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호 Jan 30. 2022

작고 느린 것으로

내가 사랑하는 달팽이 책방

 내 대학생활의 숨구멍, 달팽이 책방은 포항 효자시장에 있는 작은 책방이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갔던가, 아니면 친구가 좋다고 가보라고 했던가. 첫 방문은 까먹었지만, 힘들고 지칠 때 자주 달팽이 책방을 가서 마음을 충전하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어느새 내가 포항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작고 느린 것으로’를 모토로 하는 이 책방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서른이 넘어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 포항으로 돌아왔습니다. 학창시절 숨구멍이 되어주었던 소중했던 한 공간을 기억하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바로 이 자리에서, 책이 있고, 차가 있고, 때때로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런 공간을 꿈꿉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절실했을 지도 모르는 곳을 작고 느린 것으로.


 사장님의 글 속 누군가가 나였다. 나에게 달팽이 책방은 절실하게 필요한 공간이었다. 포항에서의 대학생활은 돌이켜 보면 극한의 연속이었다. 항상 과제와 시험에 쫓기고, 그 와중에 자치활동과 동아리도 하다 보면 몸과 마음 모두 지쳐갔다. 며칠 밤을 새우는 건 흔한 일이었다. 커피를 몇 잔씩 마시며 잠을 쫓아내다가,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도서관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기도 했다. 기분이 한없이 추락해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럴 때가 바로 달팽이 책방에 가야 할 때였다. 크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학교에 있다가, 작고 느린 것을 추구하는 책방에 가면 마음부터 편안해졌다. 새로 나온 책은 뭐가 있나 기웃거리다가 한 권을 집어 읽으면서 달콤한 밀크티를 마시면, 에너지가 점점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달팽이 책방 단골이 되었고, 주변에 좋아하는 친구들을 책방으로 데려가 그들도 단골로 만들기 시작했다. 책방에 가서 책을 둘러보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선물해주기도 했고, 평소에는 전혀 읽지 않았을 것 같았던 책을 충동적으로 골라 읽기도 했다. 그 덕에 재즈에 대한 책, 건축에 대한 책, 세계사에 대한 책 등 다양한 책을 읽게 되었고, 관심 있는 분야도 조금씩 넓어졌다. 여름이 되면 달팽이 책방의 시즌 메뉴, 살구 티펀치를 마시며, 내년 여름에도 꼭 이걸 마셔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내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는 건 생각보다 근사한 일이었다. 


 이제는 대학교를 졸업해서 포항을 떠난 지 꽤 되었다. 그래도 포항에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몇 달에 한 번씩 포항에 내려가곤 한다. 포항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사이사이 나는 꼭 달팽이 책방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책방에 앉아있으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졸업하고 처음 달팽이 책방에 갔을 때, 나를 기억해주시는 사장님을 보며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달팽이 책방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면 좋겠다. 대학시절의 나처럼, 위로가 필요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계속 휴식처가 되어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편지를 보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