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천지 혹은 풍차에 관하여
소천지 주변에는 따로 주차장이 없었다. 읍내의 주정차 금지구역이 아니라면 제주는 참 주차를 아무 데나 한다. 차 한 대가 자리를 잡으면 다른 차도 자연스레 그 앞뒤로 멈추고, 어디든 금세 주차장이 생겨버린다. 이곳도 임시 주차장이 길어질 만큼 길어져 있었는데, 마침 섶섬지기라는 카페 앞에서 차 한 대가 빠져나오길래 얼른 자리를 차지했다. 제주 올레길 6코스를 따라 조금 걸으면 소천지였다.
제주를 여행할 때는 지금보다 섬이 작았다. 하루는 서쪽, 하루는 동쪽. (대체로 아내가) 촘촘하게 일정을 짜고 섬 구석구석을 홍길동처럼 날아다니니까 거리감이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길동이 아우는 축지법으로 돌아다닌 조선 팔도를 전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생활이 시작되면서 섬도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아이 학교 아니면 마트1, 마트2. 내친김에 동네 바닷가. 활동 반경이 거기서 거기가 되자 그 바깥은 미지의 세계로 돌아갔다. 해가 지면 스무 발짝 너머가 통째로 사라지는 제주의 밤처럼.
제주에 산 지 넉 달이 넘었는데 서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비양도도, 산방산도, 지도로만 본 탐라해상풍력단지도 다녀오고 싶은데 여행 때는 잘만 다녔던 그 거리를 좁히기가 어렵다. 심리적으로는 육지보다 더 아득하다.
제주에 살던 분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곳은 잘 안 가게 된다고. 하긴 서울 살 때도 도시 반대편에 갈 일이 생기면 한숨부터 나왔다. 하물며 서울보다 훨씬 큰 제주에서야. 그래도 여기서는 ‘반대편’에 대한 반감은 없다. 조금씩 익숙해지는 제주의 도로 체계를 머릿속에 펼쳐놓고 어떻게 하면 같은 곳을 안 가본 길로 갈까 고민하기도 한다. 역시 서울 살 때는 눈곱만큼도 해 본 적 없는 고민이다. 제주시 아니면 교통 체증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운전이 좋아졌다는 것, 그게 제주에 와서 생긴 변화 중 하나다.
여행사에서 일할 때 ‘차창 관광’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알기만 한 게 아니라 일정표를 만들며 직접 타임라인에 써넣기도 했다. 차창 관광은 여행사에서 일정의 얇은 공백이나 빠듯한 예산을 메울 때 내놓는 조커 같은 용어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어중간한 관광지로 우회하며 ‘차창 관광’이라고 포장하면, 보내는 사람도 좋고 가는 사람도 좋으니까. 물론 그게 단체 여행의 한계 같아 씁쓸하기도 했고 약을 파는 것 같아 겸연쩍기도 했다. 두 다리로 걷고, 만지고, 공기를 맡아 봐야 어떤 장소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막상 단체 여행에 출장으로 동반하여 경험한 차창 관광은 떨떠름하던 이미지와 달랐다. 일단 몸이 편했다. 아시다시피 단체 여행은 집합 시간이 굉장히 이르다. 안 그래도 아침잠이 많은데 직원이니까 손님보다 10분이라도 더 일찍 내려가야 했다. 종일 신경은 곤두서는데 피곤은 몰려오고, 파리니 로마니 이름값 있는 도시를 걸어도 별 감흥이 없을 만했다.
그런데 ‘차창 관광’을 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엔진 소리를 타고 흘러가는 풍경만 쳐다보면 그만이었다. 간사한 몸뚱아리는 저 편해지고 나자 역시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다며 부랴부랴 감상의 여지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버스의 얇은 철판과 강화 유리로 눈앞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소격 효과를 느꼈다. 아릿아릿하달까, 아득하달까, 거대한 수족관 앞에서 느끼는 감동과 닮은 면이 있었다.
하긴 어떤 도시를 종일 걷는다고 그곳을 완벽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을 지내고 한 달을 머물고 일 년을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창 관광이 꼭 야바위는 아니었구나 마음을 고쳐먹은 뒤, 버스가 프랑스 중부 어딘가를 달릴 때였다. 유럽 소는 참으로 한국 소와 다르게 생겼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야트막한 구릉이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 위로 풍력 발전기가 줄줄이 나타났다. 너무나 인공적인 구조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얗고 거대한 나무처럼 세 가닥의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직접 맞닥트리기 전까지는 내내 그곳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살게 되는 풍경이 있다. 언젠가 만나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 외면하기로 합의했고, 우리 사이에 합의가 존재했던 사실까지도 잊었다. 그러다가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소가 풀을 뜯는 초원 앞에서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 본 것이다. 어느 장소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가 태어난 곳처럼 여기는 것이라면,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니면, 이제 고향을 떠나는 중이라 이렇듯 울컥하는지도. ‘관광’도 아니고, ‘X시로 이동(약 n시간 소요)’에 불과한 한 줄의 타임라인 위에서 모든 게 간절해져 버렸다.
아직도 제주의 중산간 지대를 달릴 때 저 멀리 풍차가 나타나면 프랑스 어딘가에서 떠나보낸 평원이 떠오른다. 덩개해안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풍차가 씽씽 돌아가는 걸 봐도 목가적이라고 받아들인다. 어렸을 적 방학마다 제주에서 지낸 시기가 있었지만, 요즘 이 섬을 고향처럼 여겨도 되겠구나 마음을 여는 것은 이국의 초원에서 맛봤던 영문 모를 향수의 영향이 크다.
평일에 재택근무를 하고 나면 해가 질 무렵이라 멀리 가지 못한다. 대신 날 좋은 주말을 기다려 외출 준비를 한다. 생활의 첩첩산중에서 차만 타고 나가도 놀러 온 기분이 든다는 건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내가 지금 섬에 살고 있다는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저 삼나무숲길 안으로(뱀에게 물릴 수도 있다), 목장 울타리 안으로(사유지 침입이다), 투명한 바닷물 속으로(수영복을 안 입었다) 들어가지 못한다고 아쉬워지는데, 결국 이 섬에 대한 호기심을 부양하는 건 그런 미련들이다. 일부러 충족시켜 줄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기초를 단단히 쌓기 위해 주말 목적지는 단체 여행처럼 기본에 충실하다. 숏폼에서 유행하는 신상 카페나 한라산 자락 곳곳에 숨겨진 제주의 비경도 좋지만, 관광 전도가 사랑하는 관광지를 찾아가 본다. 어렸을 적 다녀봤겠지만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 굴이며 해변, 돌덩어리와 재회한다. (재미 삼아 제주 관광 전도도 사뒀다.)
이제 가려는, 서귀포 보목 해안의 소천지도 그런 목적지 중 하나다. 바다 위로 비죽비죽 튀어나온 아아 용암의 벽과 그 안에 가두어진 바닷물의 모습이 마치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고 하여 ‘소천지’란다. 백두산에 아무런 미련도 없기 때문에 여행으로 왔다면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었겠지만, 쇠소깍에 노를 저으러 온 김에 들르기로 했다.
집에서 쇠소깍과 소천지가 있는 서귀포시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일주동로다. 한 번만 초록 신호를 받아서 규정 속도로 달리면 수 킬로미터는 멈출 일 없는 쾌적한 신호 체계를 자랑하는 도로. 하지만 제주에 살 집을 보러 다닐 때 너무 많이 오가는 바람에 조금은 식상해진 도로. 그래도 세화리, 토산리, 신흥리를 지날 때마다 운전석 창문으로 밀려들어 오는 바닷가 풍경은 언제 봐도 근사하다. 왜 같은 바다인데 동네마다 다르게 보일까? 색깔도 수평선도 계속 바뀐다. 땅과 건물 뒤로 숨을 때마다 의상을 갈아입으며 일인다역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일주동로를 벗어나 해안에 더 가까운 도로를 달리면 바다의 독백이 시작된다. 섶섬이 불쑥 나타난다. 숲으로 뒤덮인 섬은 밑동이 짧은 커다란 나무 같다. 아니면 목숨을 하나 늘려주는 마리오의 초록 버섯이라든가. 숲이 우거진 섬이라 ‘숲섬(森島)’이라 불리다가 ‘섶섬’으로 굳어졌다고 하는데, 드넓은 바다를 조금은 헤아릴 기준이 되어 줄 만큼 거대하다.
섶섬에 가려면 낚시나 스쿠버다이빙팀에 합류를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그런 본격적인 활동도 하게 되려나. 차창 너머로 흰 포말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청록빛 바다와 숲의 섬이 흘러간다. 바다는 말을 그치지 않는다.
물론 차 문을 열고 나가 경험의 영토를 미지의 영역으로 넓혀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소천지로 가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무 터널 아래를 걸으며 나뭇잎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았다. 햇볕이 틈 사이로 비치는 모습은 볕뉘라고 하니까 이건 바닷뉘라고 해야 할까? 바람을 타고 작은 바다가 산책길로 스며들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 소천지로 내려간다. 정말 천지처럼 생긴 웅덩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거친 바위를 밟는다. 손을 잡아주자 아이도 용케 뒤따른다. 더워서라기보다는 누구 하나 미끄러지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등 뒤에 수분기로 솟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한라산이 ‘천지’에 비친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내가 지금 여기 실재한다는 감각이 든다.
아직 차창 관광의 매력을 부정할 순 없다. 차창 관광은 섬과 나를 잇는 건널다리다. 하나둘 걷는 곳이 많아질수록 운전은 순전히 이동을 위한 노고로 전락하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기꺼이 경계에 머물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잘 아는 길이라 하더라도 저 멀리 시야 안에 거대한 풍차가 들어온다면, 그날은 또 새로운 날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