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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Dec 10. 2023

연말을 맞이해 친구와 절연했다

벌써 연말이다. 여느 때처럼 금세 흘러버린 시간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매년 시간의 가속성에 놀라곤 한다. 거리는 반짝이는 장식들로 수 놓이고, 캐럴송들이 내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장악하는 요즘이다. 날씨는 춥지만 연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느낌 때문에 한해 중 이 시기를 가장 좋아한다. 연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주 보지 못했던 인연들과 연락하고,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실을 만들 수 있다.


올해와 작년까지의 연말에서 가장 큰 차이라면 물리적 한계다. 지방으로 내려오고, 아기가 생기면서 연말임에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평일 저녁 조금 이르게 퇴근하면 서울 모처에서 회포를 풀 여건이 됐다. 집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홈파티도 자주 열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들이 불과 1년 전이지만 까마득하다. 이제는 평일 저녁 퇴근하면 장모님이 해주시는 집밥을 먹고, 나를 보며 배실배실 웃는 아기와 함께 놀고 씻기고 재우며 보낸다. 다소 들떠있던 이전의 연말과는 달리 올해 남은 시기는 늘어난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차분히 마무리할 예정이다.


서서히 내 삶 어느 순간 ‘한때’의 인연으로 내 기억 속에 남을 사람들이 늘어간다. 아등바등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인연들에게 쏟을 에너지는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먹고 살아갈 궁리에 아기까지 생기니 내 앞가름 하기도 때론 벅차니까. 그래서 여태껏 연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서 I 성향이 강해졌으나, 여전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내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런 걸 보면 E 성향이 내 기저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어제는 1년 여 만에 대학교 시절 다니던 영어학원 스터디원들과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매년 1번 정도 만나던 친구들이었는데, 올해부턴 지방으로 내려오며 경조사가 아닌 이상 당분간 보기 힘들겠다 싶었었다. 그중 한 명이 지난주에 연락이 와 결혼 소식을 알렸다. 신기하게도 결혼식은 따로 하지 않는다 했다. 미세한 의혹 아닌 의혹 플러스 궁금증이 생겼고, 이번 만남 자체가 이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는 기분으로 큰맘 먹고 서울 당일치기를 결정했다. 그 친구는 식당에서 청첩장이 아닌 손수 제작한 결혼 알림장을 우리에게 나눠줬다. 세간의 의혹이 많아 모바일 알림장에는 Q&A를 따로 빼두었다. 돌싱도 아니고, 산전임신도 아닌, 남자친구와 협의 하에 식 없이 혼약을 맺기로 한 것이다.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남다른 커리어를 쌓던 친구는 결혼마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남짓 남아있던 의혹과 쌓였던 회포를 풀고서 우린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친구들과 점심 약속만으로 서울에 오기 아쉬워 지난주에 미리 대학교 동기 한 명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놨다. 친구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남아 카페에서 유튜브, 책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사실 이 친구와는 얼마 전까지 매일매일 시답잖게 일상을 나누고, 1년에 두 번씩은 보던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작년 말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내 아내와 지인들에게 벌인 큰 실수 때문에 절교를 고민했었다. 그 사건이 기점이 되어, 올해는 물리적으로 멀어진 것도 있지만 이 친구와 굳이 연락을 매일 주고받고 계속 만나야 할까 하는 의문 부호가 커져갔다. 아내 또한 그 사건 이후 친구를 탐탁지 않게 여겨 언젠가 정리를 해야 할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연을 이어갈지 결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치 시간을 갖고서 다시 만난 연인의 마음으로 말이다.


결정의 순간은 결국 그 친구를 만나기도 전에 다가왔다. 소개팅을 마치고 용산으로 넘어올 때 연락을 하기로 했던 그 친구는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불과 20분이었지만, 1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친구와 연을 종결짓는 결정을 내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굳이 계속 만나야 하는지에’에 대한 의문과 격렬하게 집으로 돌아가 여독을 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친구에겐 아기 핑계를 대며 급히 먼저 내려간다고, 다음에 보자고 톡을 남겼다. 아마 이 친구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은 없을 것이라고.


덜컹거리는 열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는 마음은 여느 연말과 달리 차분히 가라앉았다. 어쩌면 앞으로는 조금 더 관계의 상실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상실이 삶에서 상수가 되어가는 게 조금은 서글프지만,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과 연을 이어가기엔 높아진 내 에고와 내게 주어진 시간, 체력, 정신력은 한정되있다. 나와 어떤 형태로든 연을 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내 자원을 쏟아야 하는 비정한 시절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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