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약속

퀘벡 시티를 떠나며

by 베르고트

로렌스에게 짧은 메모를 남겼다. 정말 좋은 집이었다고, 다음에 퀘벡 시티에 다시 와도 여기에 머물고 싶으니 그땐 서로 얼굴을 보자고. 벌써 여행 중에 구한 두 번째 집을 떠난다. 거리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스팔트 색깔이 짙어질 만큼만 적당히, 웅얼거리듯 소리 죽인 채. 비에 젖은 아침 공기에선 나무가 세월에 구워진 냄새가 났다. 물방울이 건조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트렁크에 짐을 넣으며 한기에 몸을 떨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쓴 메모를 곱씹고 있었다. 약속을 지켜 비에 젖은 이 집의 뒤뜰과 베란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유난히 높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담장을 따라 네모나게 잘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몸을 돌려 잠자코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내년에 다시 뵙죠!”라고 인사할 수 있을까.



어디를 가든 그곳을 떠날 즈음이 되면 재회를 향한 막연한 희망으로 자신을 속이곤 한다. 샤흘르부아Charlevoix까지 갈 길이 멀었지만, 우리는 막연한 희망에 취해 생장 거리로 빠져나왔다. 아치형으로 굽은 가로등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이 그들을 혼란에 빠트린 모양이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 이제 막 정오를 지났을 뿐인데 길을 잃은 해 질 녘이 먼저 찾아온 시간. 일요일을 맞아 상가 앞에 일렬 주차를 한 자동차의 수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의 수보다 많았다. 도로에 고인 빗물 안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사라졌다. 거리의 밀도는 물기가 마를 때까지 한산한 수준과 한적한 수준 사이를 고만고만하게 왕복할 예정이었다. 오로지 불어로만 적힌 간판들이 여백을 굽어보고 있었다.


목 좋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M의 등 뒤로는 거리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나 있었다. 주차 미터기에 걸어 놓은 시간은 째깍째깍 일사불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도시를 구석까지 휘젓고 다니지 못했더라도 그의 얼굴은 항상 나의 족적보다 많이 드러나곤 한다. 잠시라도 걷고 숨 쉰 적 있다면 나는 그 도시에 가봤다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번 스칠 때마다 우린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이별을 경험합니다.” 도시의 얼굴이라고 다를까. 나는 금방 과거로 정리될 이 순간을 몇 푼의 주차비를 들여 연장하기로 했다. 거리의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을 동시에 보려고 애썼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식료품점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거기서 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포함해 오 달러 만큼의 유예를 즐겼다. 커피 향은 차안에서 꽤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창문을 열어두면 여기 그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얼마쯤 나도 동행시킬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짧은 체류 동안 이 도시와 나눌 수 있는 최선의 교감이라고 단정했다.


로렌스에게 보낸 편지가 그저 인사치레에 그칠 확률은 숲 전체에서 불그스름한 이파리가 차지하는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어딘가에 갈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얄팍한 여행 권유서에 적히는 그런 말들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는 게 조금 슬픈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며칠 후, 로렌스 역시 (나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긴 했지만) 언제든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번은 으레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날도 막 그친 가을비에 거리가 젖고, 머리 위까지 하늘이 내려앉은 우중충한 날이길 욕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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