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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May 01. 2024

살쪘다

이혼 그 후




나는 평생 크게 몸무게의 변화 없이 살아왔다. 

165cm, 50kg 전후.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키가 컸더라. 166.4cm였나?

한번 잴 때는 원래 기계마다 다르니까~ 두 번째 쟀을 때는 흠..? 세 번 연달아 166 이상이 나오자 키가 컸음을 인정해야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자세는 여전히 나쁜데. 

아무튼, 인생 최고의 몸무게는 임신했을 때 찍었던 56kg다.(여담이지만 태아는 1kg도 안 되는 몸무게로 세상에 나왔고 나도 살이 찐 건 아니었는데 임신하면 확실히 몸무게가 늘기는 하나보다.)

12시간을 잤더니, 쾌변을 했더니, 한 끼를 굶었더니 1~2kg가 왔다 갔다 한다는 친구들의 말. 매번 속옷부터 옷까지 새로 사는 걸 보며 늘 신기했다. 사실 나는 평소에 몸무게를 잘 재지 않는다. 10년간 10번 정도 쟀을까. 직장인 건강검진이 전부인 정도. 도대체 몸무게가 뭐가 중요한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것도 아닌데 숫자에 일희일비하고 싶지는 않다. 




스트레스받을 때는 입맛이 없고 행복할 때는 기분이 좋아서 안 먹어도 배부른 덕에 살면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은 없다. 식욕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먹는단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먹는 것에 비해 별로 찌지 않는 체질이다.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근육 하나도 없는 100% 지방이다.







별거 후 만난 나의 베스트프렌드 두 명에게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을 들었다. (각각 나를 18년, 24년간 봐온 친구들이다.)

"너 살 좀 쪘네?! 보기 좋다" 

기분이 좋았다. 동생에게 자랑했다. 

"야 나 애들이 살쪄서 보기 좋대"

(남) 동생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그냥 민들레홀씨 같은데?" 






하지만 친구들의 말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오랜만에 집에서 체중을 재보니 두둥! 53kg!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51kg 정도였는데 무려 빼도 박도 못하게 2kg나 쪄버린 것이다. 두 번째 확인사살은 옷을 입을 때였다. 결혼식에 가기 위해 내 결혼즈음 샀던 원피스를 입어봤는데 맙소사.. 이 접히는 뱃살은 과연 뭔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옷을 새로 사야 했다. 그 옷은 내가 출산 후에 입었을 때도 넉넉하게 맞았던 옷인데 살면서 처음으로 옷이 작아서 못 입는 사태를 마주하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라고...?



그 원피스를 입지 못하게 된 일만 빼면 살이 쪘다는 사실이 오히려 반갑다. 사실 부러웠다. 결혼하고 나서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친구들이. 남편과 아내 모두 살이 찌는 부부를 보면 그들이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다는 반증 같았다.  말라죽은 나뭇가지 같이 점점 살이 빠지던 (과거) 우리 부부는 불행하다는 티를 온몸으로 내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 친구들의 말이 내 귀에 '너 요즘 좋아 보인다'라는 말로 들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다. 

나 행복한가 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로운가 보다. 마음의 소리에는 늘 귀를 잘 기울이지 못하는 내가 몸의 변화로 마음의 변화를 알아채고 있다. (엄마 밥상을 매일 먹을 수 있는 현실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딱 붙거나 짧은 옷을 입을 것도 아닌데 살 좀 찌면 어때'라고 합리화하며 3n 년 만에 찾아온 식욕과 나는 점점 한 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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