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by belong 빌롱

얼마전 남편 동료였던 의사분이, 과로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참으로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사망이었다.

물론 그분은, 앓고 있던 지병이 있으셨다.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피로를 느낀다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

가족의 일원 누군가 자주 피로를 호소한다면, 다른 것 다 제쳐 두고 무조건 쉬게 해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끔 모범 지침서에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라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불공평하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시작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나온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태어난 나라부터가 다르다. 어떤 이들은 세계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 같은 굶주리고 병에 시달려 하루 하루 끔찍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태어난 곳도 다르지만 부모도 다르다. 같은 부모라도 첫째 아이에게는 모유를 듬뿍 먹이고 둘째부터는 그렇지 않다. 옷도 첫째 아이가 입었던 옷을 물려 입는 경우도 많다.

또한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불평등한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죽음은 비교적 평등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물론 생을 다 펼쳐 보지 못한 채 일찍이 사망에 이르는 사람도 있고, 모든 걸 경험해 보고 죽는 사람이 있다.

생과 사의 시간과 방법은 다 다르지만, 결국에 죽는다는 것은 같다.

화장장에 가면 보통 두세시간 정도가 되면 화장이 끝난다.

끝나고 나오는 뼛조각을 보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적게 한 사람도, 높은 권력을 누렸던 사람도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부를 누렸던 사람도 가난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그 사람이 살아 생전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예뻤는지 아니었는지, 지식인이었는지 아닌지, 키가 컸는지 작았는지, 늙었는지 젊었는지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 사람이 누구였든지 간에 한줌의 재로 나온다.

살아있었을 때 매겨졌던 가치는 죽음 후에는 모두 똑같아진다.


죽음이란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돌잔치나 칠순잔치 같은 행사는 준비해서 잘 행하듯이,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태 살아왔던 세상을 떠나는 것이야 말로 최고로 거대한 행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모든 것이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편안한 죽음을 맞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불행하게 살았다고 해도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 편안하게 갔네,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거야'란 말을 하게 된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끝이 나는 순간이다. 죽음도 또한 행복한 길이다. 문제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느냐이다.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쁘게 맞이할 수 있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도 아주 힘들게 하는 불행을 초래한다.

죽음은 예측불가다.

나는 운전을 잘 해도 다른 차가 신호를 어기고 내 차를 박아서 죽을 수도 있고, 길 가다가 '묻지마 폭행'을 당해서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아무도 예상을 못한다.


죽음은 삶의 결론이다.

잘 죽어야 잘 사는 거다.

아무리 잘 살았다 하더라도 잘못 죽으면 그는 불행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결론이 아름답고 행복해야,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인정을 받게 된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뭐든지 끝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dignity' 디그니티라고 하는 품위, 존엄성, 자존심을 뜻하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자존심을 짓밟을 때다.

예전에 티비에서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불법 마사지샵에서 고객이 여종업원에게 바라 보는 것 만으로 족하니 생각 없다며 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그녀는 수차례 물어 봤는데 진짜 생각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녀가 옷을 입은 후 가려는 데 고객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옷 벗으라고 하는 데 그녀가 거부했더니 폭행하였다..결국 그는 감옥에 갔다.

고객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공격했지만 여종업원 역시 사람인데 마음대로 휘저을 수는 없는 노릇, 무시 받고 자존심이 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킬 권리가 있다..


한 성직자가 죽음 앞에서 당황하게 되는 경우, 너무 고통스러운 신음을 하며 연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의 악영향을 끼치게 되기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격리 수용한다고 한다. 성직자의 비행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보도를 안하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성직자라서 봐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신앙의 타격을 입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사회적 피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또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가 갑작스레 찾아 왔다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거다. 그토록 죽음은 삶에 있어서 거대한 마무리 행사다.

자신의 죽음이 품위 있고 존엄한 것이 되어야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위로와 본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죽는 사람보다 함께 지냈던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 수 있다.

죽은 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로 고통 받을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정년기 때, 아는 남자가 불치병에 걸려 나를 몹시도 괴롭혔었다.

"모두가 기도한다고 말만 인사치레 할 뿐, 다들 각자 자기 일을 위해서 떠나. 내 곁엔 아무도 없어."

"모두가 미국으로 떠나, 너도 결혼으로 떠나고.. 누구는 유학가고.. 누구든 이민가고.. 날 여태 위로해주던 목사님 마저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방문해서 미국에 취업되었다고 엄청 좋아하더라"

"나의 소원은 너도 암에 걸려 내 옆 침대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나의 소원이야,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 까."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커, 그건 너가 당해보지 않아서 모를 거야. 너 떠나면 난 어떻게 살아.. 정신적인 고통은 정말 큰 고통이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많은 여자들이 나를 떠났어. 그때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어. 왜 여자들은 다 나를 떠날까. 너 떠나면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텐데. 그럴 바에야 엑셀 밟고 죽는 게 나아. 제발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비자 나온다면, 그냥 가지말고 제발 날 조금만 기다렸다가.퇴원하면 인사하고 가, 퇴원할 때 마다 네가 떠났을까봐, 내 곁에 네가 없을 까봐, 매번 입원할 때마다 몹시 두려워. 내가 퇴원했는데 네가 떠나고 없다면 난 상상치 못할 고통에 죽고 말거야. 차라리 죽으면 괜찮은데 고통받으면서도 안죽으니 문제야. 그래서 자살하는 게 훨 나아.나의 마지막 부탁이고 간절한 소원이야, 비자가 나오더라도 제발 날 좀 보고 가줘."

'너에게 잘해주지 못한 게 한이다. 너의 기억에 내가 나쁜 사람으로 기억 되는 걸 참을 수 없다. 너랑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게 한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게 소원을 들어 줘, 마지막 소원이야'

그는 매일같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로 나를 점점 옭아 맸다. 처음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좋은 의도로 만나주던 것이, 그의 심각한 스토커 행위로 인해 나를 정신이상자로 만든 사건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때, 불행한 사람은 마주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는 또한 자기가 죽을병에 걸려서 잊으려고 사랑하지도 않는 이상한 남자와 할 수 없이 결혼한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자기를 못 잊어 만나고 있다고 결정적인 증거인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며 찍은 사진까지 뿌리며 나를 옭아 맸다.

여러가지 그의 편의를 봐준 결과,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었다.

결국 파혼하게 되어 오히려 그보다 내가 정신을 잃고 병원 신세를 졌다.

그가 죽은 후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다.

"그 사람도 죽기 전 마음 속으로 너에게 용서를 구했을 거야"

과연 그렇게 뻔뻔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은 정말 상상치 못하게 다른 사람인 그, 양심 없이 거짓말을 진짜처럼 하며 살아온 사람이 그랬을까?

그의 가족까지 내가 죽였다고 교회에 소문이 돌게 만들었다.

"아들과 결혼할 사이였는데 병이 더 심해져 결혼을 못하게 되니 원망해서, 스트레스 받아 죽었다. 다 저 년 때문이야, 저 년이 죽인 거야."

그 사건은 내 인생의 황금기인 가장 예쁘고 잘 나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였어서, 가장 아팠던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끔찍하고 수치스런 사건이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랜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 데 그의 몰지각한 가족들까지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상스럽고 천박한 사람들이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을 앞둔 내게, 아들이 이렇게 사랑해 본 적 없다며 결혼하면 잘해주겠다고 까지 했을 까.



고독은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일 거다.

죽음을 혼자 맞이하게 된다는 두려움, 만약 둘이 죽는 것이라면 훨씬 더 든든한 위로가 될 것이다.


생과 사는 하늘이 결정하는 거다.

신도 거처를 준비해놨기에 자신에게로 영접하여 자신이 있는 곳에 있게 하려는 거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잘 죽는 사람이 잘 살고, 잘 산 사람이 잘 죽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동안 여유가 없던 터라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글을 오랫동안 써왔다고 생각했는 데, 브런치 작가 합격 후 반년동안 안 쓰고 있다가 쓰기 시작한지 겨우 1년 좀 넘었다.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뭔가 하니, 한마디로 다양한 분야로 열심히 써서 잘했다는 일종의 "상" "뺏지"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써라라는 응원이 담긴 메세지다.

올해부터 바뼈져서 작년만큼 자주는 못 쓰지만, 작년과 다르게 더 굵직한 내용을 담아 쓰려고 한다.

브런치 심사분들, 뺏지로 축하해 주시고 격려와 응원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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