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원더풀의 이야기 (1)
2009년 원더걸스는 빌보드 Hot100 차트에 76위로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15년이 훌쩍 흐른 지금에서야 심심치 않게 빌보드 Hot100에 케이팝 스타들이 오르내리곤 하지만, 2009년 당시 Hot100 차트에 국내 가수가 올라갔다는 사실은 생경함 그 자체였다. 그 유명한 싸이의 강남스타일보다도 3년을 앞섰으니, 얼마나 이례적인 일이었는지는 두 말하면 입 아프다. 국내 언론에서는 수십년만에 아시아인이 주류 미국 팝 시장에서 거둔 성과라며 의미를 특별하게 되새기는데 열을 올렸다. 앨범을 싸게 끼워 파는 덤핑 효과를 이용한 꼼수라는 의견들도 뒤따랐다. 명암이 존재하지만, 분명 원더걸스의 도전은 소기의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고국에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먼 타지에 나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원더걸스의 모습은 중학생이던 나의 눈에 너무 멋있게 보였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길을 뚜벅뚜벅 걷는 그들의 여정을 응원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졌다. 나와 원더걸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더걸스의 전성기로 불리는 텔쏘노(Tell me-So hot-Nobody) 시절엔 관심도 없다가 2010년 2DT(2 Different Tears)로 입덕한 팬 그게 바로 나다. 2DT 쇼케이스를 라이브로 시청한 날부터 나는 입덕부정기를 끝내고 원더풀이 되었다. 멤버 변동으로 뒤숭숭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참으로 희안한 입덕 타이밍이었다. 이렇게 되짚다 보니, 아무래도 나는 남다르지 않으면 안되는 병과 꽤 오랜 세월을 함께한 것 같다.
중고생 시절 힘없이 나부꼈던 내 자존감은 원더걸스라는 중력의 힘을 빌어 간신히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원더걸스는 나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나의 전부였다. 매일 초록 창에 원더걸스를 검색하고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새로운 소식이 뜰 때마다 설레임으로 가슴이 마구 뛰었다. ‘원더걸스는 실패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일처럼 속상했다. 열을 내고 절망했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상한 선택과 손가락질, 두려움, 도전과 결실이 한 데 모여 빚어내고 있는 얼룩덜룩한 형상을 원더걸스와 나에게서 분명 보았다. 나는 원더걸스의 도전이 마침내 큰 성공에 도착하기를, 그래서 힘겨웠던 과정들이 보상받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패배감으로 점철된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내가 그 언젠가 웃을 수 있길 스스로 기도하던 마음처럼. 그 언젠가의 미래, 와주었으면 하는 미래를 상상할 땐 언제나 원더걸스와 나의 행복이 있었다.
선예의 결혼 소식이 알려졌을 때 야간자율학습 도중 뛰쳐나가 화장실에서 숨을 골랐다. 미국 정규 1집의 공개를 앞두고, 그룹 활동이 전면 중단된다는 소식은 원더걸스와 나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 영혼의 어느 부분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네가 선예랑 결혼하지 못해서 그러느냐는 웃음섞인 타박들이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뭘 모르는 소리’라며, 마음 속 숭숭난 구멍에 자폐적인 외로움을 덧대올렸다.
원더걸스는 내 안에 지금까지 살아 숨 쉰다. 원더걸스를 사랑했던 시간은 ‘노력한 만큼 성공한다’, ‘진심은 통한다’ 따위의 말들을 내 안에 심었다. 그 말들은 내게 고리타분한 틀을 뿌리내렸고, 나는 쉽게 부러지고 마는 뻣뻣한 인간으로 자라났다. 정의롭고 순진해 빠진 이야기와 그 실패담에 대해 이제야 나는 돌이켜볼 용기를 낸다. 조롱 받는 원더걸스를 향한 나의 덕질은 내가 나에게 보내고픈 지지와 격려였다. 언젠가 이 어둠을 지나 꼭 빛을 내고 웃게 되리라는 믿음이었다. 모두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길에서 끝내 웃어 보이고 싶은 소망이었다.
“그려줘 어리고 순수했던 날, 가끔이라도 좋아, 나를 감싸주던 손으로”
- <그려줘>, 원더걸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