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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소리 Apr 19. 2021

ISTJ와 ENFP의 감정분출법

ISTJ: 연탄불 같다. / ENFP: 가스불 같다.

지난번 발행한 글에서 소소하지만(?) 우리 둘의 결혼생활을 여름날의 파리처럼 괴롭혔던 간극을 얘기했었다. 서술된 길이는 비록 5분의 시간에 독파 가능하지만 그 안에는 20년에 걸친 몰이해와 이해, 갈등과 화해, 설득과 체념의 장구한 역사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기왕에 간극의 원인을 제시했으니 이제 서로의 차이점을 몇 토막으로 나누어 몰이해가 어떻게 이해로 바뀌었고,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었으며, 설득과 체념의 상호 변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얘기하고 싶다. 대체로 신혼 때는 도대체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갈등이 숙주가 되어 둘 사이에 터를 잡고, 결코 성공할 리 없는 설득이 종종 싸움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신혼(新婚)이 신혼(辛婚)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그래도 나는 안 그럴 것이라며 결혼 전부터 장담했었다. 그러나 장담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불길한 그림자를 만나고 만 것이다. 그래도 20년쯤 지나면 몰이해와 갈등이 이해와 화해의 탈을 쓴 체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담의 손가락에 닿아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듯이. 


ISTJ는 통칭 '세상의 소금형'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나는 결코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오지는 않았다. 적당히 이타적으로, 때로는 적당히 이기적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의 잿가루'로 살아오지는 않았다는 점은 장담한다. 적어도 바퀴벌레처럼 인류의 행복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살지는 않았다. ENFP는 '스파크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내가 신안 염전의 짠 소금보다는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맛소금에 가깝다면 나의 ENFP는 별칭 그대로 확실한 '스파크'다.


신혼 시절 둘 사이의 감정이 첨예하게 대립된 지점은 육아문제였다. 나의 ENFP는 내가 육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분노했고 나는 나름대로 육아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 점을 나의 ENFP가 몰라준다고 푸념했다. 나의 ENFP는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육아는 오로지 장인, 장모님 몫이었고 아침마다 아이를 장모님에게 데려다주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나는 자는 아이를 안고 장인어른 댁(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의 5층) 계단을 매일 오르내렸다. 나는 제법 오랫동안 이 고역을 감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전광석화처럼 짧은 기간이었다고 일축했다. 기억은 흔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되므로 나의 아침 일과는 나와 아내가 서로 다르게 주장하는 기간의 평균값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아문제가 급기야 화산 폭발을 일으킨 것은 내가 아이들 야간 자율학습 지도를 위해 학교에 밤 10시까지 남아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10시가 되어 학생들을 보내 놓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장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아내와 함께 학교 앞에 차를 대 놓고 있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부랴부랴 내려가 보니 장모님과 아내만 온 것이 아니라, 장인어른, 처형, 처남까지 모든 가족이 총출동했다. 모두들 차에서 내렸는데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산후 우울증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하교하던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하면서 이 기이한 장면을 대단한 호기심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아이들 눈에는 아침 막장드라마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안고 내연남을 찾아온 어느 여자와 여차하면 멱살을 잡을 기세로 그 여자를 옹위하고 있는 일단의 패밀리. 이 장면의 진실한 내막을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못했으니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장면을 기억하는 몇몇은 나를 선생의 탈을 쓴 파렴치한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색함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하는 순간, 

"집에 들어오지 말고 학교에서 살아라!"

아내의 물 먹은 고성이 한밤중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어두워서 얼굴빛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새빨간 능금을 닮았으리라. 나의 ENFP는 이렇게 갑자기 능금이 되고 갑자기 폭발한다. 마치 가스불 같이. 이 말을 들은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놀면서 집에 안 들어온 것이냐?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건만 나를 가정을 내팽개친 불량 가장으로 몰다니.'

그날부터 나는 아내 앞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삐지면 상당히 오래간다. 마치 연탄불 같이. 그리고 아내의 비수 같은 말을 머릿속 노트에 꾹꾹 눌러써 놓는다. 30년이 지나도 절대로 잊히지 않도록. 그리고 부부싸움을 할 때면 쪼잔하게도 노트 속에 써 놓은 그 말들을 가끔 과거의 방에서 소환한다. 그러면 아내는 질겁을 한다.

 "남자가 뭐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 지질하게."

지질하거나 쪼잔하거나 어쩌란 말인가? 나는 ISTJ고 그렇게 생겨먹은 걸. 하지만 나의 ENFP는 불 같은 감정상태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길어야 이틀이다. 쉽게 가스불을 켜고 쉽게 밸브를 잠그는 성격인 것이다. 심지어는 몇 달이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아내의 MBTI를 몰랐던 그때 나는 아내를 놀린다고 '이기복 여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감정의 기복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는 의미인데 나름 아내를 제대로 표현한 별명이라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내가 ENFP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 아내에게 '기복'이라는 족쇄를 채운 것이 좀 미안하다. 내가 ISTJ라서 쪼잔하듯이 아내가 ENFP라서 스파크 같은 것을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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