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에 와서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연극이다. 공대에서 공부도 아니고, 연구도 아니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제일 열심히 했던 나는 두 번의 연극에 배우로 참여했다. 첫 번째 연극은 2018년 초에 올린 ‘순정만화’였다. 대본 리딩과 캐스팅 오디션을 통해 역할이 순식간에 결정되고 바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내가 맡았던 역할은 ‘하경’이라는 이름의 20대 후반 직장인. 하경에게 빠져 졸졸 쫓아다니는 고등학생 ‘숙’과의 케미를 보여줘야 했지만, 공연이 처음이라 무대 위에서 걷는 것조차 어색했던 나였다. 로맨스는 둘째치고, 연습실 안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부터 찾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건지 불안에 떨며 잠이 들기를 두 달,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무대 뒤에 서자, 하나둘씩 들어오는 관객들로 강당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시작되고 벤치에 앉아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는데, 조명이 켜지자 맙소사, 너무 긴장했는지 눈앞이 하얘져 관객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콜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같은 상태였는데.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한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행히 맹연습의 결과인지 실수 없이 이틀간의 공연을 마쳤고, 항상 가던 단골 술집에서 뒤풀이를 시작했다. 자리에서 한 명씩 일어나 소감을 말하는 시간. 사람들은 짧은 소감을 말하며 소주 한 잔을 비웠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뭐라고 했던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모두가 나를 보며 웃어줬던 그 표정만은 생생히 기억난다. 술병은 끊임없이 쌓였고 술집이 문 닫을 시간이 되자 2차로 동아리 방에 몰려갔다. 우리는 오늘 했던 공연과 동아리의 미래에 대해 날이 새도록 대화를 나눴다. 뜨는 해를 바라보며 기숙사로 돌아오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아리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했나 싶지만, 뜨겁고 진지했던 그 날의 대화가 알코올 향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연극은 2019년 말에 올린 ‘수상한 흥신소 3’였다. 전공 수업과 학생회 활동으로 너무 바빠서 안 하는 게 맞았지만, 동기가 연출을 맡기도 했고 대본도 재밌어서 하고 후회하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극 중 시간여행을 하는 ‘이랑’의 엄마인 ‘인영’ 역을 맡았다.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 6회 진행되는 연습 때문에 아침 수업은 거의 빠지거나 간다고 해도 졸기 일쑤였다. 심지어 입학하고 처음으로 과제를 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그래서 연습 시간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다려졌다.
연습이 한창이던 11월 초, 중간점검을 위해 동아리 내부 공연이 진행됐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건지 선배들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몰래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뒤풀이에서도 눈물이 터졌다. 내가 울자 나랑 대화하고 있던 연출도 울고, 그 옆에 있던 선배도 울고, 앞에 있던 후배도 울고. 술집 한복판에서 갑자기 눈물바다가 펼쳐졌다. 알코올의 힘도 있었겠지만,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들 덕에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생각하면 조금 창피하지만 그래도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이다.
11월 30일, 공연 날이 밝았다. 극의 첫 장면, 첫 대사의 주인공이 나여서 무척이나 긴장됐지만, 그래도 두 번째 공연이라고 무대 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틀 동안 객석이 관객으로 가득 찰 정도로 흥해서 기분 좋게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배우 대신 연출로 공연에 참여하려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졸업을 하고 말았다. 두 번의 연극을 비롯해 많은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면서 나에게는 행복한 기억과 사람이 남았다. 그런데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다시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일까. 밤이 새도록 무대에서 맞췄던 대사와 동작들. 새벽 연습이 끝나고 출출해 같이 편의점으로 걸어가며 나눴던 대화들. 의상과 소품을 사러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갔던 날. 연극은 끝났지만, 추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를 슬프고도 행복하게 할 거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