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초등학교 시절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영화를 즐겨 보며 '엄마는 언제 찾을까"...하면서 참으로 애틋하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제노바에 사는 마르코는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의 소식이 끊기자 가족을 대표하여 엄마를 찾아 나선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오랜 항해 끝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엄마가 일하는 집으로 찾아가지만 엄마는 이미 떠나고 없다. '그 집 먼데로 이사갔는 데?'해서 또 찾아갔더니 '어쩌냐, 그 집 이사갔어.' 또또 갔더니 '일주일만 일찍 오지. 이사갔단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작중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다. 엄마가 일하고 있다는 곳에 가보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패턴이 무한반복된다. 마르코는 엄마의 흔적을 물어물어 코르도바를 거쳐 투크만까지 간다.
같은 이탈리아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짐수레를 얻어 타기도 하고 혼자 밤길을 걷기도 하는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마르코는 엄마를 만난다. 그런데 마르코의 엄마는 병에 걸려 있었다. 그동안 삶의 희망을 잃고 수술도 거부하고 있던 엄마는 뜻밖에 마르코를 만나자 수술을 결심한다. 마르코가 엄마를 살린 것이다.
결국 모국인 이탈리아로 함께 귀국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 작품이 쓰인 1866년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룩된 지 겨우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전까지 몇개의 독립된 나라들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발전을 꾀하지 못했다.
원래 중세에서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하여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이탈리아였지만,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동지중해 무역로가 막히자 각 도시 국가들은 예전의 번영을 잃고 쇠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 이탈리아 경제는 서북부 유럽에 비해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남부는 농업과 목축에만 의지하는 경제 구조였다. 게다가 자작농보다 소작농이 많아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비싼 소작료를 물고 나면 손에 거의 남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수많은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르헨티나와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신생국 미국이야말로 기회의 땅이었고, 아르헨티나는 당시 세계 5위의 부국이었던데다 넓은 땅에 비해 노동력이 부족해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마르코의 엄마도 아르헨티나로 갔던 것이다.
18세기 남부 유럽에서는 밀가격이 상승했다. 지주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밀을 모두 내다 팔았다.
농민에게는 식량용 옥수수를 기르도록 강제했다.
옥수수야말로 수확량이 두세배에 달했고 값이 싼 편이었다.
농사를 지어 수확한 후 턱없이 비싼 소작료를 내고 나면 옥수수 가루를 살 돈밖에 남기지 못했기에 이들은 할 수 없이 '폴렌타'라고 불리는 옥수수 죽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펠레그라'라는 병이 돌았다. 옥수수만 먹으면 발생하는 병으로 피부병, 설사, 치매가 주요 증상인데 비타민B의 일종인 니아신의 결핍때문에 생기는 것으로서 너무나도 가난했던 이탈리아 농민들은 발병률이 높았다.
이에 치료받지 못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가족이나 이웃끼리 함께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 당시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무서운 전염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20세기 초에 펠레그라는 유럽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다시 유행한다. 노예해방이후 노동자가 되어 노예 때보다 더 영양 상태가 나빠진 흑인들 사이에서 말이다.
현재 아프리카 농민들이 펠레그라에 걸린 이유는 옥수수만 먹어서이다. 그들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돈을 만져 볼 수 없기에 그들의 아내는 마르코의 엄마처럼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오늘도 "엄마 보고 싶어요! 어디가면 만날 수 있나요?"를 외치며 살고 있을 거다.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필리핀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새로운 마르코들의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옛날보다 흔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병이 심했던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옥수수 때문에 그 병이 발병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로 전염병인가 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실험으로 펠라그라 환자의 혈액을 주사하고, 코와 목의 분비물을 바르고, 대소변이 섞인 알약을 삼키기까지 했다. 만약 전염병이라면 모두가 감염되어야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전염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에게, 병에 걸린 사람들이 먹는 옥수수죽을 제공했는데 6개월만에 발병 되었다. 바로 옥수수만 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몬 '사회적 질병'이었던 것이다.
또한 옥수수를 먹더라도 육류나 야채, 과일 등을 곁들여 먹으면 치명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옥수수가 원산지이고 주식으로 먹는 중남미 원주민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옥수수를 석회수에 담가 갈아서 만든 반죽으로 토르띠아를 구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전통 지혜로 병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옥수수를 가져간 유럽인들은 야만인의 요리법이라고 얕잡아 보고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병의 원인이 나아신 결핍으로 밝혀진 후, 미국 정부는 밀가루 같은 주요 식품에 나아신을 첨가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수백만명을 괴롭히던 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펠라그라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질병의 원인은 세균 뿐만이 아니라 영양소에 있다는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가난과 사회적 구조가 얼마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골고루 먹는 식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크게 깨닫게 해준다.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모든 부모님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며 살아간다.
본의 아니게 가족이 단합하지 못하고 각자 떨어져 살아야 하는 구조라면 많은 힘이 들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서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참된 희생이 되는 거다.
"아빠..." "엄마..."를 생각하면 한참 어른이 된 지금의 난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동안 키워주시느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 까.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위대하고 훌륭하고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 힘든 모든 걸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건 오직 가족밖에 없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리고 배우자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사랑을 듬뿍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합니다 멋진 두분"
"사랑해 우리 자기"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