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시간

공간에서 시간으로

by 루이아빠

부자의 조건과 방법에 대해 논하며 일상을 관찰하고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풀어나가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종착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부자는 원래 부자였고, 부잣집 아이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쉽게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부자로 살아온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그 이면의 메커니즘을 명확히 들여다보는 이는 드물다.


그 메커니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바로 공간이다. 부동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비이성적인 우상향을 지속하는 현상을 두고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살펴봐야 할 이슈는 가격이라는 숫자 너머에 있다.


공간은 시간을 지배한다. 이 말은 언뜻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공간은 사실 개인이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한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고 그 시간의 흐름이 어떠했는지는 그가 거주하는 공간을 통해 증명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웃들은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를지라도, 현재 비슷한 공간에 머물고 있다. 그것이 개인의 운이든 혹은 수세대에 걸쳐 축적된 부의 결과이든, 우리는 공간이 곧 응축된 시간의 산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공간을 물려주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이 있다. 정부가 주택 보유세를 높여 압박해도 기성세대들이 매도 대신 증여나 상속을 택하는 현상은, 그들이 점유한 공간을 단순한 부동산이 아닌 '가문의 시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은 인간의 수많은 욕구 중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지표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엄중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매일 무심히 보낸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어느덧 '공간'이라는 단단한 실체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이때의 시간은 단지 나의 생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 이전부터 흘러온 아주 오래된 시간을 포함한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격언은 시기 어린 질투를 유발하지만, 자본의 역사 속에서는 엄연한 사실에 가깝다.


시간의 힘이 공간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이해해 보자. 우리는 부모나 조부모의 덕으로 강남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젊은 세대를 냉소하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본능 속에서, 그 젊은이가 누리는 공간에 상응하는 '시간의 밀도'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시샘과 비교 문화는 글로벌 탑티어 수준이기에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물 뒤에 숨겨진 '이전 세대의 오랜 시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려받은 이의 현재에는 밀도가 없을지언정, 그 자산을 일궈 물려준 이들의 시간은 충분한 고뇌와 밀도로 채워졌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시간의 밀도를 쌓는 구간이 부모 세대에서 단절된 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수세대를 거쳐 그 밀도가 이어져 온 이도 있다. 세상은 이 불평등을 증여세나 상속세라는 이름으로 조정하려 하며,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수준으로 그 세금을 징수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자산가들이 해외로 거처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고소함이 아니라 그 징벌적 세금이 상징하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어야 한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공간은 내가 보낸 시간의 밀도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밀도 있는 시간이 자손에게 이어질 수 있는 자산으로 치환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칭찬받 마땅한 일이다.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점유한 이들을 증오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서는 결코 자신의 시간을 밀도 있게 채울 수 없다. 세상의 이치를 부정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부자의 시간'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공간이라는 결과물을 넘어 그 원형인 '시간'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부자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