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운하에서의 행렬이 끝나자 사람들은 자리를 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인파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로 떠밀려 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도시의 골목 때문에 사람들은 곧 분산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이 골목들을 지나 산 마르코 광장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시 모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광장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시간을 더 보낼 것이다. 11시 18분. 하루가 끝나기에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았고, 벌써 숙소에 들어가기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들뜬 마음이 공기중에 떠다니는 듯 했기에 여자는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도시의 외곽보다는 산 마르코 광장 근처의 중심부에 호텔이나 레스토랑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광장을 지나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여자의 숙소 역시 산 마르코 광장에서 4분 거리에 있었다.
여자가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들에 둘러싸인 사각형 모양의 광장에 사람들이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 건물들은 보통 노란색 계열의 조명을 쓰는 유럽의 다른 랜드마크들과 달리 하얀색 조명으로 밤을 밝히고 있었는데, 과연 흰색 기둥에 걸맞는 빛깔이었다.
하늘을 보니 가끔씩 자그마한 불빛이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하늘로 딱총처럼 생긴 무언가를 쏘고 있었다. 곧 다시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원판을 하늘로 날리는 순간에는 마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여자 자신도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라에몽이 프로펠러가 달린 막대기를 머리에 달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말이다.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신에, 우주에 닿고 싶다는 인간의 오래된 열망과 자유롭게 날아보고 싶다는 염원은 이카루스의 비극을 비롯해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전정신을 일깨웠다. 오늘날에는 비행기라는 수단으로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고 싶어요’는 어린이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꿈들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하늘을 난다’라는 행위와 관련하여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는 비행기 속 사람들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장치 없이, 저 높은 하늘 위의 공기와 바람과 차가운 온도, 스쳐지나가는 구름을 모두 느끼면서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글쎄,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카이다이빙이라면 반쯤 가능할지도.
어쨌거나 산 마르코 광장의 밤 풍경은 상당히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다. 여자는 아이들이 쏘아올리는 저 딱총이 하늘에 올라가 불꽃놀이처럼 팡 하고 터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이렇게 항상 이렇게 순수한 동심에 빠졌다가 현실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끝내지만, 그래도 불구하고 다시 감상에 빠져드는, 남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사람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오늘 이 광장에서 다른 행사가 열릴 예정이니?”
키가 작고 통통한 중동계 외모의 여자가 여자에게 영어로 물어왔다. 여자는 내리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려 여자에게 영어로 대답했다. 너무 오래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뒷목이 뻐근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아마 아닐 것 같은데. 새로운 행사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아, 너 말이 맞는 것 같다. 광장에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나와있어서 혹시 개막식 축제가 아직 남았나 물어봤어.”
“그냥 이 밤을 즐기는게 아닐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잖아.”
“그러게.. 정말 아름다워. 불꽃놀이가 있으면 정말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오 정말 그렇다. 생각도 못해봤는데, 불꽃놀이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
키가 작은 여자는 여자에게 남은 시간을 즐기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여자는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길을 물어보는 것,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 사람들이 어느 목적을 지니고 있든지 간에 모두 좋아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혼잣말을 하지 않는 이상 목소리를 내 말을 할 일이 없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러다가 자신의 목소리도 잊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대화라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여자의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평소라면 만나기 어려운,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여행의 묘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짧은 대화가 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떠한 짧은 대화가 하루의 기분, 여행의 분위기, 혹은 인생을 바꿔버릴 지도 모른다. 배우자나 연인,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인생의 모든 중대하고 견고한 인연들 역시 모두 시작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게 바로 나비효과이고, 그렇기 때문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여자는 항상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인 만남이었음을 깨닫는, 그런 낭만적인 순간이 오기를 꿈꾸는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직까지는 옷깃만 스쳐서 이어진 인연의 상대는 한 명도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