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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고 피어올라 비산하는
음악의 생명력

Lime Ears TERRA

by 범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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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이어스는 폴란드의 프리미엄 이어폰 브랜드로, 다른 이어폰 전문 브랜드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여럿 있습니다. 일단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라임부터 짚고 넘어가보도록 합시다. 라임은 신맛이 매우 강렬한 과일로, 잠을 깨우기에 매우 좋은 효능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했었는데요, 과일과 채소를 신선하게 보관할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선원들은 보존이 쉬운 음식들만을 배에 싣게 되었고, 그 결과 비타민 결핍으로 '괴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당연히 괴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치유할 수 없는 죽음의 병이었지요. 기나긴 연구 끝에 괴혈병을 앓는 선원들의 입에 라임즙을 넣어주자, 그들은 마법같이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 의학적 상식이 발달하고 영향의 불균형이 거의 없는 현대 사회에서는 별 임팩트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기적의 과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즉, '죽은 사람을 깨울 정도로 강렬한 임팩트'를 지닌 라임같은 사운드를 선사하겠다는 것이 이 브랜드의 시작이자 의지입니다. 브랜드 로고도 당연히 라임을 형상화한 도형이며, 컬러도 라임입니다. 이 브랜드는 라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깨운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 입니다. 이 브랜드는 줄곧 여러 제품들을 통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음악은 분명 생명체가 아니지만 살이있으며, 그걸 자기네 제품을 통해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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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TERRA 역시 라임이어스의 컨셉에 충실히 따르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테라는 생명의 터전인 땅, 지구를 의미합니다. 테라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도 테란(스타크래프트 종족)이나 테라포밍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셨을겁니다. 테란은 지구인이라는 뜻이고, 테라포밍은 지구 외의 행성에 지구와 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를 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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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황무지에서 생명이 피어나 지금의 지구가 되었듯, 테라는 땅의 색깔로 쉘을 만들어 거기에 화려한 생명을 형상화한 페이스 플레이트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페이스 플레이트와 쉘이 극적으로 다른 이미지를 전달해주는 이유가 이런 대비를 의도적으로 노렸기 때문입니다.


테라는 6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프리미엄 이어폰으로, 금액은 193만원입니다. 7mm 티타늄 다이내믹 드라이버 1개로 초저음을, 2BA로 중저음을, 2BA로 중고음을, 새로운 세대의 BA로 초고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대가 다르긴 해도 BA 구조 자체는 크게 다를게 없으니 트라이브리드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구조라고 봐야 되겠습니다.


케이블은 싱가폴의 커스텀 케이블 브랜드 이펙트오디오 제품이 사용되었으며, 2pin / 4.4mm 규격의 동선입니다. 이펙트오디오는 참 활발히 타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네요. 이펙트오디오의 사운드 시그니처 역시 '고급스러운 재미' 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런만큼 라임이어스와 방향성이 어느정도 일치하기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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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의 첫인상에서 라임이어스 공통의 탄산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을 전달해주는 고음입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사이다 한잔을 들이킬 때의 그 쾌감처럼, 고음이 빵빵 터질때의 뽕맛을 확실히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역시나 라임이어스 제품이로군' 라는 익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 테라는 적극적인 감정의 동요를 부릅니다. 음악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인지 어떤 음악을 듣던 간에 활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치게 표현해줍니다. 약간은 들떠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화려하고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요. 이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안정적이지 못하고 약간 위태위태하다, 또는 정신사납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노홍철씨를 떠올리면 될 것 같지요?


이런 으쌰으쌰! 하는 사운드는 보통 엔트리급, 가성비 제품에서 많이 보입니다. 첫인상이 매우 강렬하며, 그만큼 청자를 한 번에 확 휘어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지 실제 품질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이 브랜드가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불리는 이유는 당연히 제품 금액이 높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해도 브랜드가 존속될 정도로 높은 사운드 품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성능의 바탕 역시 출중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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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런 엔트리급 제품과 구별되는 성능의 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해상력입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해상력은 요즘 가성비 제품들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장하려 하는 바는 큰 스케일의 음악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큰 스케일의 음악이 가진 아주 작은 음부터 아주 큰 음까지, 아주 낮은 음부터 아주 높은 음까지의 변화와 그것들을 풀어서 표현해줄 수 있는 넓은 공간 표현, 마지막으로 이것을 한데 엮어 기승전결과 서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콘텐츠를 평가할 때, 기승전결과 서사라는 기준은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하고, 개연성이 없다 생각되기도 합니다. 테라는 기승전결과 서사가 매우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앞서 간단하게 요약했듯, 이 이어폰은 테라포밍의 과정을 사운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 한방울 존재하지 않던 황무지에 비가 내리고 유기물의 변형과 조합으로 우연히 생명이 싹드게 되었으며, 이내 도저히 원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융성하게 되는 이 장구한 역사를 음악의 시작과 끝으로 연출하고 있어요.


이런 큰 스케일을 연출하는데는 초저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고음의 매력을 강조한 만큼 고음 위주의 사운드가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양적으로 보면 치우짐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색이 확실한 고음에 비해서 특징이 좀 덜한 정도예요. 이 브랜드가 가장 우선시하는 생명력은 쉼없이 움직여 에너지를 표출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저음보다는 고음이 유리하며, 그것이 돋보이게 튜닝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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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장르는 락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저항 정신의 락 스피릿, 피를 끓게 하는 무언가를 폭발시키는 능력이 탁월해요. 허나 포터블 하이파이 시장에서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락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락 장르에 좋은 이어폰이나 헤드폰 추천해주세요라고 질문하시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어쨌든 금액이 낮은 락에 괜찮은 이어폰은 꽤 여럿 떠오르는데, 프리미엄급의 이어폰 중에서는 마땅히 후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제는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락에 최적화된 이어폰 브랜드는 폴란드의 라임이어스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격인 제품으로 테라를 꼽을 수 있고요.


라임이어스 전 제품이 지닌 두가지 목표는 높은 성능과 재미입니다. 신제품 테라도 이 두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생각하고요, 익스트림한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완성도에 있어 타협이 불가한 분들을 위한 프리미엄 이어폰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임팩트 있게 구호를 외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락 헤드폰은 그라도!

락 이어폰은 라임이어스!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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