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아오기 위해 여행한다.

- 여행을 통해 '나'를 연구하기

by 벨소리

코로나 19로 전 세계적인 여행 봉쇄령이 내려졌다. 많은 여행 애호가들이 여행의 변비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조금씩 국경을 개방하고 있지만 여행에 대한 심리적인 해빙기까지는 아마도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행을 꽤 즐겨했던 나도 최근에는 여행 사진을 보면서 추억팔이를 하거나 여행에 대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줬으며 나의 삶에 무슨 변화를 가져왔는가?

코로나 19로 텅 빈 공항은 여행 마니아들에게 '여행 공황' 증상을 불러일으킨다.

적지 않게 여행을 했던 나에게 여행은 '나'의 참다운 모습을 제대로 알게 해 주는 행위였다. 아내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나는 여행할 때 평상시보다 훨씬 말이 많으며 더 진지하고 더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나'를 '여행하는 나'와 '여행하지 않는 나'로 나누기도 했다.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 모두 마찬가지지만 처음 나에게 여행은 '학습'의 수단이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것이 있다. 17세기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교양을 쌓고 학습을 하던 여행 형태다. 나는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생 때 알바로 번 돈으로 캐나다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게 나에게는 첫 해외 경험이었으며 나의 그랜드 투어였다. 첫 경험의 강렬함은 고정관념을 만든다. 학습을 위한 여행은 어학연수로 만들어진 나의 고정관념이다. 이 고정관념으로 인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신혼여행까지 영향을 받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으로 계획했고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신혼여행의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다.


'학습'을 위한 여행은 나에게는 젊은 시절의 소나기 같은 것이었다.


결혼 후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다. '여행은 학습이다.'라는 생각이 콘크리트를 뚫은 못처럼 단단히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여행지 선택부터 학습과 결부 지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름다운 해변과 낭만, 여유가 넘치는 휴양지는 선택지에서 배제되었고 유물과 유적이 많아 공부할 거리가 풍부한 곳이 선택되었다. 그래서 주로 유럽을 여행하며 유적지를 탐방했고 안내문에 적힌 유적지 해설을 꼼꼼히 공부했다. 간혹 현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서 열심히 '학습'하기도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하루 종일 바티칸 투어를 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바티칸 여행은 한두 시간 정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데 장장 12시간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가며 바티칸을 여행했으니 학습 여행자였던 나는 얼마나 기뻤겠는가? 나는 가이드 바로 옆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탄생하게 된 배경, 성모 조각상 '피에타'에서 성모의 코가 깨진 스토리 등을 초등학생 같은 눈망울로 들었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설명 들을 때엔 내가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서 당대의 철학자들과 조우하는 듯한 감격적인 환상도 맛보았다. 이 여행이 나의 30대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젊은 시절 한때 나에게 여행은 학습이었다.
'7'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는 나의 현실감각을 한순간에 일깨웠다.


하지만 40대가 되자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내 여행도 점점 늙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녀도 지칠 줄 몰랐던 체력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야자수 그늘 아래 썬베드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는 못한 내가 학습여행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프랑스 파리를 여행했을 때였다. 두 가지 종류의 투어가 있었다. 하나는 오전에는 루브르 박물관, 오후에는 시내 투어였고 다른 하나는 오전에는 루브르 박물관, 오후에는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학습 여행자였던 나는 당연히 '루브루+오르세'를 선택했다. 그런데 '루브루+오르세'는 40세 이하라는 연령제한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기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여권의 생년월일까지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7'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는 나의 현실감각을 한순간에 일깨웠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이제는 휴식을 위한 여행을 할 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휴식도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에게 여행은
지루한 아스팔트 길에서 간혹 만나는 벤치 같은 것이었다.


학습을 위해서건, 휴식을 위해서건 여행은 떠난 곳으로 돌아오는 행위이다. 집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면 '가출(家出)'이지만, 집을 영영 떠나면 '출가(出家 또는 出嫁)'다. 나의 여행은 모두 가출이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출가한 사람을 종종 만난다.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6개월째 텐트를 메고 '출가'한 한국인 중년 남성을 만났다. 그는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는 듯했다. 물론 언젠가는 돌아가겠지만 곧 다시 떠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에게는 여행이 곧 삶이니까. 여행이 삶인 그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삶을 이해하지만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에게 여행은 지루한 아스팔트 길에서 간혹 만나는 벤치 같은 것이었다. 잠시 앉았다가 이내 엉덩이를 들어야 하는 그런 벤치 말이다.

결국 나는 삶을 위한 여행을 했지, 여행을 위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학습 여행을 했던 나도 진정한 '나'이고 나이 먹어서 휴양을 위한 여행을 했던 나도 진정한 '나'이다. 여행을 떠올리면 항상 다시 돌아온 내가 떠오른다. 돌아와서는 출근과 일, 그리고 퇴근이라는 단조로운 삶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시 뭔가가 허전해지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간혹 생각해 본다. 그런데 나의 삶의 길이 '지루한 아스팔트 길'이 아닌, '아름다운 산책로'라면 벤치가 필요 없지 않을까? 출근길이 여행길처럼 느껴진다면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하루하루의 삶이 활기차지 않을까? 그런 불가능한 일이 과연 가능할까? 오늘 아침도 22층 베란다에서 지하철역을 내려다본다. 거기에는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분주히 뛰어가는 직장인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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