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분명히 쓴데 분명히 달다.
학창 시절에는
엄마, 아빠의 믹스커피
한 모금 뺏어먹는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음료 종류가 있던 게 아닌 터라,
고등학생 때도 친구들과 나는
달달한 캐러멜마키아토를 참 좋아했었다.
아, 딸기스무디도.
갓 스무 살이 되어
어른흉내를 어찌나 내고 싶던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하나 쥐고
다니는 길거리에 알지도 못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며
내심 멋져 보여 부러웠다.
아메리카노를 먹어보았다.
어찌나 쓰고 맛이 없던지
다들 왜 마시는 걸까?라고 생각했지.
지금 돌이켜보면
캐러멜마키아토 같은
달달한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가 가까워질 무렵이 되니
인생의 달달함이 소중하더라.
회사를 다니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어떤 달달한 음료를 먹어도
해소되지 않는 내 안에 답답함이
매일 파도처럼 다가왔다.
쓴 기억만 가득했던
아메리카노를
다시 먹게 되었을 때,
너무 달콤했다.
분명히 쓴데 분명히 달았다.
무엇인가 위로받는 듯한 해소가
너무 달달했다.
그런 글을 보았다.
어른이란 것은 참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진다더라.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던 시절.
달달한 캐러멜마끼야토
시절도 지나고 보니
내 삶에 다양한
쓴맛이 존재하더라고,
그래서 아메리카노가
내 인생보다 달았나 보다.
그래서 쓴데 달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