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아직도 여전히, 그러나 다르게

by 두연두윤

자괴감과 열등감이 들 때 따라오는 결과가 과연 우울감뿐일까?


우리 모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 본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특히 비교에 쉽게 노출되는 상황에 있었고, 성향 자체가 그에 취약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노력해도 결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성인이 된 직후에도 솔직히 자기 효능감은 거의 없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더해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바닥을 쳤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내 안에서는 늘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가족과 친구가 있어도,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 마음은 내 마음 깊숙이 닿지 못했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땐 집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공원이나 버스의 구석자리에서 혼자 울곤 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집에 들어갔다. 나는 여유 있는 사람, 짐을 나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그런 척만 했을 뿐이었지만. 그것조차 못하면 나는 무가치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온 지 4개월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중요한 시험에서 연달아 미끄러지면서부터였다.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은 두려움에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방까지 챙겨 나왔건만, 막상 건물 앞에 도착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볼세라 건물 뒤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깊숙이 들어가 숨을 들이마셨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이고 싶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민망해 소리도 못내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웃긴 건, 그게 한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아침 8시였다는 거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 많이 힘들었다. 내가 되고 싶던 '여유 있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괜찮다. 상담을 통해 호전되었고, 시험도 오기 끝에 합격했다.


그 후로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려 했다. 감정을 조절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다녔고, 지금은 나 스스로 행복해질 힘이 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털어놓을 줄 몰라서, 자신에 대해 말할 줄 몰라서 생긴 마음의 병인 것 같아요.”

상담해 주셨던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여전히 고치기 어려운, 나의 고집과도 같은 부분이지만.


나는 온탕과 냉탕, 그리고 그 사이를 조금씩 경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아픔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나는 아직 미성숙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애초에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다만 이제는 때로는 “이해한다”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나는 그들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고, 되어줄 수 없고, 그저 곁에 있어 줄 수만 있다.


사고하는 법을 조금 기른 지금의 나도, 그때에 비해 아주 조금 성숙해졌을 뿐 여전히 열등감을 느낀다. 가지지 못한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걸 가진 듯한 다른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여전히 쓰린,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이다.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는 이런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 마음 깊이 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감정임을 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나이를 먹어가며 내 곁을 서성이다가, 언젠가 조용히 내 마음의 문을 다시 두드릴 것이라는 것도 안다.


열등감을 무시하거나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감정에 얽매여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저 인정하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마음 안에서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다. 만약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나의 목표에 추가하고,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스로를 담백하게 위로하며, 나만의 다른 가치를 위해 더 노력한다. 그러면 열등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려 애썼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그 감정이 불쾌하지만은 않다.


오늘도 열등감이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감정을 반겨주고, 들어주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서 기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한 면을 본다는 것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본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도 사람인지라, 그리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언젠가 나의 어두운 감정에 매여 주저앉거나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가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담아 이렇게 글을 쓴다.


스스로에게 누구보다 관대해지길. 따뜻하게 대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