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진짜와 포장 사이

by 묵묵한 해설자
포장에 익숙해지다 보면 진짜 나는 누구였는지 흐려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몇 년 전 일본에서 별다른 정보 없이 호텔 근처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간 일이 있다. 막상 가보니 오너셰프가 프랑스 사람이었고, 음식이 화려하진 않았으나 본토인의 요리여서 그런지 프랑스의 쏘울이 느껴지는 듯했다.


얼마 뒤 일본에 놀러 가는 친구에게 그 식당을 알려주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다가, 그 셰프가 동유럽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랑스가 아닌 동유럽인의 식당에서,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프랑스의 쏘울을 느끼며 식사를 했던 것이다.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설레발을 쳤던 것이 민망해서, 친구에게는 그냥 못 찾겠다고 둘러댔다.



사실 저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있는 있는 것 같다. 런던과 아무 관계가 없는 런던베이글도 그렇고, 도쿄등심, 도쿄빙수, 교토마블 등의 업체들 역시 일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내 브랜드들이다.


파리바게뜨 역시 지금은 국내 토종기업이라는 것을 다들 알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마치 프랑스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만약 파리바게뜨가 아닌 삼립베이커리 같은 이름을 썼다면 지금과 같은 큰 성공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크림치즈의 대명사와도 같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역시 필라델피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제품이다. 뉴욕에서 만들었지만 당시 필라델피아가 유제품을 잘 만드는 도시이기도 했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어서 그냥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역시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품질이 좋다”고 말할 때, 실은 뉴욕산이라는 걸 알면서도 허허 웃고 넘긴다면, 그건 상대를 속이는 것일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참으로 애매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가끔씩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실제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 “저 사람은 항상 침착하고, 배려심 있어 보여”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는 ‘꼭 그렇진 않은데…’ 하면서도, 굳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미지에 기대면 더 편하고, 나 자신이 조금 더 나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듬고 포장하며 살아가는 것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의지이자, 사회 속에서 부드럽게 관계를 맺기 위한 일종의 매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포장에 익숙해지다 보면, 문득 진짜 나는 누구였는지 흐려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이 어떤 감정과 욕구를 가진 사람인지 잊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문득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같은 이름이 떠오른다. 세련돼 보이지만 정작 그 도시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이미지로 만들어진 브랜드. 나 역시 괜찮은 이미지로 포장된 ‘보기 좋은 나’에 길들여지면서, 진짜 나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도, 그 경계 어딘가에서 진짜와 괜찮아 보이는 사이를 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