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이 아닌 monochrom!
들어가기에 앞서 이 에세이의 의도 - 사진의 테크니컬한 것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 는 내가 담고 싶은 하나. monochrom에 관한 것임을 밝혀둔다. 내가 찍은 사진은 단 하나의 색인 동시에 내가 쓰는 글은 단 하나의 기억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에세이의 주제 역시 단 하나의 색. 에 관한 것이 되었다. 애써 부연설명을 하자면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그래서 혼란스러운 색을 내 쪽에서는 딱히 기억하고 싶은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흑백 사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러사진이 주는 매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으로만 파리의 모습을 담겠노라 단언하고 라이카와 함께 가벼운 짐만 챙겨서 파리로 떠났다. 에세이와는 상관없는 말을 보태자면, 호기롭던 내 의도와는 달리 때때로 반드시 컬러사진이어야만 했던, 색으로 기억 되어야만 했던 순간은 분명 있었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저버린 채 기어이 컬러사진의 파리를 몇 장 담고야 말았다.
수많은 도시 중 첫번째로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심플했다. 여태껏 살면서 가장 많이 다녀온 도시가 바로 파리-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뉴욕과는 또 다른 이유였다-였기에. 고백하건대 나는 많은 도시를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동시에 여행전문가라는 말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을 자랑 - 가끔 많은 도시를 여행한 것을 가슴팍의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있다 - 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겨우 며칠 그곳에 달랑 머무르면서 그 도시를 이해하고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을 논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처음 해외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풍경에 놀라게 되고, 보다 멋진 풍경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도시의 진짜 주인공은 풍경이 아닌 그 도시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나는 익숙하면서도 이 낯선 도시를 보다 이해하기 위해, 해마다 다른 계절로 여러 번을 찾는다. 그것이 내쪽에서의 도시를 여행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영화도 처음 볼때의 감정과 두 번, 세 번 볼 때의 감정이 다르지 않던가.
어쩌면 파리는 에펠탑 하나만으로도 가야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에펠탑 하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 주제가 생각났다. 하나 라는 것. 그리고 흑백사진 - 사진의 역사는 흑백사진에서 부터 시작되었기에 빛의 강약과 농담의 하모니에 더 깊게 파고 들고 싶었다. 그래서 파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오로지 흑백사진이 주는 하나의 심미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이다 - 까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지만 파리 예찬을 늘어놓고 싶은 의도는 내쪽에선 없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정리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의 형태로던지, 인터넷의 기사라던지, 무척이나 상세하고 꼼꼼하게 잘 정리되어져 있으니까.
흑백사진을 찍기로 다짐하고 떠난 파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옛날 브레송처럼 작은 라이카 하나 들고 파리 골목을 누비고 다닐 생각에 신이 났던 것이다. 위의 사진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생각을 늘어놓다 보니 서론이 제법 길어졌다. 마레에서 만난 이 남자의 사진을 보면 파리스럽지- 파리스럽다고 애초에 정의한 건 누구인가 - 않지만, 어떤 면에서 본다면 파리스럽다. 자유방만하지 아니한가. 어느 누가 파리에서 이런 사진을 찍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찍었고 이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익숙한 듯 낯선 파리에서 단 하나의 색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였다.
FRANCE | paris | 2016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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