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리뷰: 1990년 20대 변영주 생방송에서 여성에 관한 사이다 발언
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손가락을 맡겼다.
30년 전 스물다섯의 변영주 감독이 KBS <생방송 여성>이라는 TV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여성 영화인 모임 '바리터'의 첫 작품인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었다.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부담스러워 잠들기 전 가볍게 웃으며 볼 영상을 찾으려다가 젊은 변영주 감독의 모습이 신기(?)하고도 멋져서 그냥 어떤 내용인지 잠시만 보기로 했다.
* 바리터: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역경을 딛고 불사약을 구해 나라와 부모를 구했다는 여성의 고전 설화 '바리데기'와 장소를 뜻하는 '터'의 합성어.라고 한다.
사회자와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 내용 중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사회자. '여성영화'는 다른 영화와 어떤 것이 다른 겁니까?
변영주. '여성영화'는 여자가 나오거나 여자가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여성이 처해있는 상황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떨쳐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미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여성영화입니다.
사회자. (바리터 회원과 인터뷰를 하며 여성끼리만 영화를 만들 때 특별히 어려웠던 점에 대한 인터뷰 - 카메라와 조명기가 무거워서 낑낑거렸는데 변영주 씨 경우엔 덩치가 있어서 카메라맨을 하기에 적당한 체격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변영주 감독에게...) 변영주 씨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시네요. 덩치가 정말로 크신가요?
변영주. (일어선다.)
사회자. 사실 이런 짓 하지 말아야 하는데, 좀 흥미위주로 갔죠?
변영주. 용납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그런데.. 역시 체격이 컸기 때문에 카메라맨을 자임하고 나선 건 아니신가요?
변영주. 체격이 컸기 때문이라기보다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저를 위해선 편한데요. 기계를 다루는 것은 체격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자.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영화 얘기를 해볼까요? 영화 내용이 분한 내용, 잘못된 내용을 고발하는 겁니까?
변영주. 이 영화는 단순한 고발에 있지 않습니다. 여성영화는 단순히 여성문제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발을 한 후에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부분도 충분히 얘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영화 시청
사회자. (영화를 보고) 저렇게 사는 분들이 어디 있겠어요?
변영주. 사실과 영화과 달라선 안되기에 사무직 여성, 기혼 여직원 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사회자.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표현하고자 했던 세상은 무엇입니까?
변영주. 구조적으로 여성이 불평등하거나 구조적으로 여성이 힘든 부분을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구조를 바꾸는데 여성들이 일어서야 한다라는 것을 주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회자. 변영주 씨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나고 살아오면서 무슨 억울했던 일이 많습니까?
변영주. 별로 없습니다. 따로 불평등하게 컸다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사실 저도 여성문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여성문제는 그야말로 불쌍하거나 힘없는 여자들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에서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의 많은 모습들이 개인적인 모습들은 아니며,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난 받고 있는데, 고난 받는 이유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면 저 역시도 고난 받는 것이겠죠. 저도 여자이니까. 여성운동을 하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해방된 여성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얘기하는데 저는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 땅에서 한 명이라도 해방되지 못하고 억압받는 여성이 있다면 그 땅에는 해방된 여성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는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보고요.
방청석 앙케이트 : 결혼과 일 양자택일 한다면?
1. 일을 택한다.
2. 결혼을 택한다.
3. 모르겠다.
방청객 1 - 일을 택한다 : 결혼도 중요하지만 결혼 생활에 얽매이다 보면 자기 성취가 없어지고 남편과 자식에게 대리 성취를 느끼기 위해서 살다 보면 그 삶이 따분해지고 탈선하는 주부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기보다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택하고 그다음에 가정도 돌보고(물론 분담해야 되겠죠?),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방청객 2 - 결혼을 택한다 :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크리스천 입장에서 봤을 때 여러 가지 사회적인 것을 생각했을 때 결혼이 여자로서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을 돌봐야 하고 2세들, 다음 세대를 생각해서 그들을 모범적인 사람들로 키우기 위해서는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정이 커서 사회가 되고 사회가 국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는 결혼을 택했어요.
방청객 3 - 일을 택한다 : 가정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엄마가 붙어서 키워야 된다고 보지는 않아요. 아이를 충실히 돌보면서 나머지 시간에 내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고요. 나이가 들어서도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정도 잘 돌보면서 사는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시민 인터뷰: "이렇게 본다 - 요즘 20대 여성"
아주머니 1 : 발랄하고 이쁘고 개성이 뚜렷하고 그렇죠. 며느리감으로 삼는다면요? 괜찮죠 뭐 맞벌이도 하고.
회사원 1 : 가장 칭찬할 점은 솔직하다는 거.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분명히 얘기하는 것 같아요. 단점은 외적으로는 아름다운데 그에 상응할 만큼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느냐?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머니 2 : (리포터 - 20대 여성 흉볼 거 뭐 있어요? 흉볼 거 아무것도 없어요?) 좋은 것 같아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좋은 거 같아요.
회사원 2 : 담배 피우는 경우요. 좋은 것도 아니면서 마치 남자하고 대등해지기 위해서 피는 양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변영주 : 아주 재밌는 건데요. 저런 거, 사람들 반응을 물어보는 거. 두세 가지 정도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첫 번째로는 요즘 여성들은 외면적으로만 아름다워지려고 한다. 그럼 외면적으로만 아름답게 만드는 건 누구죠? 그건 바로 이 사회라고 생각해요. 여성을 잘 가꾼 상품으로만 만들려고 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동떨어져서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먼저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여성은 이래야 됩니다라고 나온 수많은 CF들과 또 그렇게 생각하는 많은 제도들이 먼저 고쳐져야지, 외면적으로만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그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보고요. 또 하나는 어머님들이 어쩌고저쩌고 다르다 말씀을 하시는데, 분명히 그것을 인정을 해요. 어머님 세대와는 틀리죠.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고대인들도 요즘 애들은 참 이상하다고 말이 있었다는 것처럼 그것은 항상 새로운 사회 환경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는 게 아니겠느냐고 봅니다.
영상을 다 보고 느낀 점은
1. 변영주 감독은 저 때도 말도 잘하시고 멋있으셨네.
2. 30년 전에는 사회자고 시민 인터뷰고 저따위 말을 잘도 하네.
3. 참! 그러고 보니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와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말을 하고 있네.
4. 30년 동안 같은 얘기를 해야만 했던 여성들은 이 시대가 나아진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소감이었다.
학부 때 들었던 여성학 수업은 교수님의 얼굴만 기억이 날 뿐 사실 아무 기억이 없고, 여성운동이니 페미니즘이니 내 주된 관심이 아니기에 굳이 찾아서 공부하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앞으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얼마나 제대로 보고 관심을 기울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여성이 남성을 위한 존재로 그 계급이 매겨지게 되는 관계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 때 그들의 존엄을 과연 찾을 수 있느냐에 대한 반문으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관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을 극복하기 위해
30년 동안 같은 외침을 해야만 하는
여성운동의 목소리가
충분히 관철되지 않는 이 사회는
정말로 문제가 많다고 보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