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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Dec 20. 2016

중간지대 걷기

고베 기타노이진칸에서

 주차장은 대부분 만차였다. 고만고만한 주차 공간을 확보한 사설 주차장들이 한 블록에 하나, 많으면 둘씩도 보였다. 그러나 간판에 쓰인 '만滿'이란 글자엔 여지없이 불이 들어와 있었다. 워낙 크고 높이 달려서 표지를 놓칠 일은 없었다. 헛걸음할 일을 막아주니까 감사할 일인지 너무 단호해서 서운할 일인지 아리송했다.


 고만고만한 주차 공간만큼 주차비도 고만고만했다. 헉 소리 날 만큼 고만고만하게 비쌌다. 아니, 한 시간에 600엔 정도면 그나마 저렴한 편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까? 이번에도 아리송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이름 모를 가게에 한눈을 팔고, 'P'라는 글자만 보면 일단 핸들을 꺾고 보고, 한 시간에 800엔에서 1,200엔의 주차비를 받던 교토 청수사 주변의 주차장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두 곳의 주차비를 비교해 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가운데 마음이 바쁘다 보니 거리도 실제보다 번잡해 보였다. 좁고 급경사에 일방통행로가 많은 기타노이진칸北野異人館의 골목을 차로 다니기엔 지나치게 산만한 정신이었다.



 이 층짜리 편의점은 100엔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훌륭한 커피를 팔았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기까지 뛰어온 건 커피 한 잔이 급해서는 아니었고, 눈치 보지 않고 들를 수 있는 공중 화장실 때문이었다. 자연의 부름에 응하고 나서야 이제 남은 건 걷는 일뿐이구나, 몇 그램의 체중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언덕 중턱을 가로지르는 통행로 양쪽으로 막 떠나온 교토에선 보지 못했던 서양식 건물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도로는 깨끗한 수준, 그 이상이었다. 폭우와 돌풍이 몰아쳐 휴짓조각 하나까지 모두 쓸어가 버린 것처럼 어떤 결벽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밤이 되고 가로등이 꺼지면 사람들이 전부 이곳을 빠져나가고, 손전등을 든 경비원과 형광 조끼를 입은 관리인이 텅 빈 무대를 정리하지 않을까, 나는 적잖이 의심스러웠다.


 거의 모든 안내서가 기타노이진칸을 '일본 속의 유럽'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좀 이상한 말이다. 유럽의 어느 거리도 이렇게 깨끗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바닥에 개똥이 납작하게 붙어 있고 골목에서 복합적인 악취가 풍기는 길로만 다니는 취향은 없지만, 내가 사는 곳에도 존재하는 적당한 흠만큼 처음 온 곳에 마음 붙이기 좋은 표적도 없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이 외국인 거리에 흠은 없었다. 삼십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이렇게 말끔하게 유지하는 시스템은 그냥 사람 사는 동네엔 과분하다 싶을 정도였다. 분위기에 동화되기엔 내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사람인 것 같고, 감탄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서는 곳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전통, 절충, 질서와 고요. 이를테면 수도원에서 기대할 만한 그런 미덕들이 이곳에 있었다.



 저택을 개조한 예식장에서 하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장을 입은 젊은이들은 저들의 혼식을 마치기라도 한 듯 – 또는 저들의 혼식이 아니라는 데 안도한 듯 – 들떠 있었다. 가끔 그들이 내지르는 환호가 아주 멀리 쏘아 올린 공처럼 긴 포물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기도 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처지임에도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는 외톨이가 된 심정으로 나도 따라 걸음이 가벼워졌다. 개츠비에게 정식으로 초대받기 전, 여름밤 내내 그의 저택에서 벌어지던 파티의 소음을 듣던 닉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경우엔 닉과 달리 앞으로도 초대받을 일이 없었지만 말이다.


 기타노이진칸엔 드레스 숍이나 예식 상담소처럼 유독 결혼과 관련된 장소가 많았다. 하긴 이런 동네에서 하는 결혼이라면 오히려 예식장이 덤으로 딸려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식장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자란 하얀 알리움은 밴에서 나와 건물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거리의 풍경과 참 잘 어울렸다. 가로수에서 똑 따서 가져온 양, 그 민들레 씨앗 같은 고운 꽃잎은 잿빛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를 수수한 버진로드로 만들어 주었다. 벽돌 벽에 박힌 아치형 창틀, 가스로 불을 켤 것 같은 담청색 가로등, 인도를 향해 의자를 배치한 프랑스풍 테라스는 이 거리의 예식을 지켜보기 위해 참석한 하객이자 증인이었다. 기타노이진칸은 현실에서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선 특별한 공간, 그러므로 인생 전체에서 하루 이틀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으로서의 결혼식이 잘 어울릴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언덕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문 닫힌 상점들, 카페들, 식당들을 지나쳤다. 그나마 문을 연 곳들은 어느새 몰려든 인파로 포화상태였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나 데이트를 나온 고베의 시민들이 이국땅에서 온 여행자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여행자인 내 눈에야 교토 게이샤의 거리나 여기 고베의 외국인 거리나 외국 나가서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옆 동네, 옆 옆 동네, 때로는 도시 반대편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현실의 근저에 조성된 또 하나의 현실로서 작용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이 거리엔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모종의 분위기가 있었다. 보면 기분이 좋고 껄끄러울 만큼 이질적이지도 않은데 어딘지 모르게 내 것이 아니다 싶은, 아주 잘 쓰고 있었는데 사실 그게 어디서 빌려 온 물건이었던 느낌. 발을 헛디디다가 땅을 놓쳐버려 떨어지지도 못하고 떠오르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표류 중인 느낌. 오로지 몰입할 때만 존재하는 경험은 글로 옮길 수 없고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거리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지닌 가게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경험에서 떨어져 나온 여분의 가루가 묻어 있기라도 하다는 듯 뭔가를 주섬주섬 사서 나오는 일이다. 엽서, 카드, 포스터 따위에 집에 돌아가서도 이곳을 환기할 수 있는 어떤 기호, 암호, 상징 따위가 쓰여 있을 거라고 믿는 일이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되자 주차장의 '만滿'자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걸어 왔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들은 낭만에 푹 빠진 걸음으로, 꼭 버진로드를 걷는 신부처럼,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차비는 예상대로 싸지 않았다. 그걸 그냥 입장료라고 한다면, 그것도 나갈 때 내는 후불 입장료라고 한다면, 그럭저럭 마음 불편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려는 자동차의 붉은 미등이 폐장에 앞서 환송의 의미로 터트리는 폭죽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정말 누군가 길목마다 차단막을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손전등을 들고 거대한 저택에서 빠져나와 오늘의 근무를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땅에 떨어진 쓰레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정리하는 관리인이 허리를 굽힐 횟수가 줄어들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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