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기 위해 편지지를 골랐다. 당신의 이름을 맨 위에 적고 잠시 멈췄다.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하다 우선 인사를 건네보았다. 안녕, 혹은 안녕하세요. 삐뚤빼뚤한 글씨를 가다듬고 나의 근황을 전했다. 나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요즘은 누구 때문에 힘들다 같은 이야기들. 시시콜콜한 문장 뒤로 당신의 안부를 물었다.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행복과 건강을 비는 말로 편지를 끝냈다. 내 이름을 적고 편지 봉투에 편지를 넣었다. 문방구에서 산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을 찾아 길거리로 나섰다. 5분 정도 걷다 발견한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나의 편지가, 나의 마음이 잘 전해지기를.
편지는 다정한 마음을 적어 보내는 행위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고르고 골라 한 장의 종이에 담아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가닿게 하고 싶을 때는 편지만 한 것이 없다. 살면서 많은 편지를 쓰고, 많은 편지를 받았다. 받은 편지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작은 박스에 보관해두었다. 내 보물 1호인 그 박스에는 많은 사람이 보내준 다정한 마음이 들어 있다. 한 번씩 지칠 때 책장 맨 밑 칸에 놓여 있는 박스를 꺼내 편지를 읽어보았다. 나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나에게 많이 배운다. 항상 고맙다. 어느 곳에 가든 응원한다. 사람들의 넘치는 애정에 가슴이 따뜻해지며 박스를 닫았다.
힘들었던 시기에 친구의 다정한 편지를 받고 한참을 운 적도 있다.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것 같고 모두가 나를 욕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였다. 한 자 한 자 눌러 쓴 글씨에는 나를 아껴주는 친구의 마음이 잔뜩 묻어나왔다. 내 편이, 나를 언제나 지지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위로였다. 그 이후로 나도 힘이 되어주고 싶은 친구들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내가 받은 위로처럼 그들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갔을 때도 자주 편지를 썼다. 이쁜 엽서를 골라 아끼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건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편지를 받은 이들이 기뻐하고, 그 덕에 나도 기뻤으니까. 최근 있었던 일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친구. 아주 감동적이라는 친구. 눈물이 찔끔 났다는 친구. 보냈던 마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돌아온 마음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날아가는 편지는 짧게는 이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려 한국에 도착했다. 친구들을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편지가 잘 도착했는지 혼자서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맥락에서 편지는 아날로그 감성을 한껏 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독립 서점을 가는 것도 좋아한다. 인터넷보다는 독립 서점에서 책을 산 적이 많다. 평생 읽지 않았을 책을 주인 분의 추천 덕에 읽은 적도 있으니, 매력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와 함께 필름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쓰고 있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선물한다. 셀카를 찍어 벽에 걸어놓기도 하고. 한 달 후면 이사를 하는데, 그 집에는 턴테이블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LP나 영화 OST를 담은 LP를 사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설렌다.
아날로그 인간인 나. 그 시작은 편지였다. 따뜻한 마음을 손글씨로 표현하는 일.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편지만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빠 한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다. 오랜만에 편지지를 꺼내 이름을 적어보았다. 이따 저녁 먹고 우표를 사러 문방구에 들려야겠다.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