 하겠으나 인간의 생활이나 관행과는 동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분명한 모범이나 형식 없이 국가의 종류에 관해서 그리고 나라의 기본원리에 관해서 설명했지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양자를 다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플라톤의 글에서 소크라테스가 하듯이 자신이 조작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발견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 귀속시키는 일을 시도했으며, 도시의 입지에 관해서 로물루스에 의해서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이뤄진 체계를 상기시키고, 공허한 수사로써가 아니라 한 국가를 통해서 확인된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오. 그 때문에 그대가 계속 가르침을 베풀기를 바라오. 이제 내가 보기에 그대는 국가를 마치 완전한 것처럼 논하면서 나머지 왕들을 통찰할 것이기 때문이오 (<국가론> 김창성 역. 178-9)


[5] 물론 국내정치의 생리를 파악한 사람들은 정확하게 밖을 볼 수 있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외부의 문제를 직시해야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존의 맥락과 세계관을 벗어나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밖으로 나갈 결정을 내릴 용단이 있다. 결국 크게 봐서는 하나다. 국내정치와 국제관계는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모세가 내면을 그리고 Exodus를 통한 외부를 함께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읽은 문헌>

- 키케로, <국가론> (김창성 역. 한길사)

- Atkins, Jed W. & Benatouil, Thomas, 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Cicero’s Philosoph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2), 15. Empire, Just Wars and Cosmopolitanism.

- Gilbert, Nathan et. al. eds. Power and Persuasion in Cicero’s Philosoph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Ch. 8. Cicero on the Justice of War.

- Runstetter, Daniel R. & O’Driscoll, Cian eds. Just War Thinkers: From Cicero to the 21st Century (NY: Routledge, 2018), Ch. 1. Marcus Tullius Cicero, pp. 8-20.

- Sims, Stephen Patrick, “Ciceronian international society”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al Theory 17(3)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