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거나 연결되고 싶은 것 따위의 마음을 돌아보며
이게 무얼까. 방 안에 담겨 생각해 본다.
콩콩팥팥을 배시시 웃으며 보다가. 이게 무얼까?
1년의 마지막 업무 제출 건을 어제 마무리하고 잘 버텨오던 몸이 무너졌다. 파업이다. 머리가 지끈, 몸은 화끈, 감기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아프다 보니 가리워졌던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건 아마도, 외롭다는 것. 음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면 연결되고 싶다는 것.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의미 있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고 싶다는 것.
나는 둔한 편이다. 담배 냄새도 코앞에 닥쳐서야 알고, 매운맛도 31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느꼈다. 맥주 맛에 쓴 맛이 들어있다는 것은 33살에 알았고, 눈앞에 날아다니는 비문증도 어느새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럴까, 감정도 참 늦게 알아챈다. 올해 내 생일날 케이크 촛불을 불기 직전, 부모님은 쾅쾅 싸웠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억지로 노래를 부른 후에 문을 걸어 잠그고 싸우는 부모님을 중재해 드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열흘 후에야 그날 내가 속상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알아채기 전까지는 난 어른스럽게 잘 대처한 내 자신을 보고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이렇게 아프고 나서야,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 것, 그래서 그렇게 게임을 했구나.
6개월간 게임을 했다. 내가 늘 그랬듯이, 빠져들어서 성실히.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신 못 차리고.
그 속에서 있는 것이 좋았다. 강해지는 것이 좋았고 길드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좋았다. 함께 퀘스트를 하는 것이 좋았고 그들과 농담하며 진심으로 깔깔대던 순간이 좋았다. 강해져서 도울 수 있었기에 기뻤고, 친한 사람들이 나를 챙겨주는 게 좋았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소속되어 나누니 정말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하나의 단체에 소속되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내 외로움을 채웠던 순간을 나는 안다. 대학생시절, 동아리를 하면서 나는 동아리와 사귀었다. 애인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과 일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 모두를 동아리 활동에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돌이켜보니 그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게임은 온라인 세상이라는 점. 그게 나를 더 공허하게 한다.
50명의 길드원 중에서 나와 친한 몇몇은 아마 현실에서 만나도 나와 맞았을 것이다. 쿵짝이 잘 맞고 원하는 것이 비슷하고 일어난 일에 반응하는 방법이 유사해서 대화가 잘 통한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부분을 찾아 기꺼이 배운다. 옹졸하고 이기적인 내가 그들에게서 나눔을 배운다. 매사 진지하게 받아치는 내가 그들에게서 적당한 선의 유머를 배운다. 인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인생 조각을 나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나는 이것을 현실에서 하고 싶은 것이다.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친해지고, 놀리고 장난으로 화내고, 함께 도전하고, 성과를 나누고, 자랑하고, 축하하고, 일상을 나누고, 정기적으로 만나고,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반응하고. 사랑하는 내 친구들과 하던 것인데, 지역을 옮기고 나니 여의치 않다. 지금 지역에서 이런 것들을 함께할 사람을 찾고 싶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인생에서 꾸준히 평생 함께할 사람을 찾고 싶다. 그게 이성이라면 찾은 그 사람과 결혼해서 일상을 누리고 싶고, 장난처럼 말하듯 친구들끼리 빌라 하나에서 오손도손 모여 사는 것도 좋겠다. 나에게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사람에 관한 일이고 인연에 관한 일이라 노력해도 확신할 수 없는 점이 속상하다.
이런 나를 알고 나니 게임과 조금 거리가 생긴다. 너무 속절없이 붙어있었기에 그 거리감이 낯설다. 그럼에도 영원히 처음 게임을 시작하던 때처럼 지낼 수는 없는 거고, 친해지기 시작하던 때와 친해지고 난 후가 같을 수 없듯 모든 관계는 변해간다. 게임에서 삶과 현실의 경계를 인식하고 편안히 즐기기를. 아쉬운 마음과 집착하는 마음이 흘러가기를 바란다. 현실에서는 가만가만 나를 돌보며 인연이 왔을 때 기꺼이 함께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상대방을 깊이 바라보기를. 바라본다.
무엇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계속 회피하며 살아가는 나일수도 있고 좀 바뀐 나일수도 있겠지. 계속 미루는 나일수도 있을 거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미리 하는 내가 될 수도 있을 거다. 계속 이렇게 사람에게 기대고만 싶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어줄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도 내일의 내가 어떨지 모른다. 오늘의 나를 바라보는 연습조차 걸음마 단계인걸. 뭐가 맞는 게 있겠는가 하며 잠을 청해 본다. 내일은 새 날이 되겠지.
설사 내가 오늘 하고 있는 무언가가 옳지 않을지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한테 많이 들어보니, 그런 건 없는 거더라. 하고 싶은 대로 이것저것 해보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