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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학원 강사가 회화학원 가지말라고 하는 이유

영어 회화 수업은 회화 실력을 높여주지 않는다


"가지 마세요."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주변에서 영어 공부 하기 위해서 회화학원 다니고 싶다면서 나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시간을 내서 영어로 말하는 시간을 한 두 시간쯤 지속적으로 가지면 영어 실력이 늘어나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가지 말라고 한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상황 가운데로 자신을 밀어 넣으면 분명 평소와는 다르다. 어떻게든 영어로 말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짜내고 집중하게된다.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영어에 몰입하고 난 뒤에 교실 문을 나서면 정말 기분이 좋다. "도전적이었지만 보람찬 시간이었어!"


도전적인 것은 맞지만, 보람찬 시간인지는 모르겠다. 보람찬 기분을 느낀 것은 아닐까? 기본적인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토킹을 하는 것은 사실 기분내기에 불과하다. 실력이 아예 안느냐고? 그건 아니다. 실력이 늘긴 는다. 그런데 투자하는 시간과 돈에 비해서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서울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가는데 전용기를 빌려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


왜 그런지 세 가지로 설명해보겠다.


1.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은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쏟아내는 시간이다.


수영장에서는 딱 수영장 크기 안에서만 수영을 할 수 있다. 토킹 시간에 당신이 하는 영어는 딱 당신이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게 된다. 당신의 수준이 영어 관련 지식은 굉장히 많고 정확하지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면 회화 수업을 듣는 것이 좋다. 그러나 영어 공부를 하려는 사람 중 열의 여덟 아홉은 그렇지 않다. 아직 토킹 수업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한 사람이 많다.


아직 당신의 '영어 수영장'은 동네 꼬마들이 뛰어노는 수심 50cm짜리 공공 수영장의 크기도 안된다. 그 상황에서 "나는 실전으로 배우는 타입이야"하면서 물에 일단 뛰어 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당신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 당신의 끈기가 얼마나 단단한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일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먼저 수영장의 넓이를 늘리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 땅을 파고 벽을 허물어서 더 큰 수영장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당신이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놔야지 수영 연습을 할 것 아닌가?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토킹을 시도하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이다.



2. 회화 수업에서 당신이 실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이 안된다.


회화 학원에서 1:1로 수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60분 짜리 수업을 세명이 들으면 한 사람당 20분씩, 네 명이 들으면 15분씩, 여섯 명이 들으면 10분씩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 내가 망설이는 시간을 합치면 그 시간보다 훨씬 적다. 그리고 회화학원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수업에는 꼭 '주인공'이 되는 수강생들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고 앉아서 선생님과의 대화 지분을 크게 차지한다. 수업 시간의 대주주. 처음 회화 수업에 들어간 학생 입장에서는 "와, 나도 저렇게 유창하게 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이 점점 미워질 수 있다. 내 돈과 시간까지 잡아먹으니까. 차라리 15분짜리 전화영어를 하는 것이 낫다. 온전히 당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코치가 낫다.


3. 원어민은 당신이 왜 영어를 어려워하는지 알지 못한다.


영어와 한국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들이 있다. 이 차이점들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빠르게 높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 모두 조금씩 답답함을 안고 있다. 한국인 선생님들도 이 차이점에 대해서 인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힘들다.


당신의 발음을 고쳐줄 수 있고, 당신의 문장 표현을 더 낫게 바꿔줄 수 있고, 틀린 문법들을 수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순간적인 교정일 뿐이다. 척추가 휜 사람에게 자꾸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이야기 해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척추 자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원어민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원어민들이 모자라다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영어를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사람들과,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웠으나 영어라는 제2의 언어를 배운 사람들은 당연히 두 언어 간의 차이에 대해 인지하는 능력이 다를 것이다. 내가 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님 보다는 한국인 선생님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보기에는 좋으나 실속이 떨어진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영어 학습자들에게 외국인과의 대화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들은 당신에게서 한 가지 조건만 바뀌면 다 사라지게 된다.

당신은 딱 한 가지 조건만 바꾸면 된다.


사는 곳




만약 당신이 빠른 시일 내로 영어권 국가로 가서 그곳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영어"라는 것이 당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진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다. 게으름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다. 내 삶이 있는데, 영어에만 온전히 몰두 할 수가 없다. 돈도 벌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가정도 돌봐야 하는데 영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다. '영어'는 당신의 일상 속에서 자그마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날 갑자기 뉴욕이나 LA한복판에 떨어져서 살아가야 한다면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바쁠때, 영어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뉴욕의 타임 스퀘어 앞을 지나가고 있는 당신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정신없이 바쁘거나 영어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당신이 듣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영어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앞서 내가 말한 세 가지 이유는 무시해도 좋다. 모든 대화는 쏟아내는 시간임과 동시에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며, 당신이 영어에 몰입하는 시간은 15분이 아니라 24시간이 된다. 또한 당신의 영어를 교정해줄 선생님은 하나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영어를 교정해주게 된다. 당신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스타벅스 직원의 표정, 당신의 표현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택시기사, 당신의 문법을 고쳐주는 직장 동료들이 언제나 당신의 영어를 교정해준다. 당신의 수치심을 자극하든, 자존감을 건드리든 아니면 반대로 신이 나게 하든 어찌 되었든 당신에게 모든 긍/부정적 동기부여를 해준다. 당신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회화학원에서 프리토킹 좀 한다고 영어 실력이 올라갈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게 좋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회화 학원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학원을 가고 싶다면, 직접 가서 커리큘럼을 알아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토킹만 계속 하는 회화학원은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드스쿨이지만, 읽을거리 따라할 거리, 들을 거리를 계속해서 주는 학원을 찾으라고 말한다. 스스로 공부할 거리들이 있는 곳에서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높여야 한다. 프리토킹은 가끔 먹는 특식 정도로 생각하라고 한다. 절대 당신 영어 공부에 메인이 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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