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자 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더랬다. 뭐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런 걸 굳이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적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 뭐 엄청나게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주저했지만, 왕왕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뭐 나도 언젠가 지금의 간질거림이 날아갈 때쯤 한 번 읽어보고자 기록용으로 적어 보기로 했다. 6월의 어느 날 (정확하게는 6월 9일. 기념일 챙기기 좋아하는 나보다 훨씬 로맨틱하신 남자 친구분께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세뇌를 시키시는 덕분에 이제 나도 제대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듯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시시찮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제니퍼 뭐 하고 있어?” 언제부터 나가 마셨는지 모르게 걸쭉하게 취한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어디야?”
집에서 별로 할 것도 없고 심심했던 지라, 아직 저녁도 안 먹은 상태에서 연락을 받자마자 옷만 잽싸게 갈아입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소호의 한 바(bar)로 튀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봐도 이미 만취 상태에 가까운 상태로 나타난 친구! “제니퍼~~~ 너무 보고 싶었잖아!!!” “도대체 몇 시부터 마신 거야?” 호주계 와인회사에서 일하는 친구 특성상 (호주 시간에 맞춰 일찍 끝나고 + 와인회사!) 이미 오후 3시 반부터 마시기 시작했다니 이미 3시간 반을 내리 마셔댄 듯했다. 그에 비해 내 상태는 지나치게 멀쩡했던 터라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뻘쭘했다. 주변 분위기와 너무나도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내 자신. 왜 그렇게 재미없게 서 있냐며 자신과 취기 레벨을 맞추라며 친구가 건넨 술을 마지못하는 척하며 연거푸 마시니 역시나 취기가 제대로 핑 돈다. 엄마가 들으면 등짝 맞을 소리지만, 역시 술은 빈 속에 마셔야 제 맛이다! (저와 같은 주당 손??? ㅎㅎ)
시시 껄껄한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웃어젖히고, 서로 번갈아 가며 술을 주문하다 이번엔 내 차례가 되어 술을 주문할 수 있는 바가 1층으로 내려왔다. 한참 힘들었던 락다운 이후 오래간만에 저녁 6시 이후 외식 금지 규정이 풀려 그런지 몰라도 바 안은 알콜에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을 뚫고 겨우겨우 2층의 자리로 돌아오니 친구는 온 데 간데없고 세상에나 우리가 앉아 있던 황금 자리에 (구석에 있는 소파 자리라 모두가 탐내는 자리이다!) 모르는 얼굴들이 앉아 있는 거다!!! ‘ 아 C, 얜 자리 안 지키고 어디 갔어? ‘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휘몰아쳐 주위를 둘러보는데 영 안 보인다. 일단 잔을 들고 우리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섰다. “저기, 미안한데 (아니, 하나도 안 미안한데) 여기 우리 자리거든? 니네가 지금 뒤에 깔고 앉은 게 내 가방이야!” 하고 나니 벙찐 표정의 네 명이 아무 대꾸도 안 하고 그저 쪼르르 나를 바라본다. 밀릴 수 없다. 얼마나 일찍 와서 맡은 자리인데! “너네 몇 명인데?” 그쪽에서 물어본다. “그걸 니가 알아서 뭐하게?” 아니 몇 명이랑 우리 자리인 거랑은 무슨 관계람? 슬슬 열이 받으려 한다. “제니퍼~~~~ 돌아왔네?? 내 꺼 보드카 소다 시킨 거 맞지?” 뒤에서 갑자기 화장실을 갔다 온 듯한 친구가 돌아온다. 그리고는 또 갑자기 너무나도 해맑은 표정으로 그 네 명의 무리 중 하나에게 반갑게 비쥬를 하며 인사를 한다. “제니퍼, 벌써 만났어? 이 쪽은 내 친구야~”
내 친구의 친구라는 걸 알고 난 네 명의 얼굴이 금세 풀어지고, 이미 씩씩 거리며 싸울 태세 마친 내 꼴이 우습게도 너무나도 해맑게 너네 자리인 거 몰랐다며 또 우르르 일어나 자리를 내준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그중 한 명은 아는 얼굴이다. 안다기보다는 알고 싶지 않은 얼굴. 1년 여 전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는 만나기 전 몇 번 대화를 주고받았는 데 무슨 내가 사정해서 자신을 만나는 것처럼 영 재수 없게 굴어 파토를 냈던 이다. '이 그룹 아주 가지가지 하네.' 됐다 싶어 보기 싫은 얼굴에서 얼굴을 홱 돌려 내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들여다보니 꽤나 귀엽게 생겼다. 뭐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그가 지금의 내 남자 친구이다. 홍콩에 온 지 2년이 되었다고 했고 뭐 그렇구나 싶었다. 당시 난 회사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며 일하고 있었던 터라 내 사생활만큼은 조금의 드라마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온몸으로 연애 거부를 하며 오로지 친구들과 지인들과만 지내던 시기였다. 처음 뻘쭘했던 건 어디로 가고 술 몇 잔을 더 걸치자 초반의 살기를 뒤로 하고 어느새 모두가 통성명을 하고 한 그룹이 되었다. 급하게 만난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져 소호에서 가장 가깝게 사는 내 친구의 집으로 모두 몰려 갔다. 내가 자리를 바꿀 때마다 옆에 와서 쪼르르 앉아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며, ‘아 얘가 내가 맘에 들었구나’ 싶었지만 그렇게 취한 와중에도 그냥 딱 여기까지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난 너한테 답 안 할 건데?”라는 새침한 대답과 함께 또 그 와중에 내 번호를 건네주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바로 다음 날부터 이어진 메세지,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나보다 4살 연하이다) 얜 날 언제 봤다고 이렇게 적극적인가 싶었다. 바쁘다며 튕겨내기엔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만 사실 난 퇴근 후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상태였고 또 오래간만에 이렇게 적극적인 남자를 만나니 어느 정도 설레였던 것도 사실이다. 끈질기게 이어진 첫 번 째 데이트 요청을 수락했고 그가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는 인디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이게 뭐라고 또 떨린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 마음도 안정시킬 겸 숨도 돌림 겸 로제 와인을 한 잔 시켰다. 한 모금을 마시자 와인 기운이 몸에 퍼졌고 확실히 떨리던 마음도 진정이 된다. 회사 사람들과 해피 아워를 하느라 늦었다는 그는 약속시간을 3분 정도 넘겨 도착했고 그러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볼에 쪽 입을 맞추고 앉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뭐지, 이 자연스러움은? 이 놈, 선수인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또 묘하게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각자 고른 후 난 와인, 그는 맥주를 시켰다. 본 메뉴가 나오기 전 한 잔을 다 비우고 너도 와인을 마실 거면 와인 한 병을 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란다. 내가 원하는 와인을 주문하라 하길래 이미 마시고 있던 로제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이는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 내내 부담스럽다 싶게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한 껏 들이대며 이야기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을 잡더니 밥을 먹는 내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경악을 했어야 맞는데 정말 이상하게 또 이게 싫지가 않다. 그냥 우리는 원래 예전부터 이랬었을 거 같은 느낌.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이 사람과 꽤 오래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한 이야기이지만 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내 손을 덥석 잡았던 순간, 아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는 굿모닝 메시지, 점심 때면 내가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궁금해했고, 항상 오늘은 뭘 할 건지, 내일은 뭘 할 건지 내 일상 하나하나를 궁금해한다. 어디서 약속이 있다고 하면 참 우연히도 본인도 그 주변에서 약속이 있단다. 나중에 물어보니 ‘당연히’(!) 일부러 내 약속에 맞춰 그 주변으로 자신의 약속을 잡았단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절대 진실. 남자들은 정말로 맘에 드는 여자가 있을 때 피곤함 따위, 귀찮음 따위 절대 모른다는 것.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는 사람들도 문자 하나 보낼 시간은 있고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는 그 입으로 밥 쳐(!) 먹을 시간도 당연히 있다. 나를 본인이 시간 남을 때 만나는 ‘옵션’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는 절대로 만날 가치가 없다. 내 귀중한 시간들을 허비해 가며 뼈 아프게 얻은 진실이다. 이 와는 달리 이미 전 우주의 중심이 나 인 것처럼 사는 이 남자의 정성 덕분에 우린 그렇게 거의 매일매일을 만났고,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됐을 때 이미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내 주변의 모두가 그 사람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냐고 좀 주의하면서 만나 보라 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그때 그 말들 안 듣고 밀고 나갔던 결정은 참 잘한 결정인 것 같다. 두 사람의 일은 둘만 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지나치게(?) 적극적인 게 도대체 뭐가 흠인가. 그리고 좀 천천히 만나라는 말도 결국은 그 사람이 만나자 할 때 일부러 좀 안 만나고 시간을 두고 만나고 하라는 것 아닌가. 난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빨리 보고 싶은 데 상대방이 어물쩡 거리는 것만큼 맥 빠지는 것도 없다. 그런 연애가 안정적이고 차분한 연애다, 길게 볼 때 그게 더 관계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자주 보면 질려 버릴 연애를 뭐하러 억지로 덜 만나가며 이어가나. 연애는 머리보다는 가슴을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로맨틱하고, 나보다 더 감성적이고, 4살이나 어리신 덕분에 혈기가 왕성하신 나의 남자 친구님은 나에게 그만큼 적극적이고 로맨틱한 구애를 펼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직장에서 힘들었던 날에는 깜짝으로 꽃 한 다발을 보내고,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하면 마시던 바로 술자리도 박차고 나올 만큼 나에게 헌신을 다했지’만’ 그 에너제틱함이 독이 되어 어느샌가부터 우리의 관계에 먹구름을 씌우기 시작했다.
뭐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영어로 말하자면 dirty laundry (더러운 빨랫감), 연인 사이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는 않아 가능한 한 짧게 쓰고자 한다. 나한테 정성을 쏟는 것과 비례하게 본인의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아직 기력이 넘쳐나서 그런 제 몰라도 또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정말 끝장을 볼 때까지 마시는 그의 주말 라이프 스타일은 내게 점점 벅차기 시작했다. 뭐, 이 정도만 써도 대충 우리가 어떤 류의 싸움들을 시작했고 얼마나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는지 다들 예상이 가실 듯... 사실 나도 술을 꽤나 좋아하는 터라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지만 (사실 그때도 알았다. 사랑은 사람을 유치하게 만든다,라고 변명해 본다) 무슨 복수(?)를 하듯 나 또한 일부러 연락을 안 받고 집에 늦게 들어가고 하는 짓들을 했더랬다. 무슨 술 대결이라도 펼치듯 매 주말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싸우고, 울고 불고, 그게 몇 주간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터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살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것도 내가 이 나이에.
설상가상으로 그의 주변에는 술을 마실 때마다 마치 빈대같이 붙어 그의 돈을 쭉쭉 빨아먹는 친구라는 말이 정말 아까운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만 해도 정말 치가 떨리게 싫다) 나와 만나고 난 후 그가 예전같이 매번 미친놈처럼 파티를 하지 않으니 내가 참 꼴 보기 싫고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나 보다. 하루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반갑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는 내게 “너네는 왜 그렇게 맨날 싸워?” 라며 만나자마자 내게 볼 멘 소리를 쏟아내지 않나, 또 한 친구라는 새끼는 내 남자 친구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 나에게 너네 둘을 맨날 싸우기만 하고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너를 만나고 나일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냥 헤어지라고 (아니, 니가 뭔데!!!!) 주제넘은 코멘트를 하지 않나, 지금 다시 생각해도 뒷목을 잡게 된다. 그렇게 불미스러운 일들을 당하고(!) 돌아온 밤이면 이는 어김없이 둘 간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고 (이건 내 남자 친구의 정말 나쁜 버릇 중 하나인데) 그는 그럴 때마다 문을 박차고 나가 다시 본인의 친구들에게 돌아가 밤새 술을 퍼 마셔댔다. 얼러도 봤고, 소리도 질러 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거 같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더 이상 이 짓은 못하겠는 거다. 내가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 건지, 나쁜 친구들의 유혹에 빠진 십 대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건지, 어느 순간 '난 정말 할 만치 다 했다'라는 생각이 듬과 함께 내 안의 끈 하나가 툭 터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겐 이제까지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 동안 힘겹게 지켜 온 나만의 스탠다드가 있었고, 너무 아프지만 내 자신부터 살펴야 했다. 아직 술이 덜 깬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나 더 이상 이 관계 못하겠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명대사, 사만다의 말처럼 “I love you so much, but I love me more.” 오랜만에 나에게 찾아온 달달한 사랑이라는 건 나에게 정말 너무 소중하고 꼭 지켜내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런 마늠 난 더더욱 소중한 내 자신을 꼭 지켜내야 했다.
평소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그도 느꼈던 듯 하다. 그가 술이 깰 때까지 기다린 후 조용히 그를 앉히고 조근조근 이어지는 내 이야기를 듣는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정말 무릎만 안 꿇었지 겁에 질린 사람처럼 울며 제발 마음을 바꿔달라고 빌고 또 빌기 시작했다. 터져 나올 거 같은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나일, 우리 이거 이미 몇 번이나 했잖아, 난 내가 정말 노력하면 우리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어. 놓아줄게, 그러니 너도 이제 너 친구들한테 돌아가 마음껏 다시 자유롭게 살아." 그 이후 그는 내게 수도 없이 용서를 빌었고, 이미 돌아 선 내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미 굳게 닫힌 문을 그는 두들기고 또 두들였고, 본인이 진정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매일을 노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후로 내 남자 친구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리고 날 위해 본인과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아마 그에게는 정말로 힘들었을 그 시간 동안 본인 주위의 관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듯하다. 다시 관계가 조금 회복이 되고 집에서 소소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사이좋게 먹던 와중 그가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넌 내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야. 난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때 그 바보 같던 파티들과 파티가 끝나고 나면 안부 인사조차 하지 않는 친구들 때문에 널 잃을 뻔했던 걸 생각하면 난 아직도 너무 무서워서 온 몸에 털이 다 솟을 거 같아. 매일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매일매일을 더 많이 사랑하고 내가 더 많이 노력할게." 예전에 혜민 스님의 책에서 그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본인의 인생을 바꿀 만한 정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나의 이별 통보가 그에게 인생을 바꿀 만한 충격이었던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인간관계들을 바꿀만큼 충격이었던 것이었음은 확실한 것 같다.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해야 해요?라는 질문에 난 아직까지도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연애의 고수도 아니고, 나 또한 그 길고 긴 망연애의 길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왔을 뿐. 하지만 정말로 확실한 것 단 하나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사랑은 서로에게 완벽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너무나도 불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불완벽함을 온전히 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다시 선택하며 그 불완전함을 어마어마한 '노력'을 통해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덧붙이며, 내게 연애의 조건은 서로에 대한 ‘노력’이다. 남자는 변하지 않지만 사랑은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