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은 단단함 위에 있는 유연함

진짜 순수함에 대한 정의

by 벨루갓


요즘은 순수하면 바보 취급받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조금만 부드러워도 만만해 보이고,

조금만 솔직해도 가볍게 여겨질까 봐

사람들은 점점 더 계산적이고, 때로는 차갑게 살아간다.


그래서 순수함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현실을 모르는 상태처럼 오해받기도 한다.


근데 내가 말하는 순수함은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읽을 줄 알고,

필요하다면 충분히 날카로워질 수도 있고

차가워질 수도 있는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순수함이다.


순수함은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항상 따뜻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부드러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따뜻하게,

어떤 순간에는 단호하게,

어떤 순간에는 조용히 거리를 둘 줄 아는 것.


그 모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


그게 순수함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이건 오히려

‘유연함’에 더 가깝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중심은 변하지 않는 상태.


겉의 태도는 바뀔 수 있지만

내 안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여기서 더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마음의 의도.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그 안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차갑게 말하더라도

그게 선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상대를 함부로 대하기 위한 것인지.


단호하게 거리를 두더라도

그게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상대를 밀어내기 위한 감정인지.


결국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보다

그 안에 담긴 의도를 더 깊게 느낀다.


그래서 순수함은

항상 따뜻한 표정이나 말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서 드러난다.


나는 차가워질 수도 있지만

해치기 위해 차가워지지는 않고,


나는 날카로워질 수도 있지만

상처 주기 위해 날카로워지지는 않는 것.


그 방향성이 분명할 때,

그게 바로 순수함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순수함은 사람을 무조건 믿는 태도와는 다르다.


사람의 본질이나 특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모든 걸 의심으로 시작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벽을 세우지 않는 것.


때로는 믿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리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


그 선택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


재밌는 건,

사람은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의도를 느낄 때

그에 맞게 행동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거다.


누군가 나를 계산 없이 대할 때,

나를 한 번 더 좋게 봐줄 때,


그 마음을 가볍게 넘기기보다

그 기대에 맞고 싶어지는 마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그 마음을 이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그 의도에 닿아서

자기 안의 더 나은 부분을 꺼내기도 한다.


순수함은 그 가능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필요할 때 열어두는 태도다.


그래서 더 이상

순수함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나는 차가워질 수도 있지만

굳이 항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하는 선택.


나는 날카로워질 수도 있지만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 쓰는 선택.


그 선택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가 있다.


의도.


내가 이 말을 왜 하는지,

이 행동을 왜 선택하는지,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게 흐트러지지 않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느낀다.


겉으로는 부드럽지 않아도,

항상 친절하지 않아도,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구나.’


순수함은

그저 맑은 상태가 아니라,


단단한 중심 위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의도가 흐려지지 않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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