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찾아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그 오묘함이라니
1월, 한 달 내내 기분이 참 좋았다. 우연히 받은 소개팅에서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참 담백한 사람이었다.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툭툭 나오는 세심한 매너들이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그런 사람. 의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그저 편안했다.
그와는 딱 세 번 만나 밥을 먹었다. 대화 또한 순조로웠다. 어떤 일을 하는지, 퇴근 후나 주말에는 뭘 하는지와 같은 소개팅에서 통상 오갈 법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런 소소한 대화들이 인생의 목표나 어떤 가정을 만들고 싶은지와 같은 깊은 주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색한 사이에서 뭘 얘기할지 몰라 쭈뼛쭈뼛하다 멋쩍어지는 보통의 소개팅과 달리 편안한 시간이었다. 덜한 것도 더할 것도 없어 그저 만족스러웠다. 그가 갑작스레 연락을 그만 하자고 말하기 전까지는.
네 번째 만남을 앞둔 이틀 전. 전날 밤까지 그와 대화를 나눴다. 등산을 좋아하는 내가 한라산을 다녀온 후 루틴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피부에 관심이 많은 그가 피부과 결제를 마쳤다는 이야기.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제로 만나면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눌 수 있을까? 새삼 네 번째 만남이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출근 후 아침, 갑작스레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너무 잘 알겠는데 더 이상 감정이 깊어질 것 같지 않으니 여기까지 연락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기대했던 네 번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그렇게 썸이 깨졌다.
안 좋은 버릇일지도 모르지만 오만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내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연락을 하다 중간에 질렸던 걸까?' 내가 그에게 했던 말, 행동, 태도까지 모든 것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럴 듯한 이유가 적어도 20개는 족히 떠올랐다.
내가 그의 타입이 아니어서. 내가 너무 크게 웃어서. 내가 밥을 더 잘 먹지 못해서. 내가 일 외에도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취미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옷을 깔끔하게 입지 못해서. 내가 선톡을 많이 하지 않아서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허점이 많은 듯해 초라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 속에 답은 있을까? 아니, 애초에 답이라는 게 존재는 할까? '그만 연락하자'는 그의 말에 나는 선뜻 '말해줘서 고맙다'며 '좋은 사람 만나라'고 쿨하게 답장했다. 쿨한 척 하지 말 걸 그랬다. 이유를 물어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명확한 답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혼자서 땅굴 파지 않았을텐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때의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애초에 명확한 문제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녀관계의 오묘한 감정 흐름을 어떻게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물론 그에게는 나를 거절할 명분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뭐였든 결론은 똑같았던 거다. 우리는 서로의 인연이 아니었다는 결론.
<나는 솔로>와 같은 연애 프로를 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공부도, 일도, 취미도 훌륭하게 잘해내는 사람들이 이성관계에서는 한없이 서툴러지는 모순. 그런 걸 보면 연애는 생각하고 배워서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좋은 타이밍에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서로 감정이 비슷한 수준에 다다를 때 시작할 수 있는, 그러나 지속까지는 담보할 수 없는 그 오묘한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닐까? 깨진 썸을 통해 연애의 원리를 깨닫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명확하지 않고 오묘한 것이기에 더이상 생각을 곱씹는 것은 그만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