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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소리 Aug 06. 2020

ISTJ와 ENFP의  결혼 이야기

가시밭길을 비단길로 만드는 법

결혼의 성패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얼마나 인내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지에 달려 있다. 성격, 가정환경, 성장배경 등이 똑같은 쌍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라는 말은 "우리 커피숍에서는 아메리카노를 팔아요."처럼 뻔한 이야기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의 교집합이 크면 클수록 좀 덜 싸울 수는 있지만 덜 싸우는 것이 원만한 결혼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부부 역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우리 부부는 지난 20년 간 숱한 지뢰밭을 함께 헤쳐 나왔다. 물론 몇 번 지뢰를 밟은 적도 있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내상 및 외상을 입은 적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끈끈한 전우애로 서로 다독이며 지금의 결혼 20년이라는 금자탑 위에 서 있다. 나는 이참에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지나온 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앞으로 헤쳐 나갈 길이 험난한 비포장 도로가 아닌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오솔길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혈액형 성격을 믿지 않는다. 50년을 B형으로 살아왔는데 세간에 떠도는 'B형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MBTI 성격검사를 하고 난 후, 20년 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리 돌려도 맞추지 못했던 큐브(정육면체인데 서로 색깔이 달라서 돌려가며 맞추는 장난감 있지 않은가?)가 한순간에 맞아 들어간 느낌이었다. 20년 동안 왜 아내와 내가 그토록 잦은 의견 충돌을 보였는지. 왜 나(또는 아내)는 아내(또는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내가 ENFP라는 것은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내와는 알파벳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ISTJ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미지 출처: 좋은일컴퍼니>

아마도 순전히 '재미'로 만들어졌을 MBTI궁합표에 의하면 아내와 나의 결혼은 '파국'으로 종결지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지금 매우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든다. 최근 아내와 나는 꽤 큰 '지뢰'를 밟았는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둘 사이가 더 돈독해지기도 했다.


그럼 MBTI가 그냥 한량들이 만들어낸 소일거리에 불과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돌아봤을 때 MBTI가 아내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내와 나의 전쟁 같았던 결혼생활이 좀 더 빨리 종전과 영구적인 평화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다고 내가 MBTI의 맹신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MBTI는 성격의 일면을 말해줄 뿐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잘 안다. '세상의 소금형'이라고 하는 ISTJ들은 부끄럼을 많이 탄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약간의 뻔뻔스러움도 갖고 있다. 반대로 '스파크형'이라는 ENFP들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아내는 인간관계의 폭이 대단히 좁다. 아내가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되어 나도 그들의 가정사를 다 외울 정도다. 그래서 어떨 때는 아내의 친구들이 내 친구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의 ISTJ와 ENFP들이여! 내가 나와 아내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부디 그대들의 이야기로 착각해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선한 의도를 공격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 아내는 세상의 수많은 ISTJ와 ENFP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기혼자들은 모두 주례 선생님 앞에서 했던 혼인서약을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20년 전 주례 선생님 앞에서 긴장했던 나와 아내의 모습을 종종 떠올린다. 그때 주례 선생님이 "신랑(혹은 신부)은 신부(혹은 신랑)를 평생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예!"라고 힘차게 대답했지 "예?"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신성한 서약은 주례 선생님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양가 부모님 및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한 모든 하객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나는 이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 피눈물 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겹살 마니아인 아내를 만나 삼겹살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내는 회 먹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회 마니아인 나를 만나 지금은 회를 찍어 먹는 초장 맛에 길들여졌다. 이것이 결혼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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