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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Brand Oct 04. 2018

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 그리고 브랜드

복잡계와 프랙탈 이론


연암 박지원의 길(道)


자네, 길을 아는가?
이 강은 바로 저 들과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인간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이란 물가 언덕과 같은 법.
그러므로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네.

-열하일기, 도강록 6월24일 중에서


 박지원의 여행법은 경계를 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경계에 꽃 피고 있는 '사이'라는 공간에 서 있고자 한다. 열하일기, 도강록 중 "자네, 길을 아는가?"라는 문장에서 그는 '길'은 강과 언덕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이'의 의미는 매우 철학적이다. 진정한 길(道)이란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지극한 깨달음, 도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로도 쓰인다. 경계와 경계 '사이'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이쪽의 법칙에 몸과 마음을 바꾸고,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저쪽의 법칙에 몸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생각의 유연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때로는 이쪽과 저쪽,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움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 박선주, 봉선 지혜의 숲 원장


  

  조선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은 강이라는 질서(법칙)와 언덕이라는 질서 사이의 꼬불꼬불한 사잇길에 있다고 말합니다. 강의 질서와 언덕의 질서 사이 불규칙해 보이는 ‘사이 공간’에 어느 쪽 질서에도 속하지 않는 무질서가 존재하고 그 무질서 속에 새로운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요.


  박지원은 당시 조선의 주류파가 중화주의 사상()에 빠져 오랑캐인 청나라를 배척하는 것은 조선에 도움이 안되니, 우선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 그 끝에는 명도 청도 아닌, 조선만의 새로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새로운 질서)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농경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주장했습니다. 



질서와 무질서


   근현대 사회에 들어와 우리는 또다른 사상을 강요받았고 익숙해져 왔습니다. 

이 사상은 '서구식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전세계를 지배하는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과학적 패러다임은 분석적, 인위적, 독립적, 기계적 접근 방식으로 복잡함, 무질서함을 배제하고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서양의 오랜 철학적 사고의 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17세기 뉴턴과 데카르트, 그리고 20세기 테일러에 이르기까지 과학이나 철학 등 모든 순수 학문과 경제학 및 경영학 등의 실용학문에 지배적인 세계관입니다. 즉, 선형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지요.


★ 국어사전에서도 나오지 않는 '선형적이다'의 의미는 ?

선형적(linear)이라는 말은 '직선 모양인'을 뜻합니다. 주로 수학, 물리학에서 이용하는 용어로, 직선이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듯 일방향성을 갖고 입력(원인)과 출력(결과)이 비례함을 뜻합니다. 그 반대의 의미를 갖는 말은 '비선형적(nonlinear)'으로, 입력과 출력의 관계가 비례하지 않음을 뜻하겠죠. 출력값이 입력에 비례한다(선형적)는 말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쉽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비선형적은 결과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즉, 본문에서 선형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예측이 쉬운 세상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세상이 변했고 또 변해가고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무선 이동통신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달은 '정보 혁명'이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단순했던 일상 생활은 복잡해졌습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 통제도 예측도 불가능한 소통의 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열린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전의 닫힌 세상에서는 서구의 과학적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패러다임이 열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닫힌 세상에서는, 실험실의 선형적 모형에서 얻어진 결과값이 현실에서도 적용 가능했지만, 열린 세상에서는 에너지의 들고남(입,출력)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더욱 많아진 구성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매우 복잡하고 무질서해졌으므로, 기존의 과학적 패러다임 논리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눈에 보이는 물체의 운동은 뉴턴 역학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만 양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양자 역학이 아니면 운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기존의 접근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오인하는 이유는, 열린 세상에서의 복잡하고 무질서한 현상이 (강제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선형적 질서에 바탕을 둔다고 전제하여 단순화된 틀에 맞추어 분석하고 '나름대로 명쾌하게' 설득하는 '솜씨 좋은'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 스스로 이전 논리의 익숙함에서 쉽게 벗어나기 싫어하는 관성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무질서하고 복잡한 현상을 이전처럼 그 의미를 축소하여, 단순화하여 배제하거나 왜곡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선형적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대두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바로 '복잡계 과학'입니다.



    '복잡계',  말 그대로 ‘복잡한 시스템(complex system)’입니다. 

 우리말에서 복잡하다고 하면 흔히 뒤죽박죽이 된 상태를 일컫기 쉽습니다. 이것은 영어로 ‘complicated’에 해당하는 의미입니다. 그에 반해, ‘복잡한’이란 의미의 영어는 ‘complex’입니다. 그 어원은 ‘엮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pleko’와 ‘함께’의 뜻을 가진 접두어 ‘com-‘이 붙어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즉, 함께 엮임으로써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는 상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계’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일정한 구조(패턴)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계(시스템)’를 지칭합니다.


   21세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복잡계 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이유는 '프랙탈(fractal)'이론이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랙탈의 개념은 ‘프랙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B. Mandelbrot)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프랙탈 이론은 '자기유사성'과 '자기반복성'으로 요약되며, 부분이 전체를 대변하고 전체는 부분의 또 다른 일부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열린 세상으로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 복잡계 과학은 비선형성, 복잡성, 창발성, 그리고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질서의 탄생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패러다임이며, 불규칙하고 무질서한 현상을 왜곡하지 않고 자기유사성과 자기반복성으로 '무질서속에 숨겨진 질서'를 밝힐 수 있는 방법론이 바로 프랙탈 이론입니다.

 

'정보 혁명'으로 촉발된 무질서하고 비선형적인 현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으로 인해, 2000년 이상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유지되어오던 선형적, 기계론적 패러다임이 '진리에 가깝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무질서 속의 질서
부분이 전체륻 대변하고, 전체는 부분의 또 다른 일부분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 그리고 브랜드


 변화된 소비자들은 통제할 수 있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장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선형적이지 않은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비선형적인 현상은 우발성, 이질성, 창발성 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불규칙하고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보일수밖에 없지요. 기존의 브랜드 전략은 질서를 전제로한 선형적인 전략 모델을 활용하기 때문에 변화된 소비자와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린 세상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비자 변화'입니다. 이전의 닫힌 세상에서 '미미한 다수(trivial many)'였던 대다수 소비자들은 과거의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던 고립된 개인에서 이제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하는 '의미있는 다수(significant many)'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열린 세상에서의 소비자들은 휴대폰과 소셜 미디어라는 무기를 활용하여 '정보의 생산, 공유 그리고 확산'으로 무장한 채 시장을 주도하고 움직이는 핵심적인 집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브랜드 전략은 미시적으로는 소비자들의 비선형적 상호작용과 거시적으로는 무질서한 현상을 명확히 분석하여 무질서속의 질서를 밝히는 브랜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떠오른 ‘디지털 마케팅’은 디지털 기반의 다양한 미디어들을 단지 광고, 홍보,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여겨 소비자들에게 피로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열린 세상으로의 변화와 소비자의 변화를 소비자 접점에서 디지털 매체의 확대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요.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것이 '브랜드전략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복잡계 패러다임과 프랙탈 방법론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의 본질을 찾아 무질서속의 질서를 밝히는 브랜드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길(道)은 꼬불꼬불한 사잇길, 즉 강과 언덕 경계 사이의 무질서에 있지요. 그리고 무질서속에는 숨겨진 질서가 있습니다. 무질서속의 질서를 밝히는 브랜드 전략이 있을까요?



매거진 <브랜드 파이(π)>의 두번째 글 '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 그리고 브랜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찬정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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