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숲, 안개, 그리고 베생폴

메이플 로드를 따라

by 베르고트

저 멀리 현수교가 보였다. 길고 늘씬한 다리는 하늘을 향해 지휘봉을 쳐들고 있었다. 꼭 제삼세계에서 온 지휘자를 부르는 것처럼 발음하기도 어려운 일도흘레엉 교pont de l’île-d’Orléans였다. 우리 옆으론 오흘레엉(오를레앙) 섬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사진을 통해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를 알게 됐는데, 만약 퀘벡 시티를 떠나 샤흘르부아로 올라가던 그때 핸들을 한 번만 꺾었더라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아직 이 땅에서 보낼 날이 숱하게 남아 있었지만, 축적하는 속도보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진을 찍었고, 지금 이 순간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화가라면 눈앞의 광경을 캔버스에 옮겨 영원의 전당에 바쳤을 텐데. 시인이라면 이 숱한 문장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아니 시적으로 난관을 극복했을 텐데. 나는 펄떡이는 현재가 숨을 거둔 후에야 그 재를 쓸어 모아 종이 위에 세울 것이다. 여행 중 찾아오는 무력감은 곧 임해야 할 글쓰기라는 지난한 작업을 예상하는 데서 비롯되고는 했다.





샤흘르부아 지역의 작은 마을인 베생폴Baie-saint-paul로 가는 길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흔히 메이플 로드라고 불리는 새빨간 단풍길이었다. 지대가 낮을 때까지만 해도 푸른 잎과 울긋불긋한 잎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산 위로 올라가면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발삼전나무가 늘어나고 숲은 뾰족해졌다. 표지판은 순록이 언제든 차도로 뛰어들 수 있음을 경고했다. 펜스 너머엔 인간이 어림짐작을 넘어서는 무한한 땅이 도사리고 있었다. 열심히 지워나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는 외로워 보였다. 도시에선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전시해 둔다. 하지만 이곳에선 대자연 안에 포장도로라는 실낱같은 증거로 문명을 전시해 두었다. 갈 수 있는 곳보다 갈 수 없는 곳이 훨씬 더 많은 대륙의 드넓음을 커튼 사이로 엿본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풍경에 압도되는 일이 드물어 져. 여행은 역시 감수성이 충만한 이십 대 초에 다녀야 하는 건가 봐.”


차를 몰던 M이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녀의 말은 사실이라 나 또한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까지는 맛보지 못했다. 몇 번의 감탄, 탄식 비슷한 감탄만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숲의 껍질 안쪽을, 숲의 심장을, 그 숲 너머의 숲을 상상했고, 여행이 언젠가 닿을 그곳을 향해 계속되기를 바랐다.





안개가 찾아왔다. 안개는 무엇을 상징하던가. 불투명한 앞날, 혼란, 두려움을 뜻하던가. 하지만 갑자기 몰려든 신비로운 안갯속에서 낯선 세상으로 옮겨가는 흥분을 느꼈다. 잠시 무대를 가린 장막 같았다. 그것이 걷히면 새로운 막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호기심과 불안이 얼마간 뒤섞였다. 그리고 내심,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필연이 변화 그 자체보다 감미롭다고도 생각했다.


“이 여행이 무엇을 바꿀까?”


나의 물음에 M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안개등으로도 다 헤집을 수 없는 운무 때문에 그녀는 신중히 차선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졌고, 산 중턱에 불시착한 구름 속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 차 안으로 바람을 들이자 단단히 응집된 수증기의 매캐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번의 여행으로 변화라니, 얼토당토않은 꿈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나와 M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비게이션이 도착 임박을 알리고 차는 언덕 아래로 몸을 기울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양쪽 능선에 빽빽하게 들어서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먹구름이 끼고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우듬지는 계절을 그대로 빨아들인 채 기어이 가을로 물결쳤다. 눈부시지 않은 산란으로, 나지막한 찬란으로. 얼른 베셍폴의 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한없이 이 언덕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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