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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종근 Jul 04. 2022

할머니를 기억하는 유쾌한 방법

“당진에는 놀러 갔다 오셨나요?” 식사 자리, 뒤집어 둔 휴대폰 케이스 안에 든 빛바랜 당진발 버스 티켓. 별안간 그 티켓은 당진행 왕복 티켓이 된다. 이용 요금은 1초 내외, 면을 치다 말고 잠시 당진으로 떠난다.


포근했던 20년 크리스마스의 이튿날은 할머니의 발인 날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장례식장은 내내 한산했다. 오래 앓으셨던 터라 기별 없던 안녕은 아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그럼에도 슬픔에 지쳤던 며칠간. 나는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새우잠을 잤다. 꿈속에서 두 달을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의 형제들은 똘똘 뭉쳐 할머니를 돌보았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10월 말, 엄마를 따라 당진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요거트를 비롯한 주전부리와 과일, 생필품을 한 상자 사서 콜택시를 탔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엄마 혼자 보내기 걱정돼서, 왠지 그날은 가야 할 것 같아서. 어쩌면 나 자신에게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썩 괜찮은 손자라고 면죄부 아닌 면죄부를 주고 싶어서. 고작 20분 남짓한 시간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누워 계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말라 있었다. 짐작이 갔음에도 그 용도를 모르고 싶었던 기구도 할머니의 곁을 지켰다. 어릴 적부터 봤던 할머니의 인자한 모습은 아쉽게도 찾기 힘들었다. 편찮으셨으니까 그 예민함이 이해가 갔다. 그날은 할머니에게 ‘못생겼다’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날이기도 하다. 나는 웃었다. 그 솔직함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기억의 파편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명절에는 좁은 안방에서 대여섯 명이 끼어서 자곤 했다. 잠자리가 불편해 새벽에 깨어 나가면 항상 할머니가 일어나 계셨다. “불편해서 어떡한댜”, “조금 더 드러누워 자다가 가지” 으레 하는 아침 인사지만 매번 정답고 기분 좋은 새벽의 대화였다. 다시 어떤 아침, 할머니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받은 적이 있다. 어린 내가 받기에 큰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내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주셨다. 떠나는 길, 할머니에게서 받은 봉투를 엄마에게 건네자 엄마가 울었다. 엄마가 드렸던 용돈 봉투를 내게 그대로 주셨던 할머니, 아빠는 차를 돌리지 않았고, 가족들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할머니를 둘러싼 짧고도 강렬한 기억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 놀러 간 게 아니고,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나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백이면 백 질문을 던진 당신은 난처해하고 사과한다. 당신도 나도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이 작고 작은 소동이 반갑다.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버스 티켓을 넣어둔 자리인데, 늘 손이 닿아 있는 휴대전화의 뒤편인데, 자꾸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뒷전이 된다. 그래서 그런 물음이 매번 고맙다. 나를 잠깐이나마 할머니에게 데려다주어서, 또 때로는 옆자리에 앉아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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