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진짜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경험

by 단미

도쿄에서 2주 동안 머물며 돈을 썼다. 빈티지 명품백도 사고, 전시회도 보고, 감도 높은 취미 활동도 즐겼다. 그 과정에서 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쓰지 않고도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고민의 뿌리에는 AI 시대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모든 정보를 나보다 더 빨리 수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AI가 있는데, 나는 어떻게 나만의 능력을 쌓아나갈 수 있을까? 애초에 AI를 이기는 게 가능한 일인가?


결국은 진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AI와 나를 구별해주는 것은 나의 고유함이 될 것인데, 그 고유함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에서 온다. AI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을 살면 절대 그걸 따라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삶은 무엇일까?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힘껏 느끼고, 그것을 회고하고 내 언어로 정의내리는 것. 그건 절대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진짜 삶을 살기 위한 욕구는 자연스레 봉사활동 검색으로 이어졌다. ChatGPT가 친절하게 1365 자원봉사 포털을 알려주었고, 거기서 발견한 것이 바로 무연고 사망자 공영 장례식 자원봉사였다.


봉사활동 전날,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토요일 봉사를 신청하고, 네 분의 장례식이 있을 거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오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한 장례식을 하루에 네 번이나 치뤄야 한다는 부담감이 반, 이름 모를 분들을 내가 진심으로 애도하고 잘 보내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1시간 정도 잠깐 눈을 붙이고, 날이 밝자 고양으로 향했다.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그리다' 빈소가 있었다. 무연고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공영장례 전용 공간이다. 2024년 서울에서만 무연고 사망자 수가 1,4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023년 1,218명에 비교하면 15% 이상 증가한 셈이다.


더 충격적인 건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무연고 장례식을 치르게 된 이유가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2023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중 72.5%는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영리 단체 직원분은 제일 큰 원인이 돈이라고 강조했다. 혼자 살다 돌아가시는 분은 우선 병원에 안치되는데, 친족을 찾아 시신 인수 의사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려 안치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장례 자체도 저렴하지 않아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돈 때문에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니. 어쩐지 그건 너무나 쓸쓸하고 야속한 일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상주 역할을 맡아 고인을 위한 추도문을 낭독하고 술을 올렸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살아 생전 한 번 뵌 적도 없는 분들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상주로서 그들을 애도한다는 감각.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한 사후의 공간이라니. 비영리 단체의 직원분이 그들의 최후 모습이 어땠는지를 담담히 얘기해주셨다. 홀로 고시원에서, 쪽방촌에서 조용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왜 그렇게 눈물이 차올랐는지. 얄팍한 동정의 감정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그 말년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팠을까 체감한 탓이다.


장례식이 끝난 후 시신을 화장장으로 옮기고, 화장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그 후 화장장에서 유골을 확인하고, 분쇄 후 가루가 된 유골을 유골함에 넣어 유택동산에 직접 산골하는 과정을 도와드렸다. 얼마 전까지는 세상에 살아 있었을 인간이 손으로 주워담을 수 있을 정도로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간은 이렇게 소멸하는 거구나.
죽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내가 죽고 난 이후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본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친지분들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도 슬프기만 했지 그 '죽음'이란 것을 내 것으로 여기고 감정이입해보지 않았던 거다.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결국 끝은 '소멸'이라고 한다. 돈이 많든 적든, 가족이 있든 없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소멸되는 존재다. 그렇다면 내가 소멸하고 난 이후에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건 어떻게 남을까? 기억.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되고, 소환되면서 그렇게 생존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가 결국은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고, 그걸로 인해 죽고 난 이후의 풍경이 바뀌는 것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썸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