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몸으로 90일>
작년에 썼던 브런치북 <WWOOF, 프랑스에서 90일>을 종이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원고는 작년에 마무리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출판이 한참 늦어졌습니다. 변변찮은 글을 책으로 내자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기왕 쓴 글을 묻어두고 그냥 지나가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서문을 올려봅니다. 올해도 5월, 6월을 오뜨-사부아에서 보냈는데, 이번 얘기들은 이제부터 조금씩 써볼까 합니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두 명의 친구를 11시 정각에 리용에서 만나기로 약속돼 있었던 터라 아침 일찍 에르베의 집을 나섰다. 오늘 만날 친구들은 3주간 동안 나와 함께 알프스를 여행하면서 그동안 내가 자랑했던 이 여행 방식을 엿볼 참이었다. 에르베는 생-벨(Sain-Bel)역에 나를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프랑스의 시골 기차역들이 대개 그렇듯이 생-벨역은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동네 간이역이다. 귀퉁이에 작은 역사가 있었지만 한 번도 역무원을 볼 수 없었고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울타리도 없고 출입문도 없어서 누구나 언제든지 선로에 들어갈 수 있는, 그저 열차가 잠시 멈췄다가 지나가는 그런 역이다. 원래 한적한 곳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간이역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리용 빠르-디유(Lyon Part-Dieu) 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므로, 11시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이곳에서 열차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자동발매기 앞에 짐을 내려놓고 열차표를 사려던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첫 열차는 8시에 이미 지나갔고 다음 열차는 12시가 되어서야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에르베도 나도 오늘이 토요일이란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방의 경우, 토요일 오전에는 열차를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 (토요일 오전이란 프랑스 사람들에게 불가침의 휴식시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12시 열차를 타게 되면, 멀리서 비행기와 TGV를 타고 온 친구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의 역사 안에서 피로와 불안속에 3시간이 넘도록 나를 기다려야 할 터였다.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11시에 그들을 만나야만 했다!
낭패감 속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문 후, 나는 배낭과 짐을 들고 차들이 더 빈번하게 지나가는 국도변을 향해 뛰듯이 걸었다. 오토-스톱!(Auto-Stop, Hitchhiking), 내가 궁지에 처했을 때마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던 상투적인 방법! 오늘도 그것이 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도로변에 짐을 들고 서서 지나가는 차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 채 이제나저제나 차가 서기를고대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시간을 계속 흘러가는데, 오늘따라 그냥 지나쳐가는 차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오늘은 이것도 잘 안되려나 하는 불안감이 꿈틀거릴 즈음, 이윽고 하늘색의 작은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내 앞에서 멈추어 섰다. 60세쯤으로 돼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수더분한 차림새였지만 밝고 쾌활한 얼굴에 자애로운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모르는 나는 무작정 짐부터 싣고 차에 올라탔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격의없이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소개했다. 나의 자초지종을 듣던 그녀는 프랑스가 이런 나라인 것을 외국인들은 잘 모를거라며 재미있다는 듯이 한바탕 웃고는, 가던 길을 멈추어 길 옆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꺼내어 버스와 열차, 리용의 지하철 등, 모든 교통수단의 시간표를 참조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로 조언을 구하는가 하면, 열차역에 전화를 걸어 직접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11시에 리용 빠르-디유 역에 도착할 방법을 찾았고 소요 시간을 계산했다. 한참 후, 그녀는 뭔가를 확신하는 표정으로 최적의 대안을 내게 제시했다. 라르브렐(l’Arbresle)이라는 멀지 않은 역에서 10시 15분에 리용에 가는 기차가 있고, 리용에서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면 10시 55분에서 11시 사이에 리용 빠르-디유 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빈틈없는 계산이었고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차를 돌려 라르브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우리는 마치 재미있는 작전을 수행하는 듯이 들뜬 기분이 되었고, 짧은 만남이 아쉬운 듯 쉼 없이 큰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다. 라르브렐역에 도착하자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감동시켰다. 나를 내려준 다음 곧장 돌아가지 않고 열차가 제대로 운행하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나를 뒤따르는 것이었다. (파업이 잦은 프랑스에서는 열차 운행을 항상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열차는 예정대로 운행했다.
그런데……! 표를 사려던 나는 또 한 번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생-벨역에서 당황한 나머지 신용카드를 그곳 매표기에 꽂아 두고 왔던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맨붕상태’가 되었다. 카드를 잃어버렸으니 앞으로의 일이 캄캄했을 뿐만 아니라 현금으로 표를 사려고 보니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러자면 열차를 놓치게 될 게 빤해 보였다. 바로 그때, 내막을 파악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지체 없이 자기의 신용카드를 매표기에 꽂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카드로 표를 산 다음, 그녀에게 현금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천사가 그 돈을 받을 리가 있겠는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때마침 막 도착한 열차에 내가 허겁지겁 몸을 실은 후에야 그녀는 손을 흔들며 뒤돌아 갔다. 그녀가 예측했던 대로 나는 정확히 10시 59분에 리용 빠르-디유 역에 도착했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심장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에요.”
Elle a toujours le coeur sur la main.
친구들과 오뜨-사부아를 여행하고 3주 후에 내가 다시 리용에 들렀을 때, 그녀의 딸 로리안느가 내게 한 말이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딸이 한국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이 많으니 내가 연락하면 정말 좋아할 거라며, 라르브렐로 가는 차 안에서 그 천사가 딸의 연락처를 메모해 주었었다.
“심장을 손에 든 사람!”
우리말로 직역한 것인데, 의역을 하자면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에피소드는 이 머리글을 쓰고 있는 최근의 이야기이지만, 본문의 주요 내용이 될, 작년에 있었던 90일간의 여행 동안에도 저는 ‘손에 심장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길에서도 만났고, 일하면서도 만났고, 산을 오르면서도 만났습니다. 낚시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동네의 낚시광을 찾아 소개해 주는 사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낚시 장비를 준비해 와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함께 낚시해 주는 사람, 하루 종일 등산을 안내해 주는 사람, 날씨가 추워졌다고 옷을 가져다주는 사람, 저녁 식사를 초대하는 사람, 자기 차를 빌려주는 사람....... 행복했고, 따뜻했고, 새 힘을 얻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WWOOF와 Workaway라는 여행 방법을 통해서 지난해 3개월 동안 프랑스에서 지냈던 저의 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호스트의 가족이 되어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얘기하며, 같은 지붕 아래서 살았습니다.
쉬는 날이면 알프스의 눈 덮인 산을 올랐고, 명경 같은 호수에서 송어 낚시를 즐겼습니다. 떠나기 전에 꿈꾸던 대로, 어떤 때는 깊은 밤에 산중의 별장에서, 머리 위로 낮게 걸려있는 깊은 커다란 별들을 바라보며 내 심장의 맥박 소리와 들숨과 날숨의 소리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여 보기도 했습니다. 이 여행 방법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멋진 방법입니다. 쉼이 있고, 감동이 있고,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나온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아주 오랫동안 이것들을 기억하며 행복해할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여행은 사람들에게 이전에 없던 영감과 생기를 불어넣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여행을 한 후에 삶의 방향이 바뀐 사람도 많았다지요? 오늘날에도 여행은 의심할 바 없이, 때로는 권태로 인해 때로는 피로 때문에 활력이 소진된 사람들에게 훌륭한 탈출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행의 즐거움이나 효용을 말하고자 이 글들을 쓴 것이 아닙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SNS를 통해서 여행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기도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자칫 진부한 이야기로 분류되기 쉬울 ‘여행 이야기’를 용기를 내어 책으로 써내게 된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이 여행 방법이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정보와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행성에서 살아가는 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참고가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욕심을 더하자면, 이런 여행 방법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분들이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기대를 품을 수 있기를 바라고, 용기를 내서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경험과 재주가 일천한 저에게 출판이란 긴 망설임의 시간과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준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꾸밈없이 일상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늘 진지한 대화를 이끌었던 알프스 토박이 마르틴느(Martine)와 쟝(Jean), 나의 생각과 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지지해 준 리용의 에르베(Hervé)와 그의 어머니 니꼴(Nicole),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지에뜨의 까트린느(Catherine)와 앙드레(André) 부부 그리고 다섯 자녀들, 그리고 시종 호의와 신뢰로써 이 이방인을 환대해 준 프롱티냥의 세브린느(Séverine), 오브나의 상드린느(Sandrine), 이제르의 알린느(Aline)에게 함께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테제 마을의 한적한 길에서든 알프스의 산길에서든 이 이방인 나그네에게 따듯한 인사를 건넸던 사람들, 지나가는 길에 기꺼이 차에 태워 주었던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더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내 편에 서서 한결같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나의 아내에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먼저 내밉니다.
끝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40만 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마디의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시골길을 지나가다 혹여 그들을 보게 될 때, 가는 길이니 태워다 주겠노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요?
2024년 6월 마린니에에서
프랑스에서 몸으로 90일 | 이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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