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여간 홍콩에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엥? 고작 그거로?”라고 할 수 있을만한 기온이지만 겨울이 짧은 남국의 특성상 집안 내부에 온열 시스템이 있는 곳이 거의 전무하다. 10도 이하의 온도, 그것도 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날씨에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또한 습도가 높은 홍콩 특성상 추위 또한 한국의 그것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칼바람 불면 얼굴이 에일꺼 같은 추위가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뼛속까지 추위가 슬금슬금 스며드는 듯한, 말 그대로 뼛속까지 시린 추위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홍콩 내에서 꽤나 난리가 된 이슈가 있었더랬다. 홍콩은 비싼 도시의 물가와 달리 인건력이, 정확히 짚어 내자면, 단순 노동을 하는 인건력이 정말 예상외로 매우 낮다. 정말 매우.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는 누가 봐도 이거 문제 있다 싶을 정도로 낮은데 물론, 그 덕분에 수많은 혜택을 보고 사는 또 다른 선택 받은 인구들(엑스팻들을 포함한 고임금 노동자들)이 왈가 왈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싶지만 최근의 상황은 혹시나 나에게 피해가 올까 싶어 그들의 문제에 대해 숨죽이고 있던 나같은 비겁한 엑스팻들 또한 분노케 한다.
‘헬퍼’ 라 불리는 홍콩의 가정부들은 주로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헬퍼 비자’를 받고 들어온 헬퍼들이 그 업무를 담당하며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원칙상 그들은 한 가정에 고용이 되어 그 가정에 상주를 하며 집안일, 아이가 있는 집은 육아까지 담당을 하게 되는데 책이 원작이자 영화도 꽤나 흥행했던 미국의 영화 ‘헬퍼’를 참고하면 그 모습이 꽤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약 홍콩달러 4980 (한화 76만원)이라 하는 상당한 박봉을 받고 고용주와 계약 되어 일을 한다. 이 같은 문화에 홍콩의 꽤나 고급 집들에는 ‘헬퍼룸’이라는 그들이 기거하는 방이 주로 주방쪽에 딸려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게 말이 방이지 거의 한국의 다용도실 정도의 크기이다. 싱글 침대 하나, 그들이 본국으로 부터 이고 지고 왔을 짐들을 놓고 나면 꽉 미어 터지게 찰 정도의 방이다. 그런 작은 방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런 방이 따로 없는 작은 아파트들에 고용될 경우에는 그대로 주방 바닥에 요를 깔고 자야 한다. 그 이외에 핸드폰 비 라던지, 본국으로 다녀오는 비행기 티켓이라던지 등은 고용주가 내 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은 그것이 전부다. 이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휴일이 주어지는데 대부분이 천주교인 대다수 필리핀 노동자들에 따라 보통은 일요일인 경우가 많다. 홍콩에 여행 와 본 사람들은 한 번씩은 보았을 거리에 박스로 간이 칸막이를 세워 그 사이 사이에 앉아 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무리들. 나도 처음에는 그들이 정부를 향해 시위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랬다. 갈곳 없는 그들이 주인집을 나와 그 곳에서 일요일 휴식의 단꿈을 즐기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니 그렇게 길바닥에 앉아 있을 바에는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않냐 싶을 수도 있지만, 보스가 함께 기거하는 집이 과연 그들에게 휴식처이겠냐는 말이다. 보스가 아무리 잘해줘도 보스는 보스고, 보스 또한 본인이 눈치를 안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랫사람으로써는 지나가다 슬쩍 쳐다 보는 눈빛에도 괜히 내가 뭐 잘못했나 새가슴이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근에 홍콩에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감염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중국 본토에 대한 충성심을 표하느라 이 말도 안되는 제로 코비드 정책을 따르는 홍콩은 정말 비상사태가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코로나 정책 하에 모두가 아주 제한된 삶을 살고 있다. 그 중 가장 피해를 보는 그룹은 또 다시 이 헬퍼들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은 헬퍼들은 주인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코로나 환자들 수용 건물인 ‘페니 베이’라 불리는 곳은 갑자기 늘어난 확진자들로 이미 자리가 꽉 찼고, 병원들 조차 병상이 없어 길 거리에서 몇 시간씩 환자들을 방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회적 최약자층이라 볼 수 있는 헬퍼들이 갈 곳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휴일 때 그러했던 대로 공원으로, 지하도 밑으로, 얇은 박스들을 모아 깔고 앉아 아픈 몸을 뉘이고 있다. 그 와중에 홍콩 경찰들은 그들이 1.5m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며, 그들의 한달 월급 보다도 많은 홍콩달러 5000(76만원)의 벌금을 부여 했다. 벌금은 지난 주 부터 두 배로 올랐다.
히터를 쓰지 않는 우리집은 (원래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 편이라 온풍을 쐬면 목이 심하게 갈라져 사용하지 않는다) 에어컨에 탑재된 온풍 기능과 한국에서 엄마가 공수해 준 전기장판으로 짧지만 추운 홍콩의 겨울을 어찌 저찌 버티고 있다. 비를 막아줄 든든한 지붕이 있는 나도 몸이 진저리쳐지게 싫은 이 추운 나날들을, 바람 불고 비가 오면 체감온도 5도까지 떨어지는 곳에서 종이 박스 하나 의지하며 온 몸으로 추위를 맞고 있는 헬퍼들의 고충은 이루 짐작할 수 조차 없다. 발 빠르고 현명한 사람들이 이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했다. 그들이 내기 벅찬 벌금을 대신 내주기 위한 기금이었다. 이미 1억이 넘게 모인 기금에 대해 최근 홍콩 정부는 이 기금은 헬퍼들의 위법행위 (춥고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밤새 서로 1.5m씩 떨어져 앉지 않은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기금 자체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며 강력히 경고했다. 말이 경고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쳐들어와 잡아갈 지 모른다. 사법 경찰들이 길을 휘젓고 다니는 곳이 요즘의 홍콩이다. 흡사 우리네 1960-7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그 시대에 내 가족의 안위를 지키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후 우리에게 어떤 사람들로 평가되는 지를 생각해보면 그와 똑같이 눈치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비겁하게 느껴진다. ‘어짜피 내 나라 아니니까’ 라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드는 순간 왠지 모르게 난 더욱 더 부끄러워진다.
벌금을 대신 내 주는 기금은 위법이라 하니 그 돈을 모아 헬퍼들에게 필요한 담요나 우산, 먹을 거리, 마실 거리 등을 사는 기금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 밖에 나가 간단히 저녁식사만 하고 와도 둘이서 10만원 정도는 우습게 쓰고 오는 홍콩이다. 저녁 한 번 안 먹을 돈이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며 나 또한 부끄러운 손을 내민다.
공항 입국심사대에는 항상 헬퍼들을 위한 줄이 따로 있었더랬다. 이미 10년 전부터 홍콩 아이디 카드 하나면 입국 심사 없이 무인 키오스크에서 10초 정도 만에 바로 통과 할 수 있는 홍콩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건 그들은 우리가 누리는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길고 긴 입국 심사대에 줄을 서야 했다. 이 도시의 최저 임금보다 낮게 책정된 헬퍼 임금도 이렇게 해외에 나와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어디냐며 합리화시켰다. 제대로 된 비자를 갖고 7년 이상 거주하면 나오는 홍콩의 영주권 또한 헬퍼 비자는 제외한다. 아 정말 더러운 세상이다. 때마침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가 흘러 나온다. 심장이 뱃속으로 꺼지는 기분이 든다. 밖에는 며칠 째 비가 추적 추적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