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
우아함을 나타내는 데에는 옷이 한 몫한다.
옷은 나를 존중하는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옷이 날개란 말도 있듯이 어떤 복장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옷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삶의 자세를 보여 준다.
밤무대 나가는 사람처럼 금색과 빨강이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고 정중한 모임처럼 격식과 예의를 갖춘 사람들과의 만남이 흔치 않은 자일 확률이 높다.
화려한 옷은 화려함으로 끝난다.
그 옷이 내가 사는 삶의 품격을 전부 말해주지는 못한다.
우아한 복장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비춰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보다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건 말과 행동이 드러나는 우아한 마음이 먼저다.
우아함은 품격에서 시작된다.
우아한 옷은 나 자신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자신을 명품처럼 다루겠다는 약속 말이다.
나를 존중하는 것처럼 타인도 존중한다. 그 존중들이 모여 사회의 품격을 만든다.
자기 자랑보다 더 중요한 건 명품이 아닌 정돈된 깨끗한 옷과 따뜻한 눈빛 그리고 단정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의 자기 관리다.
진짜 품격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하루하루 태도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미국 사람이 룸메이트였다.
그 여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절대 씻지를 않았다.
샤워는커녕 기본적인 손과 발을 씻지도 않았고 진한 화장을 절대 지우는 법이 없었다.
외출 그대로의 몸으로 옷만 잠옷으로 갈아입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베개를 보면 반짝이는 새도우와 까만 마스카라가 자리를 크게 차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녀를 볼 때면 머리는 귀신 산발이었고 눈은 아이라인과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 같았고 입술은 붉은 피가 흥건해서 드라큘라 같았다.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한다며 씻지도 않고 그대로 나갔다가 주유하고 돌아온 후, 약속 있어 진짜로 외출할 때에야 샤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말끔하게 씻고 새사람이 되어 나온다.
외출할 때는 집에 있을 때와 달리 언제 그랬냐는 듯, 멋을 잔뜩 부리고 나와 남자랑 데이트 가듯 멋쟁이 미국 여자로 완전 변신하곤 했다.
그녀의 성격은 방 청소도 뿐 아니라, 설거지도 몇 날 며칠 안 하고 밀려 있을 만큼, 이루 말할 수 없이 털털하지만(사실 더러운 거에 가깝다) 사람들 만날 때는 요조숙녀가 되어 엘레강스한 자태의 여인으로 탈바꿈했다.
그녀와 룸메이트를 해본 사람은 본보습을 알기에 어떤 누구도 그녀의 품격 있는 척하는 행위에서 신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한 남자를 만날 때면 수줍어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나에 대해 말한 적도 있었다.
어젯밤 내가 외출하고 바로 침대로 들어가 잤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깜짝 놀라 "I'm not you"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자기 나라 남자들 앞에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녀인데 창피 주고 싶지 않아 내 말만 했다. "I always take a shower nomatter how much tired of i am"이라고 했더니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여 미국 남자들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
그녀는 평소 생활도 더럽고 말과 행동도 거짓말 투성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한건 불안 속에 자신을 감추기 위한 태도였던 것 같다.
원래 위선적인 사람 그리고 실력 없는 사람 즉 안이 텅텅 빈 사람들이 시끄러운 법이다.
이처럼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품격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한 사람은 탄로 나고야 만다.
화려한 언어보다 진심 어린 한마디가 오래 남고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가 있는 자가 진짜 품격 있는 사람이다.
옷과 인상은 그날 하루를 나타낼 수 있지만 말과 행동은 평생 간다.
태도는 운명을 바꾸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깎아내리기 전에 스스로를 낮추는 건 어떨까.
품격은 친절함에서 온다. 그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존중이 기본이다.
단정함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옷차림은 그를 나타내는 언어의 시작이다.
마음이 말이 되고 태도가 되고 인품이 된다.
그렇게 살아온 인품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향기가 된다.
우아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우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품격이기에 아무리 명품을 온몸에 걸치더라도 말이 거칠고 상대에게 무례한 행동은 그 사람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에서 그 사람의 진짜 품격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만남을 못 한다고 말했는 데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들어 죽일 것처럼 "너 뭐 하는 사람이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사람이 왜 그렇게 생겨 먹었어?"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해보자.
여기에서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어떨까. 결국 똑같은 사람 밖에 안 되는 거다.
어제 못 간다고 말했다며 더욱 확실히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내 잘못도 있다고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배려하며 끝까지 존중을 잃지 않는 다면 상대도 악마가 아닌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을까.
진짜 강한 사람은 언제나 부드럽게 말한다.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소리 지른 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평소에도 배우자와 고함지르며 죽일 것처럼 대판 싸워도 화해하면 뒤끝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싸울 때 그러한 말과 행동은 평소에 쌓아온 습관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공격을 받은 상대는 이해한다고 말할지라도 가슴속에 상처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날 공격받은 상대에게 말과 행동을 극히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날 건드리지만 않으면 난 온화한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건 스스로 지난날 자신이 너무 과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변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듣는 상대에게는 그렇게 전달될까. 마치 자기가 상대를 건드려서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듯 또 시비건다고 생각해 매우 불쾌해 할 거다.
공격한 그는 또한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불평불만의 원래 성격이 드러날 것이다.
평소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말의 향기가 바로 인생의 품격이 된다.
마음이 정돈된 말과 절제된 행동의 단정함은 품격으로 완성된다.
품격을 지켜라.
조용히 말하고 신중히 행동하자.
그 말에 울림은 상대의 가슴속에서 오래 남는다.
따뜻하면 울림이 되고 차갑다면 경계가 될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생을 닮는다. 비난과 불평 지적과 비교를 채운 사람은 결국 타인으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
반면 격려와 칭찬으로 채운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자리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말 그리고 태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 준다.
조용히 않아 있어도 품격이 있는 사람이 있고, 한마디만 해도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진짜 품격은 배려의 온도를 갖춘 자다.
상대와 부담 없이 함께 할 줄 아는 사람 말이다.
가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험담으로 공감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 그건 가장 값싼 유대 방식이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얻은 웃음은 결국 사람도 잃고 자신도 무너뜨리고야 만다.
남 흉보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도 흉볼 사람이기에 그때는 새로운 정보를 듣고 흥미를 느낄지 모르지만 얼마 안 가 서로를 피하는 공범이 된다.
험담은 겉으로는 진실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질투와 분노가 섞여 있게 마련이라 사실을 넘어 과장되게 표현된다.
마치 그의 모든 걸 다 아는 듯 말하곤 한다. 예를 들어 결혼해서 잘 사는 그의 과거 충격적인 연애 생활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마치 모든 과정을 낱낱이 알고 있다는 듯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지금 불행한 연애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 확률이 아주 크다.
그 당시는 험담을 통해 공감을 얻는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험담을 하는 자 곁에는 반드시 불행이 머문다.
그 관계는 진심이 아니라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누군가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또 다른 험담이 오기 마련이다.
남의 사적인 걸 서슴없이 퍼트리는 자와 현재 연락하며 지내는 중에는 진실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험담 대상을 생각해 보라. 과거에 잘 지냈던 사람일 확률이 크다. 그러므로 당신과 연락 안 하는 날이 올 때면 그는 또다시 당신을 미끼 삼아 열렬히 소문을 퍼뜨리게 될 거다.
그곳에 오래 머물면 그 냄새에 물들게 마련이다. 사람은 듣는 말에 따라 닮아간다.
좋은 말을 들으면 긍정의 기운이 올라와 밝은 사람이 되고, 나쁜 말을 들으면 부정의 감정이 올라와 마음의 질서가 무너진다.
들었을 때 맞장구치지 말고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별로 큰 이슈가 아니라는 듯, 침묵으로 대한다면 경계로 알아듣고 "아 이 사람이 재미없구나"속으로 생각하면서 멈출 거다.
그렇게 되면 부정적 기운이 들어오는 걸 멈추는 동시에 나의 명예도 지킬 수 있다.
부재중인 험담 대상이 될 뻔한 자를 지키는 관계가 평화를 만든다.
그 얼마나 멋진가.
입에는 인생이 들어 있다.
그 인생을 더럽히지 말자.
입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하자.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숨어 있다.
만약 의사가 환자한테 숱한 질문으로 시간을 끈다면 신뢰가 생기지 못한다.
반면 질문 대신 확실한 진단으로 처방을 재빠르게 내린 의사한테 신뢰가 갈 것이다.
과외 선생님이라면 학생과 대화를 통해 힘든점을 파악하여 학생의 수준을 확실히 알고 정확한 미션을 주는 사람만이 신뢰를 얻는다. 그렇지 않고 남들 다하는 걸 너는 왜 못하냐며 불평불만만 가득하다면 공부와 선생님에 대한 학생의 마음은 닫치게 될 것이다.
지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만이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의 가능성을 품게 한다.
들을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람을 얻고 성장한다.
그 사람이 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면 사람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욕심을 비워 내고 자신을 낮춰 상대의 소리를 경청한다면 모든 가능성은 무한히 열린다.
비움이 평화가 되고 그 두가지가 공존하게 되면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이 바로 무슨 일이든지 가능케 하는 지혜의 공간이다.
선한 말이 흐르고 긍정의 기운이 머무는 관계가 아름답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시간이 있다.
어떤 이는 빨리 피어나고 또 누군가는 늦게 피어난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잘하는 데 왜 이 사람들은 못하냐고 다그치고 불평을 쏟아 낸다면 비교받은 자들은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고 그에게 경계를 세울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품격을 지키면 자식도 품격을 배운다.
행복은 소리로 증명되지 않는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절제로 인한 존중으로 유지된다.
즉 고요함 속에서 증명된다.
기쁨도 슬픔도 조용히 품고 책임과 존중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이 안정된 사람만이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만약 윗사람한테 막 대하는 개념 없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를 의심해봐야 한다.
불안이 가득한 가정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참된 일은 품격 있는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성숙이고 그건 보이지 않는 절제 속에서 완성된다.
침묵하는 지혜로움과 말을 아끼는 절제 그리고 감정을 잘 다스리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만이 가정도 자기 삶도 다스릴 줄 아는 품격 있는 자다.
진짜로 우아한 삶을 영위하는 자는 조용한 가운데 귀를 열고 사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
그러한 배려와 존중의 여유가 인품의 결을 드러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