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서울대학생 박종철 군의 죽음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조치를 말미암아 집회는 한층 더 거세졌다. 그리고 연세대학생 이한열 군의 죽음까지 이어지며 6월 항쟁으로 연결됐다. 그렇게 직선제가 골자인 6.29선언이 탄생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굉장히 진부한 말이지만 1987년과 2017년. 30년 이라는 시간공백이 무색하게 닮아있다. “내가 최순실”이라며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쌌다. 하지만 진실은 이내 드러났다. 매서웠던 추위 속에서도 매일같이 수많은 촛불들이 광장을 가득 채웠고, 비단 서울의 일만은 아니었다.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은 1987년 일련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극 초반은 (하정우 역) 와 (김윤석 역) 이 이끌어간다. 역사극이 주는 무게감과 김윤석의 묵직한 연기가 자연스레 분위기를 압도한다. 하지만 능글능글함으로 무장한 하정우의 연기는 무거운 분위기를 희석시킨다. 여기에 간간히 터져 나오는 언어유희는 말도 안 되는 세태를 비판하는 동시에 영화의 무게감을 톤 다운 하는 효과도 누린다.
그렇다고 특정 인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물열전이다. 각계각층에 있는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와 제 몫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 없는 캐릭터이거나 산만하지 않게 느껴진다. 설경구, 김의성 그리고 비밀병기(?) 강동원까지. 장준환 감독이 얘기한 것처럼 “어떤 누군가의 승리가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한 모든 이들의 승리라는 것”을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희 역을 맡은 김태리도 돋보인다. 생기발랄하고 밝은 대학생에서 격랑에 뛰어들기까지의 슬픔과 고뇌까지도 잘 표현했다. 연희는 극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가족들 생각은 안해요?”라고 따지듯 반문한다.
그리고 그 집회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연희. 김태리 배우는 “그분들의 희생으로 잘 살아왔다기 보다 우리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 연희가 좋아하는 노래로 나오는 故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이름도 모르고 소속도 모르는 많은 이들. 계속 이어지던 군부독재의 집권. 민주주의가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
현재의 민주주의가 그 이름 없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일궈냈다는 것을 기억해야함은 물론 지난해 추웠던 겨울을 뜨겁게 보낸 우리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