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반이다. 남자 친구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꿈틀대며 핸드폰을 찾았는데 그 조그마한 기척에도 잠에서 깬 남자 친구는 날 보더니 대뜸 몇 시냐고 묻는다. “아직 6시 반이야 더 자.” 반쯤 잠결에 취해서도 빙긋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굿모닝 프린세스.” 그리고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더 자라며 이불을 건네 나를 둘둘 말아 자기 쪽으로 잔뜩 당겨 안는다. 이불보의 향이 퍼지고 익숙한 그의 체취가 따뜻하게 밀려 들어온다. 아, 참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같은 식의 아침을 맞는다. 그는 ‘굿모닝 프린세스’라는 아침인사를 잊는 적이 거의 없고, 그래서 너무 피곤해서 이를 잊는 날에는 서운한 마음까지 들 정도이다. 마구 흔들어 깨워서 왜 오늘은 아침인사 안 하냐고 따지고 싶다가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너무 유치하다 싶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는다. 나는 생각보다 작은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고, 돈이나 성공 명예보다는 (물론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에 나는 너무나도 비싸고 경쟁적인 도시에 살고 있지만) 사람에게서 얻는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제 8개월 여 밖에 안된 행복한 순간 이 전에 어떤 생활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매일매일이 행복한 연애 초기를 보내고 있다.
홍콩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창을 켰는데 내가 지금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지 정말 거짓말 같게 예전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가 않아 수십 번 글을 썼다 지웠다. 사람은 진정으로 망각의 동물이다. 어디서 읽었더랬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망각'이라고. 그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도 ‘외롭고’ 힘들었었으면서 이를 그렇게 똑 까먹을 수가 있나. ‘외롭고’라는 단어를 치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괴롭고’라고 쳤다 지웠다. 실은 괴로웠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솔직하게 쓰지 그래, 내면의 자아가 슬쩍 손을 건넨 같아 나도 모르게 당황한 손이 자판 위에서 갈 곳을 잃었다.
소위 말해 능력 좋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홍콩, 젊은 싱글들도 넘쳐나는 곳이 홍콩이다. 하지만 홍콩에서의 연애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다. 그 긴 기간 동안 남자들의 대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남자 참 많이 만나고 다닌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다시 생각해도 혈압이 오른다. 당신 남편이 밖에서 뭐하고 돌아다니는지는 알아요?라고 톡 쏘아 줄 걸 그랬다는 유치한 생각도 들만큼) 연애도 열심히 했으나,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상대에게 푹 빠져 정신이 헬렐레하게 시간을 보는 것이 ‘연애’ ‘사랑’이라 굳게 믿는 나로서는 이것저것 조건 맞춰하는 연애는 영 불편했다. “그 사람 괜찮던데 왜 더 만나보지 그래.”라고 했던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마음이 그닥 가지 않는 사람들도 몇 번 더 만나보려 했지만, 그 사람 눈썹 사이사이로 삐져나온 긴 눈썹 한가닥이, 밥 먹을 때 자신도 모르게 칼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아먹는 그의 테이블 매너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모든 반사체들(스테인리스 기둥, 길에 세워진 거울, 잘 닦인 유리창 등등)을 볼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나르시스적인 태도가 눈에 거슬리고 꼴 뵈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감정 또한 빠르게 말라 버렸다. 그렇게 까다로워서 어떻게 사람 만나겠냐고 너한테 잘해주는 사람들 만나라는 말도 자주 들었더랬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솔직한 나의 생각은 굳이 그렇게 타협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직 너가 덜 외롭구나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불쾌한 코멘트에도 사람 좋은 척 그냥 허허 웃으며 그러니까요,라고 대답했지만 난 오히려 그렇게 대충 조건을 맞춰 '이 정도면 됐다'라고 결혼한 그들이 불쌍해 보였다. 난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삼은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린 나이 때부터 주변 어른들을 보며 결혼이라는 것은 인생의 더 또 다른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시작부터 그렇게 대충대충 조건을 맞춰 남은 평생을, ‘뭐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만날 때마다 남편 흉을 보는 엄마 친구들을 보며 '저 아줌마들은 자기 남편이 저렇게 싫은데 왜 결혼했을까' 싶었고 난 항상 불만할 것들이 많은 그 아줌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아주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항상 서로를 너무 아끼고 애정이 넘쳤다. 어떻게 결혼 상대를 만나야 하는지는 모르겠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런(우리 부모님과 같은) 결혼생활을, 혹은 연애를 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싱글로 살겠다.
어차피 이제는 지난 일이니 정말 툭 까놓고 다 써보겠다. 내가 왜 그렇게 홍콩에서 매번 연애에 고전을 했는지, 이곳의 연애가 왜 그렇게 힘든지. 한 마디로 말해 재수 없는 새끼들이 넘쳐나는 곳이 홍콩이었다. 그러니까 그들 입장에서 홍콩은 너무나도 좋은 옵션이 많은 거다. 일단 이 살인적인 물가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 능력치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예쁘고, 능력 있고, 성격도 재밌고, 매력이 넘쳐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사탕 가게에 들어갔는데 온 세상에서 엄선되어 골라온 세상 예쁘고 세상 맛깔 나보이는 사탕들이 지천에 쌓여 있다. 게다가 저마다 나를 선택하라고 아우성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너무 행복하고 너무 즐겁다. 어렸을 때 그 사탕 하나 먹겠다고 부모님께 잘 보이려 노력하고 빌고 울고 떼쓰고 하던 건 이제 굿바이다. 그냥 아무거나 집어 들면 된다. 질린다? 노 프라블람! 그 옆엔 또 다른 예쁘고 달콤한 사탕이 다소곳이 놓여 있다.
게다가 이 나라 (엑스팻 기준) 자체가 ‘연애’나 ‘안정’이라는 걸 기반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아니다. 이 비싸고 복작복작한 홍콩에 오면서 ‘나는 일생일대의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홍콩에 정착해 안정된 삶을 찾겠어!!’라는 다짐으로 오는 남자들은 없다. 연봉 높고 세금 적은 홍콩에서 2~3년 정도 대차게 일해서 돈 제대로 벌어다가 본국에 돌아가 집을 사거나 혹은 다음 포지션으로 승진해 연봉을 올려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게다가 이 나라에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벤트가 넘쳐난다. 서울보다도 훨씬 작은 이 조그마한 나라에 그 많은 레스토랑이나 바가 들어 차 있다 보니 서로 손님들을 끄느라 경쟁적으로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벤트들을 만들어 낸다. 손님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부터 핼러윈, 땡스기빙, 캐나다 데이, 호주 데이, 크리스마스, 박싱데이, 심지어 무제한 술과 함께하는 미국 슈퍼볼 데이까지 즐기고 나면 어느새 1년이 다 간다. 실제로 내 주위의 많은 남사친들이 그리 말했다. 꼭 다시 대학 생활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대학생 남자 친구에게 결혼과 안정을 요구하는 여자 친구는 손절 대상 1순위이다. ‘난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난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 않아.’ ‘그냥 우리 이렇게 즐겁게 만나며 지내면 안 될까?’ 내가 30살이 넘어서 이딴(!!) 말들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 동지들은 그 말을 들으며 크게 분노했고, 함께 모여 눈물을 흘렸으며, 개새끼들, 너네 없으면 우리가 못 사는 줄 알아? 우리 얘네 없어도 즐겁게 살자!! 라며 함께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둘씩 꺼지는 사무실이나 바의 등불을 보며, 진짜 이 도시에는 날 사랑해줄, 내가 사랑할 사람은 없는 걸까 지독한 외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지만.
너무 남자들만 나쁜 놈들로 몰아 미안한 것 같지만, 사실 여자들도 피장파장이다. 미안하다 여성 동지들이여!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똑똑하게 연애해야 한다'라는 이름으로 우리도 수많은 이들을 재단하고 평가질 하지 않았었나. 실제로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며 이야기를 흘리면 제일 먼저 받는 질문들은 이러했다. 뭐 하는 사람이냐, 돈은 잘 버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떻게 생겼냐, 어떻게 만났냐. 그 사람이 너에게 잘해주냐, 어떤 점이 맘에 들었냐 라는 질문들은 거의 받아 본 적이 없고, 또 듣더라도 이런 호구조사를 마치고 난 후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좀 친하게 지내다 지금은 거의 연락을 안 하게 된 친구가 하나 있는데, 뭐 나 혼자 그렇게 느꼈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때 그 친구는 유달리 그런 점이 강했다. 어린 시절 워낙 오랜 시간 동안 해외에서 살아 한국말이 살짝 서툰 친구였는데 한국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이용해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건지 내 기준에서는 선 넘는 말들을 종종 해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잘 들어주면서도 마지막에 ‘너가 행복하면 됐지, 근데 난 그런 (직업적) 사람은 좀 별로..’ 라고 한다던지, ‘그런 (직업적) 사람을 어떻게 만나?' 라는 의도가 불분명한 질문을 한다던지, 그러면서도 마지막은 ‘너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로 끝맺어 본인의 본성이 나쁘지 않음을 어필하려 하는! 뭐라고 하자니 쟤는 그냥 말투가 저런 건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찝찝한 류의 대화들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갖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그래 너는 그런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라는데 나라면 안 만나’라고 끊임없이 어필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이후 그녀는 그녀 마음에 쏙 드는 조건 사항들을 갖춘, 하지만 그녀를 개차반으로 대하는 남자를 만나 참 힘든 연애를 했는데 (내가 보기엔 연애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남는 시간에 그녀를 만나 그녀를 육체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고, 실제 이에 대해 그녀에게 조언을 하다 결국 그녀와 영영 갈라지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본인이 우선시하는 가치는 다른 거니까,라고 생각을 하려 했지만, 나 또한 그녀를 영영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슬프지만 난 이런 경우를 다른 여성 동지들을 통해 또 연거푸 겪었더랬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혹시 누군가에게 그러지 않았나 싶어 심장이 두근거린다. 혹시 나도 그러했더라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성격인데 실제로 같은 엑스팻들이라고 해도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들이 홍콩으로 이주 해와 홍콩의 연애 상황에 대해 치 떨려하는 경우들 또한 더러 봤더랬다. 홍콩보다 엑스팻 사회가 훨씬 작아 그런 건지, 아니면 분위기가 달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실제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다가 홍콩으로 넘어왔던 내 스페인 남사친 같은 경우 특히나 홍콩에서의 가벼운 문어발식 연애, 그리고 물질적인 연애에 치를 떨려했다. 본인은 싱가포르에 있는 여자들이 물질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홍콩으로 오니 여기 있는 여자들을 아예 그런 걸 숨기려고 하지를 않는 거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데이트하면 내 데이트 상대는 나를 무슨 옵션들 중 하나로 여기는 거 같다. 왜 홍콩에 있는 사람들을 누구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진득이 만나보고 결정을 하는 그런 정상적인(?!) 연애를 하지 않는 거냐!! 목에 핏대를 잔뜩 올리며 열을 토하는 그를 보며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월요일은 A, 수요일은 B, 주말은 너무 부담되니 친구들과 함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남자들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난 베이징에서 만난 옛 스웨덴 남자 친구와 함께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부터 홍콩까지 건너온, 지나치게 로맨틱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었으니. 그와의 길었던 연애를 끝내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너무나도 착한 영국 남자를 만나 2년여를 연애했으나 결국은 또 엔딩을 맞아야 했다. 그 후 아주 심하게 방황을 했다. 매일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고, 침대에 엎드려 주말 내내 울며 보내기도 했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술에 빠져 사는 생활들을 보냈다. 1년 여를 그렇게 방황을 하며 보냈고 너무 감사한 내 친구들은 내 그 힘든 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내 주었다. 1년 후쯤 난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재미있는 이벤트들이며 파티며 친구들 생일 때면 방콕으로 발리로 주말여행들도 떠나며 (그립도다! 코로나 전 우리의 신명 났던 생활들이!!) 신나게 다녔다. 그러다 난 어떤 호주 남자를 만났고 애석하게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전형적인 망연애 수렁텅이에 빠져 피 같이 소중한(!!) 내 20대 중후반의 1년 반 여를 그 새끼에게 낭비했더랬다. 그는 키도 훤칠했고 얼굴도, 잘생겼으며, 만나면 항상 다정했고, 클라이언트와 다녀왔던 멋진 레스토랑들도 많이 데려다주었다. 그는 정말 재밌었고 가장 중요한 건, 정말 멋있었다. 그의 직업상 그는 한 달에 2주씩은 각 나라들로 출장을 다녀야 했는데 내가 이거 저거 부탁할 때면 입이 댓 발 나와 툴툴 대면서도 싱가포르에 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판단 케이크도 사 오고, 한국에 출장을 갈 때면 면세점에서 부탁한 것도 흔쾌히 사다 주는, 제법 스위트 한 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절대로 그의 친구들에게 소개하지 않았다. 아직 자기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했다. 그냥 우리 둘이 만나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냐고 했다. 그래,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오픈하는 속도가 다른 법이니까,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의 집에서 다른 여자의 흔적을 찾았을 때까지. 울며 불며 그에게 이를 따졌을 때 그는 ‘우리 한 번도 서로만 만나자고 논의한 적은 없잖아?”라는 말을 하며 오히려 당황해했다. 그 이후로 그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 몇 년 후 한밤중에 문자가 한 번 온 적은 있었다. 너무나 전형적이라 정말 기다 안 차는 '자니?'라는 문자. 너가 인간이냐, 지금 생각해도 다시 피가 거꾸로 쏟지만 너무 슬프게도 주변에 있는 홍콩에 사는 싱글 여자들 중 비슷한 에피소드들을 하나 없는 여자들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피소드’들’ 이라는 것. 연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이 점차 내 손끝을 떠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울컥울컥 울분이 치밀어 오는 나날들이 잦아졌다.
이 쯤되면 현타가 온다.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난 결국 이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만나다 내 인생을 종칠 것인가. 30대에 접어들고, 어느덧 연차가 쌓여 커리어에도 안정이 오고, 연봉 업그레이드도 한 번 이루어져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맘껏 가고 (역시 코비드 이 전), 보너스 받는 때면 쇼핑도 거하게 하고(도 꽤나 후하게 남는 통장 잔고에서 오는 뿌듯함이란!) 그래 난 멋진 골드 미스로 살겠어!! 라 한 껏 다짐이 들고 나면 우울했던 마음도 접히고 뭔가 더 자신감도, 에너지도 넘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외로움, 허전함. 애써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 낸다. "너가 회사 끝나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외로운 거야. 취미 생활을 가져봐", 라는 조언에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헬스장도 열심히 다니고, 여기저기 하이킹도 다니고, 럭셔리한 샴페인 브런치도 기획하고,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 역시 몸이 바쁘니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결혼사진이나 육아 사진을 보면서도, 저축이다 뭐다 저렇게 종종거리며 살 바에는 난 평생을 화려한 싱글로 살겠어! 라며 마치 그녀들의 삶 보다 내 삶이 더 귀중하고 보람찬 마냥 생각도 해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에 한 번 몰두를 해보자.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꽤 재미가 있기도 했다. 특히나 벨기에 은행에서 일할 때 난 내 일을 무척 좋아했는데 일을 열심히 하니 성과가 눈에 띄게 나고, 당시 은행 또한 아주 드물게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던 터라 빅 보스들에게 칭찬도 받고 회사에서 waiving cat (일본 레스토랑에 가면 보이는 손을 아래 위로 흔드는 고양이)이라는 별명도 얻으며 (제니퍼가 손 대면 프로젝트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은행에 돈이 막 들어온다며 붙여 준 별명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회사의 지원도 빵빵해서 벨기에 본사 출장을 가 본사 직원들과 일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보스는 별 다른 이유를 들지 않아도 한 달이라는 파격적인 출장 기간을 주며 본사에 가서 본사 네트워킹도 잘하고 겸사겸사 좀 쉬고 오라 했다. 동료들의 시샘을 받고 뒤에서 내 이야기도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만 난 그런 상황을 즐겼다. 지들도 열심히 일하던가, 내가 정말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애 상황은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뭐 홍콩에 제대로 붙어 있어야 그나마 조금 진행되던 썸들도 유지가 될 텐데 내가 한 달간 어디로 가 있거나 아님 내가 돌아오면 그가 또 출장을 가거나, 썸이 제대로 이어질 리 만무했다. 그러던 사이 나도 모르게 난 어느새 내가 정말 싫어했던 남자들처럼 되어 있었다. “난 내 일이 너무 재밌고 커리어가 너무 중요해서, 지금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 않아.” 근데 그때는 진짜로 그랬다.
너무 클리셰 같지만 그러다 정말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해외 생활하면 한 번쯤은 다 해 봤다는 변기통 잡고 울어 봤다는 그 경험. 특히나 나는 토를 하게 되면 급격히 빈혈기가 와서 어지러워지고 심하면 실제로 쓰러지기도 하는데 그 전의 전조 증상이 바로 온몸이 저리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힘겹게 토를 하고 펄펄 끓는 열을 식히려 해열제를 먹고 이틀이나 씻지 못한 채로 침대에 힘겹게 몸을 뉘였을 때 갑자기 팔이 지릿 지릿한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회사에 두고 온 프로젝트가 생각나 저린 팔을 연신 주물러 가며 내 백업을 해 줄 벨기에에 있는 보스에게 그간 클라이언트들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포워드 하고 누웠는 데 그게 정말 그렇게 서럽고 무서운 거다. 이 와중에 이메일이라니. 나 이렇게 이메일 쓰다 심장 마비 와서 고독사 하면 어떻게 하지?
그날 이후 대학교 때 이후 설정한 적이 없는 핸드폰 단축키 저장을 했다. 1번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저장을 하려는데, 얘는 출장이 많아서 내가 전화했을 때 전화가 안 닿을 가능성이 크고, 얘는 트레이딩 룸에 있어서 회사에 들어가면 거의 핸드폰을 못 보고, 얘는 결혼하고 애 키우느라 바빠서 내 연락을 잘 못 받을 거 같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저장하면 누군가 와서 나를 픽업하고 전화를 했을 때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을 거 같고, 갑자기 정말 사무치게 서러운 거다. 그래도 엄선에 엄선을 해 단축 번호 3번까지 겨우 저장을 하고, 집 키를 복사해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죽게 되면 집에 있는 건 다 팔아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이랑 다 같이 한국에 있는 동생한테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우울감이 밀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사람을 찾아야 한다!! 사방팔방에 부탁해 남자 좀 소개해 달라 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야,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줄 남자가 어딨어.” 잊었다. 우리는 결국 다 같은 처지라는 걸.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너무나 가당치도 않은 조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싶다. 내가 그 당시 벗어나고 싶었던 ‘외로움’이라는 수렁을 ‘자기 계발’과 ‘커리어’라는 것으로 극복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나와 함께할 누군가를 찾고 싶다’는 욕구, ‘커리어적으로 아주 성공하고 싶다’라는 욕구는 애초에 서로 시작부터 다르며 이에 절대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없는 해결책이었다. 수평으로 달리고 있는 그 둘을 애써 꽁꽁 묶어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했으니 이런 궁여지책이 오래갈 수 있으리는 만무 했다.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들은, 이리저리 일로 바쁜 생활은 잠시나마 그 외로움을 타개시켜 줄 단편적 대안책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하나 문득 드는 생각은, 난 그 당시 이런 연애 상담도 정말 맞지 않는 청중들에게 요청했던 거 같다는 것이다. 나 딴에는 성공적인(?) 연애를 마친 후 결혼에 골인(?)을 한 이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연애에 대한 상담을 할 때 이미 연애 한 지가 오래된 기혼자들만큼 최악의 조언 상대가 없다. 미안하다 기혼자 친구들이여! 하지만 사실이다! 대학 때 연애와 직장인이 되서의 연애만 해도 정말 다르다. 하물며 20대에 연애를 해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사는 사람이 30대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를 할까? 연애가 다 그게 그거? 천만의 말씀이다. 니들도 해봐라,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진심을 애써 꾹꾹 누른다. 사실 생각해보면 본인들이 겪어 본 적이 없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활력이 넘치고, 어리고, (아직까지는) 순수하며, 주변에 남자도 넘치는 상큼 발랄한 연애만 해본 이들에게 연애 조언을 구하는 건 학력고사 세대 사람에게 수능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이다. 기혼자들에게는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게 맞고, 30대의 망연애에 대한 상담은 그런 30대 망연애를 해 본 사람들에게 하는 게 맞다.
내가 들었던 연애 조언 중 최악은 "좀 기다려봐. 좋은 사람 나타난다니까"이다. 본인들이야 이미 힘든 시기 다 지났고 그래서 그때 기억도 가물가물하겠지만, 안 그래도 지금 하루하루가 아까운 30대 여자에게 인내력과 참을성을 요구하는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원래 남의 군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고 당신이 말하는 한 '1년' 정도면 너에 집중하고 살아봐의 그 '1년과' 힘겨운 시간과의 사투 속에서 보내는 당사자의 '1년'의 간극은 너무나도 크다. 나 또한 지금 내 남자 친구의 연애를 알리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도 결국은 그거였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좋은 사람 나타난다고.” 나야 지금 상황이 좋으니까 “아 네 그러니까요.” 라며 웃어넘기지만 그녀들을 평생 알지 못할 거다. 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I told you so! (거봐 내가 그랬잖아)!”라는 걸. 그 말만큼 상대의 아픔에 대한 무신경과 비공감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말이 없다.
그래서 그런 거 다 지나고 지금 남자 친구 어떻게 만났냐고요라고 물으면 나 또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가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망연애의 기간들은 결국 어떤 것이 사랑이 ‘아닌 지’를 알게 해 준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내 문자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마조마하고, 왜 연락이 없지 걱정하고, 애써 나의 최상의 모습만을 보여주려 노력하지 않는 다는 것. 한껏 싸우고 나서도 ‘어떻게 화해해야 하지’ 란 고민이 들지 ‘이제 이 사람과 끝인가 보다’ 라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애지 중지 키워 주시며 사랑으로 쌓아 주셨던, 내가 무수한 망연애를 겪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쌓았던 지금의 '내 스탠다드'를 절대 위협하지 않다는 것. 간단한 문제들을 항상 너무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런 새끼들은 그냥 차 버리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것, 그 하나만큼은 정말로 확실하다. 인생은 짧기 때문이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들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거니까.
주변에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고 해서 꼭 그 쓰레기들 속에서 사람을 구할 필요는 없다는 걸 참 힘든 인생 레슨을 통해 배워왔다. 혹시나 당신도 그런 쓰레기들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제시해 줄 수 없을 지언 정, 난 당신이 원할 때 함께 울고, 분노하고, '아 그 새끼 진짜 미친 새끼네' 라며 욕하고, 흐느끼는 당신을 안아 줄 수는 있다. 원한다면 내 망한 연애 이야기도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괜찮은 사람이 반드시 찾아올 거니까, 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지금 그 힘든 과정을 나 또한 겪어 봤기에 지금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당신의 마음은 아주 당연하며 그런 당신의 모든 마음들이 이해받고 있음을,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기에. 홍콩에서 12년을 보냈고, 이 곳에 다 풀지 못한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좌절과 괴로운 시간을 겪어 온 사람으로써, 한 번쯤은 쓰고 싶었던, 꼭 말해주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들이었다. 도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지친 당신에게 나의 글이 심심한 위로 정도는 될 수있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홍콩이야기 5] 연애? 그게 뭐예요? 먹는 거예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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