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하는 영역은 따로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이 일을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재능이 없으니 더 이상 늘지 않는 것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다 결국은 맨층까지 뚫고 들어가버릴 정도로 깊어질 때 우울함이 찾아오고 씁쓸함에 고개를 똑바로 쳐들 수가 없다. 누가 뭘 시켜도 시큰둥하고 더 이상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역시 이직해야 할까?' 이직에 대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지만 뭘 해야 할지도 마땅치않을 때. 잘 지내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가끔씩 찾아오는 순간들.
어느 날 매니저와 점심 식사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매니저는 30대 후반의 남성인데, 겨울이면 매주 주말을 스키장에서 지낼 정도로 스노보드에 빠져 사는 분이다. 거의 10년 이상을 스노보드를 타왔다고 하는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이 정도로 스노보드에 열정을 가지고 오래 타왔는데 아무리 해도 대회의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년도 아니고 무려 10년 이상, 겨울이면 매주 주말을 스키장에서의 시간에 바쳐 왔는데 대회만 나가면 입상을 하지 못하니 이 정도면 재능에도, 실력에도 한계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러다 2024년 들어 우연하게 그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늘 나갔던 종목이 아닌 다른 종목으로 대회에 출전했던 것. 결과는? 입상도 아니라 무려 1등을 했다고 한다. 몇 년 간 순위권에 들지도 못했는데 종목을 바꾸는 것만으로 1등을 차지한 것. 그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라 그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물었다.
바꾼 종목이 결국은 제가 잘하는 영역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오랫동안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죠.
어딘가 일에 대한 얘기와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탓한다. 재능이 없다고.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그런데 만약 그게 재능 문제가 아닌, 방법의 문제였다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는 거라면?
매니저는 '스노보드'라는 영역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냈고, 훌륭한 성과를 이뤄냈다. 오랜 기간 스노보드를 타왔던 실력은 고스란히 쌓여 그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 또한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축적되고 있다. 내가 만약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잘할 수 있는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일을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지금 당장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끼더라도 나는 지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게 아니라 저금통에 차근차근 동전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동전은 언젠가 딱 맞는 영역을 만났을 때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거라는 것. 그렇다면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 여유롭게 가도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커리어는 각기 다른 형태로 쌓여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