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녀를 물리치는 방법은 결국 나도 미치는 것뿐인가
나는 외국인이 많은 시골동네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을 감싸고 인도 정도의 폭으로 흙길이 노출돼 있는데, 문제는 이 흙길에서 시작된다.
외국인들이 개산책을 하며 우리 집 앞을 개화장실로 쓰기 때문이다.
Please로 시작하는 공손한 문구를 한쪽 벽에 붙여놓은 지 오래지만, 그 '또옹'들은 매일 새로 생겨났다.
굵은 또옹, 가는 또옹, 염소 또옹이 뭉친 것 같은 또옹.
결국 그것들을 관찰해서 추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굵기로는 개의 크기를, 형태와 이물질로는 사료를 먹었는지 볏짚 붙은 무언가를 먹었는지까지.
가정견으로 분석되면 부아가 치밀었다.
어느 오후, 우리 담벼락 앞에서 힘주는 자세로 앉아있는 개와 외국인 견주를 보게 됐다. 이성의 끈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 : 여기 있지 마.
개똥녀 : 이게 네 땅임?
나 : 내 집 앞이지. 여기 개 화장실 아니거든. 문 앞이 온통 개똥밭이야.
개똥녀 : 난 친구 기다리는 거고, 여기 있을 권리가 있어. 너는 똥 안 싸냐?
나 : (응?) 나 똥 싸는데 그게 뭔 상관? 내가 말하는 건 단 하나야. 네 개가 여기다 똥 싸면 치우기만 해.
개똥녀 : 네 태도 사과해. 여기 서 있는 건 내 권리라고!
나 : 꺼져! 내가 여기 똥들 다 주워서 너네 집 문 앞에 뿌려놓을 거야!!
이런 유치한 대화가 오가는 중 평소 알고 지내던 들개 무리가 나타났다.
개똥녀의 불쌍한 그 개는 자기 주인과 어떤 인간의 격양된 분위기에 이미 겁에 질려있었는데, 들개들의 등장에 땅과 하나 되듯 쪼그라졌다. 개똥녀는 결국 자리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져라 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남편이 찾아왔고 우리도 합세하여 파출소까지 가게 됐다.
결국 사과를 받았고 담벼락 주위 똥까지 그들이 치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파출소에서 겁먹은 눈으로 앉아있는 개똥녀를 보니 그 똥들이 다 그네들 것이 아님을 모르척 했던데서 오는 약간의 동정심이 들었지만, 그녀의 무례한 언행이 떠오르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개똥 열사가 됐다.
내가 오히려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 된 듯한 찝찝한 평화로움도 한동안 계속됐다.
같은 골목에 새하얀 개 두 마리를 키우는 외국인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번 개똥녀는 고수였다. 대문을 열어 개들만 풀어놨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휘파람으로 개들을 불러들였다.
사실 이사 온 지도 몰라서 전혀 실마리를 못 잡고 있었다.
다만 탐정으로 빙의해 비위 좋게 똥을 살폈을 때, 희고 긴 털 뭉치가 섞여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때마침 우리 집 앞에서 셀프 산책 중인 긴 털의 흰 개를 보았고, 그렇게 퍼즐이 완성되었다.
집에 앉아있다가도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말벌아저씨처럼 튀어나갔다. 흰 개가 우리 집 앞을 어슬렁 대면 입으로 마찰음을 내며 쫓아냈다. 개똥녀가 쳐다보면 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흰 개와 함께 있는 개똥녀의 남편을 목격했다. 일부러 보란 듯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노는 개똥남.
때마침 친하게 지내던 들개가 보여 과장 섞어 환영하고 집 앞에 앉혔다. 둘이 영역싸움을 하길 바라는 사악한 마음이었다. - 더 거창한 계획도 있었다. 매일 집 근처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까마귀를 잘 꼬드겨서 우리 담벼락에 얼쩡거리는 개와 주인을 쪼아버리는 훈련을 시켜볼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둘은 전혀 싸울 기색이 없었다.
밥을 몇 번 챙겨주던 녀석이었다.
넌 밥값도 못하는구나, 수만 빤히 읽히는 나의 실책이었다.
집으로 들어갔던 개똥커플이 키를 훌쩍 넘기는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나는 우리 집 방향으로 앞서오는 흰 개를 쫓아냈고, 개똥남은 그런 나를 향해 다가오며 따졌다.
개똥남 : 내 개한테 왜 그래?
나 : 네 개가 내 집 앞에 매번 똥 쌌어.
개똥남 : 아닌데. 내 개는 아닌데.
나 : 개 저렇게 풀어놓지 마라.
하고는 외국인 특유의 '경멸의 표정으로 절레절레'로 배웅했다. 저희 개는 아니라는 발뺌에 유 네버 와칫! 대꾸 못한 게 너무 분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떠났다.
이제 동네에서 나를 모르는 외국인은 없다. 한동안은 또 찝찝한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둥근 성격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예민하고 원칙주의자인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스트레스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들 나라에선 벌금 때문이 건 뭐건 뒤처리를 했을 텐데 여기선 개념 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짚 앞이 더러워져서 화가 나는 것인가.
내 경고문을, 아니 나를 무시하는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인가.
그러다 이내 철학적인 자아성찰은 안 하기로 마음먹는다.
예의가 없는 인간들에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꼭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 되어야만 예의를 갖춘다면, 나는 기꺼이 똥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요즘 나는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남들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배운다는 영어를, 나는 싸우기 위해 배운다.
내가 미쳐야만 한다면, 그래. 확실히 미쳐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