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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딸 Apr 11. 2020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인 이유

150개의 치즈가 보여준 '다양성' 

       프랑스에서 Fromagerie, 치즈 전문점을 흔히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지역마다 만드는 치즈가 제각각 다른데, 100여 개가 넘는 지역 치즈를 한 곳에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Fromagerie이다. 나는 치즈 전문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치즈 종류가 많아 선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치즈에 대한 취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스칼을 만난 이후론, 치즈 전문점을 가기 위해 주말마다 시장으로 간다. 

     프랑스의 다양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퐁텐블로 시장 

   


        Pascal은 이웃집 할아버지다. 하루는 파스칼이 나를 퐁텐블로 시장에 데려갔다. Fromagerie에 줄을 선 파스칼은 멋쩍게 서있는 나에게 치즈를 하나 골라 보라고 했다.  모양도 이름도 생소한 치즈가 주먹만 한 크기부터 자동차 타이어만 한 크기까지 족히 150개는 돼 보였다. 나는 파스칼에게 치즈를 좀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무척이나 당황하며 어깨를 으쓱,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치즈는 정말,,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  "Ca depend!" 



    "Ca depend!" 은 프랑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It depends on you와 같은 말이다. 프랑스의 어느 식당에서 알쏭달쏭한 이름이 가득한 메뉴판을 붙잡은 채 종업원을 바라보며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도, 이 말을 들었다. 관광지에 있는 식당에선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성의 없이 아무 메뉴를 찍기도 했다.


    한국에서 나는 '추천 메뉴'라는 글씨를 보면서 선택의 도움을 얻었었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메뉴가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추천 메뉴, 인기 메뉴는 찾아볼 수 없다. 형형색색의 병이 끝없이 펼쳐진 와인가게에서도, 바구니에 빵이 무작위로 쌓여있는 베이커리에서도, 나는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눈을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다 뒤에 서있는 사람을 먼저 보낸다. 이럴 때마다 망설임 없는 프랑스인들이 부럽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모양이다.





     파스칼은 어렸을 때부터 치즈가게를 다니며 자신이 좋아하는 치즈를 찾았다고 했다. 이제 시식을 하지 않고도 늘 찾는 치즈가 생겼다며 블루치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빵과 와인도 사야겠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나는  Brie de meaux라는 치즈를 샀다. 향이 약한 브리(Brie) 치즈이면서 이 근처 Meaux(모)라는 지역에서 만든다기에 왠지 끌렸다. 집에서 바게트와 함께 먹던 부드러운 브리치즈의 맛은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풍미가 좋았다. 치즈 전문점의 치즈는 공장에서 만드는 마트 치즈와는 달리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치즈 먹는 재미가 주말엔 나를 시장으로 이끈다. 조금씩 맛보기 시작하며 지금 현재 가장 좋아하는 치즈인 Tomme de brebis(산양으로 만든 치즈)를 발견했다. '맛'의 세계 속에서 기쁜 순간이었다.  



  

 프랑스는 왜 미식의 나라일까? 


      프랑스 음식 중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음식은 드물다. '이탈리아 파스타와 피자, 터키 케밥, 영국 피시 앤 칩스' 등 다른 나라 음식점은 세계 어딜 가도 얼마나 많은가! 글로벌한 프랑스 음식은 없지만, 종류의 '다양성'은 프랑스가 으뜸간다. 치즈가게를 가도, 와인가게를 가도, 종류가 많아 다양한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선택권이 많을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 쉽다. 세세한 개인의 취향까지도 찾을 수 있는 곳, 프랑스를 미식의 나라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음식의 '다양성'이 프랑스를 미식의 나라로 만든다.    프랑스 시장에 가는 날은 다양함을 체험하는 날이라 행복하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다양성'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프랑스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며 우선시한다. 이것은 프랑스가 나에게 이상적인 이유다. 개개인의 가치 체계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는 기준이 된다. 신념과도 같은 가치 체계들은 자주 충돌하는데, 프랑스의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이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프랑스인들에게도 절대 타협 불가인 영역이 있다. 그들의 오랜 문화를 형성해온 연금제도를 위해 두 달간 대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다양성'을 중심에 두고 나면 각기 다른 가치체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다음엔 '프랑스의 다양성'을 주제로 글을 써보아야겠다.




'개취'를 발견하고 '개인'이 존중받는 근사한 곳. 

 잔디 깎으며 인사하고 가는 파스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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