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딸과 무계획 엄마의 여행기
결국은 일본에 가고야 말았다. 둘째 딸과 언제 한번 여행을 가자고 별러오던 터였다. 예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벼락치기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원래는 지인과 정읍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사 예약인원 미달로 여행이 취소되면서 급작스럽게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하루 만에 일본으로 떠났다.
아무리 극강의 p라도 좀 심했다는 생각은 든다. 급하게 여행을 잡아도 최소 3주 정도는 시간이 있었다. 3주 동안 여행 동선을 고려해서 숙소도 정하고 대략은 어디서 무얼 할지 정도는 알아봤었는데 하루 전에 예약한 건 처음이다. 하루 전이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안되면 말고 식으로 출발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약간의 정보와 준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얻은 게 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험보다 자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둘째 아이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다. 어릴 때부터 차분하고 생각이 깊고 상대방을 많이 배려하고 예의가 발라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이번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닮았다기보다는 비슷한 다른 존재였다.
대충 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안되면 말고 식의 여행스타일이 딸에게 부담을 주었을까? 전날 여행준비를 하면서부터 말이 없었다. 비행기에서도 도착해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이틀 되던 날 속마음을 내비친다. 급작스러운 여행은 본인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당황하게 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 내가 아무리 좋아도 다른 사람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족에게는 적용을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워도 여행은 무조건 좋은 거야 ‘라는 나만의 틀에 딸을 끼워 넣고 만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이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벼락치기 여행을 하면서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아이의 편견이 깨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에는 실수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봐봐 이번 여행이 헤매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잖아. 좋았잖아라는 의미를 넣어주려는 의도가 어렴풋이 있었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갑자기 오는 여행은 엄마만 좋을 뿐이었는데 원하지 너를 억지로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의 표정이 풀린다. 이런저런 얘기도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나의 사과를 받으니 기분이 나아졌다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가라앉았다. ‘해외여행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까지 왜 왔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마음은 미안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찬물을 끼얹은 듯이 냉랭해진 가슴으로 나머지 일정은 어떻게 하나 싶었다. 남은 여행에 먹구름이 드리우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르고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나의 차례다. “스트레스가 많았구나. 이번 여행으로 잘 못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이런 경험을 조금 해봤으면 했는데 이 역시도 엄마의 생각일 뿐이네. 다음에는 준비할 시간을 갖거나 급하게 오게 되면 다른 사람과 오도록 할게.”라고 말해주었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모녀의 갈등과 풀어짐 이후에 남은 일정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나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일본의 교통체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버스를 잘못 타거나, 거스름돈을 못 받거나, 기차티켓을 재결제하면서 수수료를 물거나, 시외의 엉뚱한 도시로 가서 헤맸다거나 한 에피소드가 즐비하다.
하지만 딸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는 않아 보였다. 겨울철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두 시간 이상 걸어가 여긴가? 아닌가? 그럼 다른 데로 가자. 아무 일정이 없어서 그때그때 목적지가 바뀌어도 플랜 b, c를 내놓는 딸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나도 더 이상 딸의 기분을 살피지 않아도 되었다. 딸의 마음을 알았고, 나의 마음을 전달했으니 괜찮다고 안심이 되었나 보다.
완벽함을 좋아해서 시도하기 어려운 딸과 무계획도 계획이라며 무조건 가야 하는 엄마,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여행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해피와 새드 어느 사이의 결말은 얻는 지금, 서로의 스타일을 알아 버린 두 사람의 여행이 계속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