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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Feb 26. 2024

말하는 사람은 둘, 듣는 사람은 하나

나는 말이 별로 없다. 과묵한 아빠 성격을 쏙 빼닮았다. 엄마는 아빠가 너무 과묵해서 사는동안 재미없고 답답했다고 하시는데 엄마.. 그건 모르는 소리야.. 우리같은 과묵한 사람들은 말이 많은 사람을 보면 힘들다구.. 아빠도 엄마 말 많이 해서 힘드셨을걸?




선천적으로 성대가 약한건지 나는 말을 조금만 많이 하면 목이 아파온다. 평생 선생님이나 강사같은건 시켜줘도 못하겠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이런 선천적인 신체적 성향이 영향을 끼친건지 입은 작고 귀가 큰 나는 말하는거보다 남의 말을 듣는것을 훨씬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말이라는것도 나와 결이 맞아야 한다.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얘기, 전혀 내 관심사밖에 있는 얘기(정치얘기 같은), 각종 부정적인 말들, 논리나 주제가 없는 말들은 1분도 듣기 싫다. 아니 사실 나는 그냥 내가 재밌어하는 얘기만 좋아한다.


TV소리도 싫어하고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큰 복병이 두 명 있었으니 바로 엄마와 아이다. 엄마도 나와 비슷하게 성대가 약한데 엄마는 말하는걸 엄청 좋아하신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또 나이를 먹다보니 그냥 혼자 있어도 혼잣말을 하게 됐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신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예전에는 자기전에 누워서 한참을 재잘재잘 얘기하고 나면 아빠가 한 마디 하셨다고 한다. "이제 자도 되나?"

남동생도 지금은 과묵하지만 아기때는 당연히 말이 많았나보다. 한창 말을 배우는 시기에 하루에 엄마를 수십번씩 불러대니 아빠가 또 한 마디 하셨단다. "00이 말많아서 당신 소원 성취했네. 말 많은 남자랑 살고 싶다더니"

하지만 엄마는 본인이 말하는걸 좋아하시는 것이지 자녀들의 반복된 말을 듣고 싶어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아이들 셋이 하루종일 엄마 엄마 수백번씩 부르는 소리에 그만 "엄마 좀 그만 불러!"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 얘기 역시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가 해주셨다.

하여간 이 말을 듣고 그래도 그만부르라니.. 너무해 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지금은 너무나도 간절하게 말하고 싶다.

"엄마 좀 그만 불러~~~"




이른둥이로 태어난 내 아이는 모든 발달에서 전체적으로 느렸는데 말도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말하는 시기도 빨라서 두돌쯤에 유의미한 단어를 많이 말하지 못하면 걱정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한다. 내 아이는 3돌이 가까워질때까지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엄마, 무(물) 정도 밖에 없었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태어났을때부터 느리다는 말은 이골이 나도록 들어왔지만 결국 다 따라가는 아이를 보며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냐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주기로 굳게 다짐했기 때문이 첫번째 이유이고, 발화가 되지않을 뿐 인지는 정확히 되고 있었기 때문이 두 번째 이유이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괜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가끔 동네에서 할머니들을 만나면 "우리 애는 5살때까지도 말 못했어~ 할 때 되면 다 해~" 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주신것도 이유일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3살때까지는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 이후로는 평생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을 가르친다.


이 멋진 말을 누가 했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말은 한 번 본 후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어차피 평생 입을 다무는 법을 가르칠거라면 빨리 말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나중에는 귀가 얼얼할 정도로 엄마를 찾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말하지 않는게 조금도 조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순간이 나중에 그리워질거라며 즐겼다.


아이는 35개월쯤 폭풍적으로 발화가 늘기 시작했다. 그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잔뜩 신이나서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너무 귀여워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더니, 처음 말을 시작하고부터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말하지 않을 때는 인형같더니 말을 하니 말하는 인형같아서 더 귀엽다. 이 즐거움은 6개월도 채 가지 않았다.




"엄마~ 엄마~ 엄마~"

이미 오늘만 수백번 나를 불렀지만 앞으로 수백번은 더 불러야 잠자리에 들 모양이다.

또, 집에서 (우리)엄마의 수다 상대는 보통 내가 된다.

"엄마~ 엄마~ 이게 뭐냐면 어쩌구저쩌구~"

"오늘 내가 마트에 가서 이걸 샀는데 어쩌구저쩌구"


혼란하다. 혼돈의 카오스다.


"엄마~엄마~~ 응?? 이거 보세요"

"그래서 맛이 어떤데?"

영혼나간 표정의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종용하는 두 사람.

"응?"

"응?"




"으악! 제발 한 명씩 얘기해"

귀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다. 도무지 서로의 말은 듣지 않고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기 바쁘다. 나는 한 명인데, 심지어 멀티태스킹도 전혀 못하는 나에게 동시에 대답을 요구하다니 정말 힘들다. 둘이서 서로 얘기하면 바랄 게 없으련만, 애석하게도 들을 줄 모르는 그들은 나에게만 대답을 요구한다. 정말 괴롭지만 나의 괴로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해맑게 말하고 있는 두 명을 보면 꿀렁꿀렁 웃음이 올라온다. 나는 나와 같이 과묵하고 말이 없는 사람과 살고 싶지만 그러면 또 집이 너무 썰렁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나의 청각을 포기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니 기꺼이 희생해드려야지. 하여간 지치지 않는 스피커 두 명은 오늘도 우리집에서 열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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