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중 #1
폭풍같던 시간이 지나갔다.
혼자 겪은 폭퐁에 나는 힘없이 무너졌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이리 힘들수 있는 일이었다니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지..
그나마 세상풍파 겪어본 어른이고, 가족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떻게 이겨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작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좀 더 전문적으로 기술을 습득하기에 소위 엘리트라고 말하는 학교안의 팀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들에게 깎듯이 선배라고 부르며, 선배들에겐 존대말을 쓰는 그런 사회였다.
작은 군대처럼 한명이 못하면 다 같이 벌을 받는 그런 팀 운동이였다.
조직에서도 힘이 있는 사람들이 있 듯 이 곳에도 아이들의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부모의 서열들이 있었다.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조직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장님에게 잘하고, 임원들의 오더를 받는 일들, 모두가 나보다 존경받을만 하진 않더라도 직급으로 정해진 서열은 납득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급여라는 돈의 보상이 있었기에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다.
처음 작은 사회에 들어왔을 때 나름 가장 높은 서열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서열때문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나를 정확하게는 나의 아이를 챙겨주었다.
그런 작은 호의들이 고마웠고, 힘든 팀 운동과 부상을 겪은 나의 아이가 한해를 버텨 오늘까지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특별히 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웃으며 인사하며 감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켜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나에게 주었던 호의를 그저 받아들인 것 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졸업하고, 새로운 서열이 된 사람이 그들이 나를 무척이나 예뻐했었다며 그간 혜택을 많이 받은 것 알고 있냐며, 그들에게 스파이 짓을 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만약 오늘 애기한 내용이 소문난다면 나를 의심할꺼란 경고성 언급까지.
이게 무슨 일인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웃어넘기려 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같이 그 말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하고 더 대화를 하며 그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들도 말없는 동조를 하는 것인가 싶은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냥 흘러들음 될 말이었을 수 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 말이 내 안에서 커져 있음을 알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느새, 이 작은 사회에 들어갈 때면 주변을 의식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 코멘트를 의식하며 혹시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리 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말을 안시키는 것인지 내가 더 다가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웃으며 다가가지만, 그들은 딱히 반기지도 챙기지도 않았다.
괜찮은 듯 있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건지 확인하고도 싶었다.
그나마 속을 터 놓을 만한 상대를 찾아 연락을 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나만 모르는 무엇인가를 그들사이에서 애기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더니,
스스로 움츠려 드는 내가 보였다.
이 작은 세상은 나에게 처음이었는데, 아무리 다르다 별나다 하는 조언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내 생각이 틀렸음을 뼈져리게 느꼈다.
달랐다. 이곳은.
나의 친절과 배려보단 아이의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었고, 이 사회를 잘 아는 그들만의 소통이 있었다.
경쟁을 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경쟁 때문에 나의 아이가 고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굴 이기지 않아도 1등으로 제일 잘 하지 못하더라도 힘들게 매일을 버티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배웠던 성장에 대한 고민과 조직사회가 갖추어야 할 상식은 이곳에서 반기지 못하는 것일 수 있음을 몰랐다.
나를 사이에 두고,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거나
내가 있는 쪽으로 등을 지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순간들이 많아지다보니 더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왜지?
뭐지?
나의 아이는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이제 내가 힘들어졌다.
한번 움츠려든 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처음 내가 있는 쪽으로 등을 지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순간을 겪었을 때는 그 사람의 미성숙한 태도라 생각했었다. 이에 대한 애기를 그나마 조금 친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애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내게 그러는 순간을 지금 느낀다.
자리가 끝이라 정말 못봤을 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음을 알게된 건 며칠 후였다.
우연찮게 앉은 자리가 중간이었는데 이번엔 나를 사이에 두고, 자기들끼리만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것이었다. 두세번의 여행을 같이 다녔고, 밤을 지샜으며, 분명 즐거웠던 모임이 몇번이나 이루어졌던 사람들에게서 그런 상황을 겪었다.
직접적으로 애기하거나 행동하진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거절의 제스처를 취했던 것 같다.
중간에 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소외되었고, 나를 두고 소통하던 그들은 차를 먹으러 가자며 자리를 떴다. 다시 왔을 때는 다른 좌석으로 잘 보여야 하는 서열 높은 사람들이 요즘 들어 모여 있는 그 쪽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은근한 따돌림이였다.
몇 달 전까지 서로를 욕했던 사람들이 이젠 서로 챙기며 안부를 묻는다.
그들의 자녀를 챙겼던 내겐 등을 돌려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좌석을 옮긴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것을 돌아보게 되나보다.
그들과 여행을 함께 했던 그나마 더 친했던 지인에게 보고싶다고 연락을 해봤는데,
톡을 확인을 안하는 것을 보고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이상했다.
다음날 못봤을 수 있다 생각하고, 전화를 해보았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부재중전화가 있으니 콜백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일도 없었기에 의도적인 회피는 아닐꺼라 생각했다.
일주일정도 지나, 다시금 전화해봤다.
한참 후 전화를 받더니 잘 있었냐고 반기는 나에게 이따 다시 전화하겠단다.
급한 일이 있다고.
그래서 기다렸지만 그날 결국 전화가 오지 않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고, 힘들면 힘든 생활을 같이 겪었고 아이들과의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을 나누었다고 생각한 귀한 사람이라, 오해하고 싶지 않았고 그리 잃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 마지막을 톡을 남겼다.
한 계절이 지나서 보고 싶어서 전화했었는데, 톡도 전화도 어렵나보다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글을 남겼다. 잘 정리하고 싶었다.
그 다음날 아침이되어서야 톡을 이제야 봤다며, 오늘은 이따 전화하겠다 했다.
이미 늦은 저녁이 된 지금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가 납득할 만한 이벤트가 사건이 아님
내가 한 구설수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아이가 그들의 아이들과 놀면, 나의 아이를 픽업할 때 그들의 아이도 데려다 주었다.
같이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라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그리 하였다.
한 아이가 팀으로서 챙겨야 하는 부분을 챙기지 못했을 때도 우리 아이에게 그저 대신 챙겨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고 애기해줬고, 그 아이의 실수가 드러나지 않도록 나의 아이가 그 역할을 대신 하는 것도 친구로서 해줄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내가 썼던 그 소중한 마음을 이리 돌려받았다.
직접 물어볼까?도 생각해봤다.
"왜 나도 같이 있는데 둘이서만 등돌리고 애기하는 거예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해봤는데...
저 질문에 대해 어떠한 대답이 있어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고,
혹시라도 사과를 한대도, 다음에 또 그런다면... 하는 생각이 미치자 해야하는 질문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상황을 그리 이해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싫었다.
이런게 보이지 않는 왕따라는 거구나 싶었다.
자리를 옮기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같은 모임으로 만났지만 등을 보이며 대화에 껴두지 않는 것 딱히 잘못된 행동이라 할 수 없는 이 작은 소외가 모여 나를 구석으로 내몰았다.
반백살의 어른이 된 내가 이 작은 사회에서 왕따를 겪었다.
일주일을 이런 마음으로 한없이 작아졌다.
우리는 잘 사는 집도 아니고,
잘 난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의 아이가 대단한 실력자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너무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나보다 서열 높은 사람, 잘사는 사람, 힘있는 사람, 바른 말보단 자기말이 다 옳다해주는 사람하고만 친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것 같다.
등을 돌리며 대화하는 이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저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아도, 저 대화에 끼지 않더라도 딱히 들을 만한 주제들이 아님을 알긴 했다.
누구가에 대한 불평이었거나, 자신에 대한 자랑이었거나, 자기 아이에 대한 애기였을 거였다.
어차피 불평불만은 들어주거나 응대해줄만한 내용은 아닐꺼고,
그외 다른 대화들도 썩 건설적인 건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소외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나를 이리 대하진 않는다.
아예 비빌 언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시간들이 아닌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다가오지 않으면 내가 다가가야 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계속 외면하더라도 내가 근처를 맴돌아야 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고민도 해보았다.
근데,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았다.
외면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아채지 말고, 속상해하지도 말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나도 차등을 두고 대하진 않으련다.
표면적으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지만
나 혼자서라도 나를 챙기고 보살펴야 겠다.
난 여전히 모두를 반갑게 맞이해주려 한다.
아마 그러다보면 상처는 계속 받을 것 같다.
아이가 이 사회에 머무는 동안은 그래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이 생활을 견디는 아이를 응원하려면
나로인해 아이가 불이익 당하진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지지 못할 상황까진 스스로를 내몰면 안될 것 같았다.
그저 그거면 족할 것 같다.
더 바빠지고,
생각을 덜어내는 훈련을 하며,
상처 주려는 사람들에게 의연하게 처신하려고 한다.
반백살의 어른 왕따는 이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혹, 나와 같은 시련을 겪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한번 꼭 두팔 벌려 스스로를 안아주라고,
우리 아이가 학교에 있을 때마다 집에 오고 싶었고, 내가 보고 싶었단다.
그것이면 족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전혀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의 코멘트에는 최대한 보지 말고, 듣지 말라고 하고 싶다.
모르는게 제일 좋긴 한데, 만약에라도 느끼게 된데도 괜찮다.
더 중요한 것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만약, 나처럼 알게 된다면, 모든 순간을 의식하고 해석하게 된다면...삶의 의지를 다시 찾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다. 정말 일주일을.. 그렇게 갇혀 지냈다.
지금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왕따에 의연해지라고.
다른 의견이나 조언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가는 중. Life So Good.
Post Note
결혼 초 시댁에서 하시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고 나서야, 눈치가 없었음을 모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진 않음을,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너무나 다를 수 있음을 이해했다.
일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아버지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은 당연하지만
저희는 매일은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었다.
회사까지 2번의 버스를 바꿔타며, 편도 1시간 반이상 걸리는 퇴근길 이후 건네신 첫마디가
'밥 먹었니?' 였다.
처음엔 친정엄마가 애기하시는 밥먹었어 인줄 알았다.
바로 내려오느라 못먹었다 대답에 차려줘야겠구나? 라는 답을 듣고서야 친정엄마의 질문 의도와 다를수 있음을 이해했다.
대답은 그 이후로 괜찮습니다.가 되었다.
한번 쓰이기 시작한 눈치와 신경은 금세 가시지 못한다.
친정버젼과 시댁버젼의 필터링이 따로 있음을 이해한 후로, 나는 제대로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게 겪었어도 아직도 아픈게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