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내어줬던 발목을 빼내어서 앞으로 가
엄마를 뒤돌아보느라 모든 힘을 소진했던 나에게
몇 년간. 그러니까 엄마의 우울과 발작 같은 분노가 시작되었던 4년간 내 마음의 80퍼센트는 엄마로 가득 차있었다. 처음 일 년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뒤돌아 눈물을 삼켰고, 그 다음 일 년은 소중한 친구에게 내 삶을 고백하는 것으로 살을 비집고 나온 고통을 견뎠다. 치열하게 분리하려 노력했지만 엄마도, 내 마음도, 직장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바닥에 닿았을까? 4년째인 올해, 그리고 3년 9개월인 오늘, 나는 생각한다.
"엄마의 삶을 짊어지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며 앞으로 가고 싶다.
앞으로. 내 삶으로."
김미경 강사가 최근 찍은 유튜브를 봤다. 자식과 말하지 않은지 오래된 부모에게 하는 말이 담긴 영상이었다. 나는 자식으로서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어떤 한 문장에 이르러 몸 전체가 쿵. 울렸다. 부모가 자식이 가는 길에 본인의 생각으로 압박을 가하면, 자식은 밖에서 꿈을 향해 뛰고 삶을 살아가는데 쓰일 모든 힘을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데 사용하게 된다고. 아, 그게 내 지난 4년이었다. 나는 부모가 나와 동생을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사로잡혀, 엄마의 슬픔과 나를 분리해 내느라 다른 것에 일체 집중할 수 없었다. 주말마다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은 녹초였고, 주중에는 그때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보고자 발버둥쳤다.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내 가슴은 자꾸 자꾸 뒤를 돌아봤다. 나의 슬픔, 엄마의 슬픔, 아빠의 슬픔, 동생의 슬픔. 침몰하지 않기 위해 버텼고, 절망하지 않기 위해 분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더 이상 내 발목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아 진 거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나의 생각이든 엄마의 생각이든 상관없이 모두 뒤로하고 걷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걸어가고, 내가 바라는 것들을 향해 다가갈 거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뜻대로 가기 위해서 걷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한다.
3년 9개월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오늘에 도착하기 위해 지나온 길이기에 그 길을 사랑한다. 수없이 뒤돌아보고 나보다 타인의 삶을 더 이해하려 했던 나를 사랑한다. 여전히 나는 뒤돌아보려 할 것이고, 마음 쓰겠지만 내 모든 힘을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데 사용하지 않을 테다. 뒤로만 향했던 내 시선이 앞으로 옮겨간 것이 느껴진다. 떨리고 희뿌연 시야지만 나는 내 앞에 놓여진 길이 분명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