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깨달은 것

by 단미

오후 장례를 준비하며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두 분의 장례식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한 분은 열댓 명의 분들이 영정 사진을 직접 들고 조문을 왔고, 한 분은 사진도, 조문객도 없이 쓸쓸했다. 두 분 다 쪽방촌, 고시촌에서 혼자 어렵게 생활하시다 돌아가신 건 같은데, 왜 마지막의 모습은 이렇게 달랐던 걸까?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서 절을 하다 눈물을 훔치는 조문객들 사이에 본인을 사회복지사라 소개하는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이 고인에 대해 얘기를 해주셨는데, 병으로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도 노숙인 지원 단체의 활동이나 주변 커뮤니티에 자주 참여하시며 정보를 모으고,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셨던 듯했다. 조문을 오신 분들 중에도 그 활동을 함께 했던 노숙인들이 몇몇 계셨다. 반면에 쓸쓸한 장례식을 맞이한 또 한 분은 말년에 아무와도 왕래가 없으셨던 것 같다고, 장례를 맡으시는 비영리 단체 직원분이 말씀해주셨다.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는 기억되는 삶을, 후자는 기억되지 않는 삶을 산 셈이다. 기억이 되냐 되지 않냐는 결국 그 행위의 주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사람이 사람을 찾고, 어울리고자 하는 것은 죽음의 관점에서도 명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명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될 것이기에.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고 사람과 나누고 사람과 웃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삶의 끝이 결국은 소멸이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지면서도 허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부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소멸의 순간을 인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감사한 것은, 쓸쓸한 장례식이었어도 장례식을 지원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생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분들이지만, 나라도 이 분들의 마지막을 꼭 기억하자고, 유회를 살짝 손으로 떠올려 유택동산에 산골해드리며 다짐했다. 쓸쓸한 죽음이 비통하여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그 분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기억해드리고 싶었다. AI 시대에 진짜 삶을 살고 싶어서 시작한 봉사활동이었는데, 정작 배운 건 삶보다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진짜'일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한 날.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다짐한 날. 어쩐지 삶에 대한 의지를 더 다질 수 있었던, 눈이 시리게 감사한 시간이었다. 돈을 쓰지 않고도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귀중했다.

작가의 이전글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자원봉사를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